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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환승구로 들어서는 버스 안에서 밖의 사람들을 살펴 보았다. 차장 밖에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긴 시간 비행에서 오는 여독인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그리 얼굴이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나는 그들을 보며 지금 떠나는 이 여행이 저들처럼 곧 끝날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이 들것 같아, 얼른 짐을 카트에 옮겨 싣고 출발 층으로 올라섰다. 평소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편인 하나는 사실 공항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즐거웠다. 특히 각자의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Boarding Gate 앞에 앉아 지루한 듯 저마다의 즐길 거리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면 왜인지 모를 설렘과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들이 전달 되는 것만 같았다.
하나 스스로도 법적 국경인 출국 Gate를 지나 대합실에 들어서면 그게 비즈니스와 관련된 출장이던 휴가던 간에 기분 좋은 쿵쾅거림이 있었고 그래서 하나는 항상 check-in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먼저 출국 Gate를 통과하여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오늘도 보통의 Check-in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하여 미리 출국 Gate를 나서고자 한 그녀였지만 평일 임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 Check-in Desk엔 이미 사람들이 붐볐다.
유독 이 시간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린 건지, 비 때문에 항공기 출항 시간이 겹쳐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비즈니스 티켓 전용 발권 창구에도 평소와는 다르게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나는 줄 앞에서 승객들은 안내하던 항공사 직원에게 물었다.
“오늘 사람이 많네요? 비즈니스 라인에 이렇게 줄이 긴걸 본적이 없었는데”
“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지금 비 때문에 이륙이 조금씩 지연되고 있어서 라인 구분 없이 먼저 오신 고객님들 우선 발권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순간 짜증이 났다. 평소 하나는 특권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그 자체의 뜻과는 다르게 주로 부정적으로 쓰이는 것에 대하여 불만이었다. 하나가 생각하는 특권의 의미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나 대가를 치른 사람이 정당하게 혹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다른 이들로부터 시기나 불평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 존경과 인정의 시선을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같이 간혹 벌어지는 그 ‘특별한 권리’쯤은 별 것도 아니라는 듯, 포기를 강요 당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 마다 유독 화가 났다. 그녀 앞에 서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항공료를 지불 했던 것은 단지 열 몇 시간 동안 좀 더 넓은 자리에 앉기 위해 그런 것 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는 모처럼만의 여행에 시작부터 기분을 망치기 싫어, 직원에게 그러냐고 짧게 대답하고 줄 뒷부분에 섰다. 사실 아직 짧다면 짧은 한국에서의 생활이지만 이 곳에서 여러 고객들을 상대하다 보니 다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배웠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의 생각은 분명 소수일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여기서 뵙네요. 어디 여행 가시나 봐요?”
한국에는 지인들도 없고 워낙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던 하나는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는 일 자체가 없었다. 열심히 휴대전화를 보며 이런저런 검색에 열중 하고 있던 하나는 처음 겪어보는 상황인 듯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곳엔 왠 중년의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대답부터 하고 다시 한번 그를 보니, 평소 늘 작업복을 입고 있어 한번에 알아 보기 힘들었던 그는 다름아닌 정 주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