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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 흙수저 나무라기 전에 금수저 너나 잘하세요
게시물ID : history_251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룡815
추천 : 2
조회수 : 1303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6/01/22 1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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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조선시대 인조시대...호란전상황이라면....

훗날 뭐라고 지금 이시대를 애기할건지...

현시대의 금수저같은 윗분들은 역사적 자각이라도 있을건지...답답하네요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245

  > 실용·과학 >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흙수저 나무라기 전에 금수저 너나 잘하세요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바다를 지키려 애쓴 건 <조선왕조실록>에 가계에 대한 기록 한 줄 등장하지 않는 강진흔이었다. 역사를 보면 늘 문제를 일으키는 쪽은 흙수저의 피해의식이 아니라 금수저의 무책임이었다.
    |  김형민(SBS CNBC 프로듀서)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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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는 임금의 두 아들과 세자빈과 원손 등이 이미 피란을 가 있었지. 강화도 방어 책임자는 김경징. 임금을 모시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영의정 김류의 아들이었어. 요즘 말로 대단한 ‘금수저’였지. 인조반정에 가담해서 과거 급제하기도 전에 2등 공신에 군(君) 칭호를 받았으니 그야말로 탄탄대로의 인생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사람은 조선 왕조 역사에 남을 망나니 금수저였어.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 태종에게 항복한 사실을 기록한 삼전도비 옆 부조물.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 태종에게 항복한 사실을 기록한 삼전도비 옆 부조물.

<병자록>에 보면 김경징은 어머니와 아내를 덮개 있는 가마에 태우고 계집종은 전모(剪帽)를 씌웠으며, 집에서 싣고 나온 짐 보따리가 50여 개나 되어 그걸 운반하려고 무수히 많은 사람을 동원했어. 심지어 자기 가족과 친척과 친구를 먼저 실어 나르느라 세자빈이 배를 구하지 못해 바닷가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고 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세자빈이 김경징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지. “경징아 김경징아. 네가 어찌 이런 짓을 하느냐.” 그제야 김경징은 미적미적 세자빈을 강화도에 데려다 놓았다고 해.


그 후로도 김경징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 잔치나 벌이고 술이나 퍼먹는 외에 그는 어떠한 방어 대책도 수립하지 않아. 글깨나 배운 그는 <고려사>에 나온 몽골과의 전쟁을 상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 무서운 몽골병도 이 바다를 뛰어넘지 못했거늘 하물며 여진 오랑캐 따위가 어찌 건널까 하면서 말이야.


그러나 청나라는 항복한 명나라 수군 장수들을 활용하여 역시 과감한 ‘강화 상륙작전’을 전개해. 이때 청나라 함대가 몰려나온 곳이 강화도 갑곶이었고 이 일대를 수비하던 건 충청 수사 강진흔이었어. 기습을 맞은 강진흔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목이 터져라 독전하며 맞싸워 청나라 배 3척을 침몰시키며 분전했어. 이때 주사대장, 즉 강화 지역 해군사령관 장신의 함대가 도착했고 조선 함대에서 환호성이 일었지만 이내 수그러들고 말아. 청나라 수군이 덤벼들자 장신이 뒤로 돌아 도망쳐버린 거야.


이때 강진흔의 외침은 통렬하게 절박하고 미치도록 슬펐단다. “장신! 네가 나라의 은혜를 두터이 입고서도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느냐. 내 너를 베어 죽이겠다.” 이 외침을 들은 다른 장수들이 구원하러 달려가려는 것도 장신은 막았어. 이 꼴을 보다 못한 군관 하나는 피를 토하듯 장신을 꾸짖으면서 바다에 몸을 던진단다. 이렇게 되자 강진흔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나지. 수군이 무너진 뒤로는 이렇다 할 방책이 없었어. 김경징은 쪽배를 타고 충청도로 도망가버리고 강화도의 세자빈과 왕자들 이하 사농공상 백성은 고스란히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아.


전쟁이 마무리된 뒤 패전 책임을 묻는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 그런데 임금은 강화도 방어 책임자 김경징과 수군 지휘관 장신을 죽여야 한다고 입에서 불을 토하는 신하들 앞에서 기묘한 말을 해. “김경징이 거느린 군사는 매우 적었고, 장신은 조수(潮水)가 물러감으로 인하여 배를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법대로 처벌하는 것은 과할 듯싶다.” 이게 무슨 뜻이겠니? 장신도 장신이지만, 인조는 자신을 왕위에 올린 반정 1등 공신의 아들이자 2등 공신 김경징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거야. 이미 한 배를 타고 끼리끼리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백년같이 누리던 그 시대의 금수저들이었거든.


하지만 김경징의 죄는 너무나 컸고 눈에 불을 켜고 대드는 신하들의 등쌀에 임금은 어쩔 수 없이 김경징에게는 사약을, 장신에게는 자결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그런데 붙들려온 김경징이 사약이 내렸다는 소식에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옆에서 “어차피 죽을 것 체통을 지키시오” 하는 또 하나의 사형수가 있었어. 그건 바로 강화도 앞바다에서 피눈물 쏟으며 싸운 충청 수사 강진흔이었어. 강화도 앞바다에서 가장 열심히 싸운 그에게는 외려 참수형이 떨어졌단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화이트 페이퍼</font></div>인조반정의 1등 공신인 영의정 김류와 그 아들 김경징의 묘.  
ⓒ화이트 페이퍼
인조반정의 1등 공신인 영의정 김류와 그 아들 김경징의 묘.

충청 수영의 병사들과 군관들이 대궐 앞에 가서 엎드려 울부짖었어. “그때 강화 앞바다에서 싸운 사람은 우리 장군밖에 없습니다.” 눈앞에서 도망간 사령관도 겨우 사약을 받는데 목숨 걸고 싸운 충청 수사는 망나니의 칼에 목숨을 잃게 되다니. 아무리 공자도 맹자도 모르는 무식쟁이들이라지만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어. 


그러나 끝까지 의연했다고 기록에 남은 충청 수사 강진흔은 목이 잘렸어. 


그와 함께 참수된 사람은 강화도 갑곶을 지키던 하급 지휘관 변이척이었는데 둘의 공통점이 뭔지 아니?


 <조선왕조실록>에 가계(家系)에 대한 기록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거야. ‘무슨 벼슬을 지낸 아무개의 후예요, 승지 벼슬을 한 아무개의 손자요, 어느 고을 사또 한 아무개의 아들’이라는 식의 소개 한 자락 없는, 양반치고는 별 볼 일 없는 흙수저였다는 얘기야. 


인조가 강진흔을 두고 한 말은 정말이지 기가 막힐 정도란다. “강진흔은 싸우지도 못하고 달아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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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직 공무원과 비정규직 교사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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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직 공무원은 관사 욕실에서 목욕하다가 죽어도 ‘과로로 순직’이 되는데 말벌통 제거하다가 말벌에 쏘여 죽은 소방관은 순직이 아니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으려고 달려갔던 선생님이 비정규직이라고 순직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또 다른 강진흔이 없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니. 


정의가 의심받는 땅에서 희망이 어찌 건강할 수 있으며, 쳐다보지도 못할 나무가 즐비한 틈에서 열 번 찍을 노력의 도끼가 어찌 날을 세운단 말이냐. “싸우지도 달아나지도 못했다”라고 강진흔을 타박하던 인조의 목소리를 아빠는 얼마 전 <내부자들>이란 영화에서 들었다. ‘족보 없는 검사’에게 부장검사가 내지르던 소리지. “그러게 잘했어야지. 잘 태어나든가.”


http://www.ddanzi.com/ddanziNews/1658549

[산하칼럼]신각, 강진흔,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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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방어선 삼아 포진한 조선군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일본군이 모습을 드러내자 도원수 김명원은 무기를 다 강물에 밀어 넣고는 평복 차림을 하고 도망친다. 이때 김명원은 부원수 신각에게 자신과 함께 가자고 했지만 신각은 고개를 젓고 양주로 향한다. 여기서 신각은 유도대장, 즉 수도방위사령관을 맡고 있던 이양원과 함께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한다. 여기에 함경도 남병사 이혼의 병력까지 가세하여 오늘날의 해유령에서 일본군 소부대를 전멸시키고 평양에 있던 임금에게 그 머리를 베어 보냈다. 그런데 선조와 신하들은 대경실색을 한다. “이게 무슨 일이냐.”


문제는 김명원이었다. 평복 입고 도망친 주제에 결기는 살아서 자신을 뒤따르지 않은 부원수 신각이 자신의 명령을 거역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한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식으로 죄를 뒤집어씌웠고 이에 분기충천한 임금이 피난지에서 선전관을 보내 신각의 목을 치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당장 다른 선전관을 보내라! 앞선 선전관을 따라잡도록!” 명을 받은 선전관은 말 엉덩이가 찢어져라 채찍을 때리며 양주로 향했다.


그러나 숨이 턱에 닿도록 달려가 닿은 조선군 진영 앞에서 선전관은 아연실색을 하고 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 하나가 매달려 있었고 앞서 출발한 선전관은 다시 평양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명이오! 죽이지 말라는 어명이오!” 안타깝게 외쳤지만 떨어진 목이 다시 붙을 수는 없었다. 먼저 온 선전관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호소하던 유도대장 이양원 이하 장수들도 넋을 잃고 있었다. 함경도 남병사 이혼은 분통을 터뜨리며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북으로 가 버렸다.


실록에 기록된 바 ‘나라에 몸 바쳐 일을 처리하면서 청렴하고 부지런하였던’ 신각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되레 그 임무를 최대한 포기한 소인배 상사와 그 동류들에 의해 목이 떨어져 죽는다. 소규모이긴 했으나 전쟁 발생 후 최초의 승전을 기록한 용장의 죽음이었다. 칼날이 목에 떨어지던 순간, 신각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 목이 떨어져나가던 순간 늘어서 있던 병사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모르긴 해도 아마 이런 탄식이었을 것이다.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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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강화도를 지키던 충청 수사 강진흔 같은 사람이다. (역사 평설 병자호란 - 푸른역사에 자세히 나온다.) 북방 민족은 ‘수전에 약하다’는 상식을 믿고 세자빈과 대군들을 강화도에 피난시켰지만 청나라는 이미 항복한 명나라 장수들을 부리며 배들을 준비하고 있었고 마침내 ‘강화 상륙 작전’을 전개한다. 


이때 청나라 함대가 몰려나온 것이 갑곶이었고 여기를 맡은 것이 충청 수사 강진흔이었다. 강진흔은 목이 터져라 독전하며 맞싸워 청나라 배 3척을 침몰시키며 분전했다. 이때 주사대장, 즉 강화지역 해군 사령관 장신의 함대가 도착했는데 청나라 함대가 장신의 함대에 달려들자 장신은 뱃머리를 돌려 도망치고 만다.


이때 강진흔의 외침은 통렬하게 절박하고 미치도록 슬프다. “장신! 네가 나라의 은혜를 두터이 입고서도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느냐. 내 너를 베어 죽이겠다.” 이 외침을 들은 다른 장수들이 구원하러 달려가는 것도 장신은 막았다. 이 장신의 행동을 보다 못한 군관 하나는 피를 토하듯 장신을 꾸짖으면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전쟁이 끝난 뒤 인조 임금은 그렇게 비겁했던 주사대장 장신과 그보다 더 무책임했던 강화도 방어 책임자 김경징에게는 “병력이 없고 배도 부족했다.”며 감싸다가 거센 비난에 직면해서 마지못해 사형을 내린다. 그런데 그때 볼 것도 없이 목을 쳐 버리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피눈물 흘리며 싸웠던 충청 수사 강진흔이었다.


충청 수영의 병사들과 군관들이 대궐 앞에 가서 엎드려 울부짖었다. “우리 장군은 죄가 없습니다.” “왜 자기 할 일을 한 장수를 죽이려 하십니까.” “그때 강화 앞바다에서 싸운 사람은 우리 장군 밖에 없습니다.” 눈 앞에서 도망간 사령관도 겨우 사약을 받는데 목숨 걸고 싸운 충청 수사는 망나니의 칼에 목숨을 잃게 되다니. 아무리 공자도 맹자도 모르고 논어와 중용 따위 읽지 않았다 하지만 도무지 눈을 까뒤집고 허파를 뒤집어도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의연했다고 기록에 남은 충청 수사 강진흔은 그 목이 잘렸다


. 그 목을 친 망나니도 이렇게 부르짖었을 것이다. “이런 개망나니같은 짓이 있는가.” 참수형 집행 소식을 들은 충청 수영 병사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런 망할 놈의 나라 콱 망해 버려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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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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