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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펌] 이름때문에 업적이 알려지지 않은 위인들 소개.txt
게시물ID : history_116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군대민영화
추천 : 11
조회수 : 2453회
댓글수 : 17개
등록시간 : 2013/09/14 01:22:38
 
1. 여말선초 조선의 문재를 담당하는 동시에 대쪽같은 인품을 가졌던 김자지.
 
 
김자지(金自知)
 
호는 일계(逸溪) 자(字)는 원명(元明) 본관(本貫)은 연안(延安)
 
 
고려 우왕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숭유억불 정책에 따랐으며
 
 
음양, 천문, 지리, 의약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박학다식하였다.
 
세종 때까지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한 때 판결을 잘 못 내려 파직당하기도 했으나, 곧 재기용되었다.
 
 
형조참의, 형조참판, 호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대사헌 재직시는
 
다섯번이나 세도공신을 탄핵하여, 뭇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김자지 선생의 묘는 현재 양평군 향토 유적 30호로 지정되어있다.
 
 
후손들은 훌륭한 조상의 이름을 피휘하고자
 
 
'잠지'라는 단어를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2. 고구려의 왕통, 비운의 두 형제, '고발기'들
 
<1> 맏형 고발기高拔奇
 
발기는 신대왕의 맏아들로, 고국천왕의 형이었다.
아버지의 사망이후 불초하다는 이유로 왕위를 빼앗긴 발기는 하호 3만을 이끌고 공손강에게 의탁하였다.
그 삼국지 게임에서 북동쪽 요동 그 분홍 쩌리요

이후 공손강을 부추겨 한나라의 군대라 읽고 공손씨 군대라 읽는다 어처피 호구 헌제시대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좌원에서 고국천왕에 격파당하고, 요동의 비류수에서 사망하였다.

<2> 셋째 고발기高發岐

발기는 신대왕의 셋째아들로, 고국천왕의 동생이며, 산상왕과 계수의 형이었다.
 
197년 5월, 형인 이 후사를 이을 자식을 얻지 못한 채 죽자 고국천왕의 왕후였던 우씨(于氏)는 형사취수의 관습에 따라 왕의 동생이었던 발기와 연우(延優) 중 한명과 혼인하여 그를 왕으로 추대해야 했다.

우씨는 왕이 죽은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발기에게 찾아가 "왕에게 후손이 없으니 님이 왕위를 이어야지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아직 왕이 죽은 것을 몰랐던 발기는 왕후 우씨의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되려 "왕의 부인이라는 사람이 오밤중에 함부로 싸돌아다닌다."고 면박주었다.

발기에게 망신을 당한 우씨는 곧장 자리를 떠나 발기의 아우인 연우의 집에 찾아갔는데, 연우는 왕후 우씨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의관을 차려입고 술자리를 열어서(...) 우씨를 환대해주었다. <del>므훗? 므훗? 으흥?</del> 우씨는 무뚝뚝한 발기보다는 부드러운 태도의 연우에게 더욱 마음이 끌렸는지 "왕이 후손없이 죽어서 발기가 맏이라서 왕이 되야 하는데, 나에게 다른마음이 있다고 이르고 무례하고 오만하고 예절없이 대해서 아주버니에게 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날 밤에 우씨는 연우를 궁궐로 대려갔고, 다음날 아침에 고국천왕유언에 따른다면서 연우와 혼인함과 동시에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으니 그가 바로 산상왕이었다.
 
이에 분노한 발기는 발기(發氣)하여 곧장 군대를 이끌고 왕궁을 포위한 후에 "왕위는 마땅히 형이 잇는 것이 예이다."라고 외치며 왕위를 넘기지 않는다면 왕과 그 처자를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가하였다. 이에 산상왕이 별 반응을 보이질 않자 산상왕의 처자식을 몽땅 잡아 죽여버렸다.
 
그러나 산상왕은 궁궐문을 3일동안 걸어잠그고 여론도 산상왕의 편으로 기울어지면서
결국 발기는 처자식을 데리고 요동의 공손도(공손탁)에게 의탁하였다. 그 삼국지 게임에서 북동쪽 요동 그 분홍쩌리2
 
이후에 발기는 공손도를 찾아가서는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리고는 왕위를 되찾을 수 있도록 군사를 빌려줄 것을 청하였다. 공손도는 이를 받아들여 발기에게 3만의 군사를 내주었으며, 발기는 한나라의 군대를 거느린채 고구려를 침략해왔다.
 
이에 산상왕은 계수로 하여끔 막게 하였고, 이 싸움에서 계수는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발기는 큰 패배를 당하였다.
 
계수는 발기를 추격하여 거의 따라잡았는데, 발기가 " "동생이 늙은 형을 해치려드느냐?"라고 묻자 형제간의 정이 떠올라 차마 발기를 잡지 못하였다.
그러나 계수는 대신 발기를 꾸짖으니
 
“연우(산상왕)가 나라를 넘겨주지 않은 것은 비록 의롭지 못한 것이지만 당신이 한 때의 분함을 가지고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죽은 후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을 보겠습니까?"
 
이에 발기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배수로 달아나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그게 무슨소리요
 
 
 
 
3. 비운의 북방개척의 선두자, 소드마스터 척준경의 절친, 왕字之.
 
 
王字之(1066~1122).

자는 원장이며 초명은 소중(紹中)이라 한다.

그는 서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으며 한때 내시이었다 (물론, 고려때 내시는 고자가 아니었지만...)

윤관의 북방개척에 참가해 공을 세웠으며

예종 3년 병마판관이 되어, 윤관의 지휘아래

엑스칼리버를 든 소드마스터 척! 척! 척! 척준경과 함께 함주와 영주에서 여진을 퇴치하였다.

그는 척준경과 매우 긴밀한 사이였는데

여진족의 기습을 받아 말을 빼앗기고 죽을 뻔한 것을 척준경이 구해주고 말을 잃은 그를 위해 적을 추격해

장갑마 한필을 얻어다준 것을 계기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후 승진하여 추밀원사와 이부상서의 자리에 올랐으며, 사은 겸  진봉사로 송에 갔다가 대성아악을 들고 귀국하였다.

말년에는 참지정사로 있다가 1122년 향년 57세로 사망하였다.

장순이라는 시호를 받고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는 영예를 안았으나

뒷날 배향공신 자격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결국 배향은 철회되고 말았다.

이렇게 업적이 많은데도 교과서 여백관련으로 실리지 못하였다 한다

 
4. 고조선의 마지막 영웅, 성기.
 
기원전 108년, 한 무제는 고조선을 침공하였다.
고조선은 험난한 지형에 의지하여, 누선장군 양복의 왕검성 공격군을 격파하고, 패수 서쪽에서 순체의 수군을 격파하였다.

게다가 한나라 지휘부의 순체와 양복가 내분을 벌임으로써 고조선은 한숨을 돌렸으나,
순체가 양복을 잡아가두고 총력전을 펼치면서 고조선의 대신들은 위기를 느꼈다.
이에 대신들은 우거왕에게 항복을 종용하나 우거왕은 이를 거부하고 이에 일부 대신들은 몰래 항복을 한다

그러던 중 우거왕이 이계상 삼에게 암살당하자
성기는 고조선의 혼란을 수습하고 항전의지를 다지며, 한군에 저항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도 항복을 하려던 우거왕의 아들과 이계상 삼에게 암살당하고, 고조선은 멸망하였다.

이름이 막장. 아들이란 놈이 뭔가 이상하지만 넘어가자
 
 
[재 조명이 필요한 역사인물들]
 
1. 고조선의 마지막 영웅이자 전사, 성기. 항복하려던 우거왕(고조선 최후의 왕)의 아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무엇인가 역할이 뒤바뀌었다. 아들이란 놈이
2. 소드마스터 척! 척! 척준경의 동료이자 부하, 왕자지. 사망 후 예종의 묘역에 배향되었으나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배향은 철회되었다.
3. 조선 초기 팔방미인이자 고관대작이면서 세도공신을 탄핵했던 김자지. 그의 후손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or 피휘)
'잠지'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대하신 인물들인데 단지 이름때문에... 이름때문에...
 
결론: 이름을 지을때는 정성스럽게 지어보자.
 
 
 
※ 다음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주신
 
과거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던 위대한 선조들의 이름을 나열한 것입니다.
 
 

[한국의 인물] 성기(成己)
... 대신(大臣) 성기는 최후까지 저항을 꾀하여 적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왕자 장(長)과 노인(路人)의 아들 최(最)가 왕검성내의 사람들을 선동하자, 성기는 마침내 이들에게 암살되고 왕검성도 아울러 함락되어 위만조선은 3대 80여년 만에 멸망하였다.史記, ...

[한국의 인물] 김성기(金聖基(器)1
젊어서는 활을 만드는 조궁장(造弓匠)이었으나 거문고를 배워 뛰어난 기량을 보여, 노년에는 서호(西湖)에 배를 띄우고 소일하면서 제자들에게 거문고를 가르쳤다. 당시의 시조작가 김천택(金天澤)과 교분이 있었으며, 자연을 읊은 〈강호가 江湖歌〉 다 ...

[한국의 인물] 도성기(陶成器)
1288년(충렬왕 14) 낭장(郎將)이 되어 남의 노비를 빼앗은 죄로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1295년 장군이 되고 공주의 총애로 내부(內府)의 홍정(紅鞓)을 하사받았다. 1297년에 공주가 병으로 죽었는데,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하여 주살되었다.高麗史, 高麗史 ...

[한국의 인물] 백성기(白性基)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고종 19) 남행선전관(南行宣傳官)으로 관로에 오르기 시작해서 같은해 무과에 급제한 뒤 승진을 거듭하여 승선(承宣)·철산부사(鐵山府使)·내금위장(內禁衛將)·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경상좌도병마절도사·한성부우윤 등을 역 ...

[한국의 인물] 임성기(任性基)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이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1896년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어 울진·평해 등지에서 일본군과 세 차례나 교전하다가 잡혔다. 1907년 9월 재차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 주둔소를 공격하다가 영해지방에서 잡혀 대구 남산사장(南 ...

[한국의 인물] 조성기(趙聖期)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일찍이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과거에 응시하여 사마시에 여러번 합격하였으나, 몸에 고질이 생겨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심실(深室)에 들어앉아 공부하기를 30년간이나 계속하여 천 ...

[한국의 인물] 한성기(韓性祺)2
... 집 《구암리 九岩里》(1975), 제5시집 《늦바람》이 있고, 《낙향 이후》 시선집으로 《한성기시선 韓性祺詩選》(1982) 등이 있다. 충청남도문화상(1965)·한국문학상(1975)·조연현문학상(1983)을 수상하였다.忠南文學 15(한국문인협회 충남지부, 1984). 〈崔元圭 ...

[한국의 인물] 한성기(韓成基)1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준기능보유자 한농선(韓弄仙)이 그의 딸이다. 16세 때부터 김창조(金昌祖)에게서 산조를 배웠으며 전라남도 지방과 서울 등지에서 가야금 연주활동을 하며 제자들에게 전수시켰다. 1930년부터 1941년까지 일본 동경에서 거주 ...

[과거합격자] 신성기(辛成己)
선조(宣祖) 23년. 경인년(1590) 합격. 무오1558(戊午1558) 출생.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인수(仁叟). 분순교위(奮順校尉) 합격자. 통례랑(通禮郞) 지냄. 부(父)는 신진(辛溍). 조부(祖父)는 신종윤(辛宗胤). 증조부(曾祖父)는 신형(辛衡).

[과거합격자] 이성기(李聖起)
숙종(肅宗) 41년. 을미년(1715) 합격. 을축1685(乙丑1685) 출생.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계언(季言). 유학(幼學) 합격자. 병조/정랑(兵曹/正郞) 지냄. 부(父)는 이희겸(李喜謙). 조부(祖父)는 이만하(李萬夏). 증조부(曾祖父)는 이계도(李繼道).

[과거합격자] 김성기(金聖基)
고종(高宗) 28년. 신묘년(1891) 합격. 계해1863(癸亥1863) 출생. 본관은 연안(延安). 유학(幼學) 합격자. 부(父)는 김도(金鍍).

[한국의 인물] 김자지(金自知)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1404년(태종 4) 집의가 되고, 1408년 형조참의가 되었다. 그뒤 1418년 호조참판, 이듬해에 형조참판이 되고, 다시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원주목사가 되고, 1423년(세종 5)에는 평안도관찰사, 1428년에는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

[한국의 인물] 왕자지(王字之)
서리(胥吏)에서 시작하여 매서인 왕국모(王國髦) 가 이자의(李資義)를 죽일 때 궁문을 지킨 공으로 도교령(都校令)이 되었으며, 숙종 때 내시를 거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다. 1108년(예종 3) 병마판관(兵馬判官)으로 윤관(尹瓘)휘하에서 척준경(拓 ...

[한국의 인물] 조자지(趙自知)
1482년(성종 13)경부터 남효온(南孝溫)·홍유손(洪裕孫)·이정은(李貞恩)·이총(李摠)·한경기(韓景琦) 등과 동대문 밖 대밭 속에 자주 모이면서 중국 진나라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자처, 소요건(逍遙巾)을 쓰고 세속적인 영화에서 벗어나 시(詩)·주(酒)·가 ...

[한국의 인물] 신보지(申寶至)
명종 때 장군이 되고 1181년(명종 11) 정월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만춘절(萬春節)을 축하하고 돌아와 같은해 12월에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올랐으며, 1194년 12월에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에 이르렀다.高麗史, 高麗史節要. 〈羅恪淳 ...

[한국의 인물] 장보지(張補之)
1363년(공민왕 12)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서운정(書雲正)으로서 2등공신이 되었다. 1378년(우왕 4) 왜구의 화를 피하기 위하여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로서 정당문학(政堂文學) 권중화(權仲和)와 함께 북소(北蘇) 기달(箕達: 峽溪)에 가서 궁궐의 터를 보고 왔 ...

[과거합격자] 이보지(李寶之)
세종(世宗) 2년. 경자년(1420) 합격. 유학(幼學) 합격자. 현감(縣監) 지냄.

[과거합격자] 남근(南瑾)
선조(宣祖) 19년. 병술년(1586) 합격. 병진1556(丙辰1556) 출생.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계헌(季獻). 호는 용호(龍湖). 진사(進士) 합격자. 지사(知事) 지냄. 부(父)는 남응운(南應雲). 조부(祖父)는 남세건(南世健). 증조부(曾祖父)는 남변(南忭).

[한국의 인물] 유방(庾方)
993년(성종 12) 거란의 소손녕(蕭遜寧)이 침입하여오자 화친사로 감찰사헌 이몽전(李蒙戩)을 보내었는데 돌아와서 아무런 회답이 없자 드디어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하게 되었다. 이때 대도수(大道秀)와 함께 낭장으로서 소손녕과 싸워서 이기니 더 이상 진 ...

[과거합격자] 유방(柳房)
연산군(燕山君) 7년. 신유년(1501) 합격.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평원(平原). 사직(司直) 합격자. 부(父)는 유자광(柳子光). 조부(祖父)는 유규(柳規). 증조부(曾祖父)는 유두명(柳斗明).

[과거합격자] 유방(柳埅)
영조(英祖) 20년. 갑자년(1744) 합격. 갑술1694(甲戌1694)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생원(生員) 합격자. 부(父)는 유춘서(柳春瑞). 조부(祖父)는 유향(柳晑). 증조부(曾祖父)는 유경창(柳慶昌).

[한국의 인물] 김유방(金惟邦)
1919년에 김동인(金東仁)·김억(金億)·전영택(田榮澤)·주요한(朱耀翰)·김환(金煥)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동인지 《창조 創造》를 창간하였다. 그러나 그는 평론과 희곡을 몇 편 썼을 뿐, 적극적인 문단활동이나 연극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  

[한국의 인물] 서유방(徐有防)
수찬 효수(孝修)의 아들이며, 이조판서 유린(有隣)의 동생이다. 1768년(영조 44)에 진사가 되어 음보로 교관(敎官)을 지내다가 1772년 별시 탕평과(蕩平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부응교 등을 역임하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우부승지에 임명되었으며, 1778년(정조 2) ...

[한국의 인물] 고유방(高惟訪)
궁정작화기관(宮廷作畵機關)이었던 도화원(圖畵院, 또는 畵局)의 화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사》에 의하면 이광필(李光弼)과 함께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高麗史, 고려시대의 일반회화(洪善杓, 韓國美術史, 藝術院, 1984). 〈許英桓 ...

[한국의 인물] 아음부(阿音夫)
236년(조분이사금 7) 2월 무리를 거느리고 신라에 항복하였다. 그 공으로 신라로부터 저택과 전장(田莊)을 받았으며, 골벌국은 신라에 편입되어 군(郡)이 되었다. 진한의 소국 가운데 유일하게 왕의 이름이 전하고 있다.三國史記. 〈文暻鉉 ...

[한국의 인물] 음모(陰牟)
미천왕 을불(乙佛)이 왕위에 오르기 전 봉상왕에 의하여 아버지 돌고(咄固)를 잃고 피신하여 다녔다. 이때 을불의 정체를 모르고 고용하여 밤에는 개구리가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연못에 돌을 던지게 하고, 낮에는 나무를 해오게 하는 등 가혹하게 부렸다. ...

[한국의 인물] 고자(高慈)
... 되었으며, 고자는 아버지의 공훈에 힘입어 우무위장상(右武衛長上) 등을 받았다. 696년 거란을 토벌하는 군사(軍事)에서 문이 여하도토격대사(濾河道討擊大使)에 임명되어 출진하자 종군하였다. 이 전쟁에서 공로를 세워 장무장군(壯武將軍)을 제수받기도 ...

[한국의 인물] 문고고자(文賈古子)
《일본서기》 및 《원흥사가람연기 元興寺伽藍緣起》에 인용된 〈원흥사노반명〉에서는 그를 각각 사공(寺工)·사사(寺師)라 하여 사찰의 조영을 맡은 기술자임을 알 수 있다. 588년(위덕왕 35) 사공 태량미태(太良未太), 노반박사(露盤博士) 백매순(白昧淳) ...

[한국의 인물] 발기(發岐)
... 왕의 장자 발기(拔奇)라는 인물이 보이며, 《삼국사기》에서는 이 발기(拔奇)와 발기(發岐)를 별개의 인물로 취급했으나, 양자를 동일인물로 보는 것이 옳을듯하다. 197년에 고국천왕이 자식 없이 죽고 동생 연우(延優)가 왕비 우씨(于氏)의 후원을 얻어 산 ...

[한국의 인물] 이자위(李子威)
1076년(문종 30)요나라의 황후가 상을 당하자 형부시랑으로 호부상서 왕석(王錫)과 함께 사신으로 다녀왔다. 1081년 이부시랑으로 예부상서 최사제(崔思齊)와 함께 송나라에서 의약(醫藥)을 보내준 데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다녀왔다. 이듬해 우부승선(右副 ...

[과거합격자] 윤성교(尹誠敎)
숙종(肅宗) 8년. 임술년(1682) 합격. 을해1635(乙亥1635) 출생.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행일(行一). 전참봉(前參奉) 합격자. 목사(牧使) 지냄. 부(父)는 윤변(尹抃). 조부(祖父)는 윤훈거(尹勛擧). 증조부(曾祖父)는 윤황(尹煌).

[과거합격자] 남성교(南性敎)
헌종(憲宗) 3년. 정유년(1837) 합격. 계축1793(癸丑1793) 출생.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금여(錦汝). 참봉(參奉) 합격자. 부(父)는 남이범(南履範). 조부(祖父)는 남기노(南綺老). 증조부(曾祖父)는 남태계(南泰堦).

[과거합격자] 조성교(趙性敎)
철종(哲宗) 10년. 기미년(1859) 합격. 무인1818(戊寅1818) 출생.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성유(聖唯). 군수(郡守) 합격자. 부(父)는 조형만(趙亨晩). 조부(祖父)는 조수인(趙秀仁). 증조부(曾祖父)는 조사근(趙思近).

[과거합격자] 강간(康侃)
영조(英祖) 9년. 계축년(1733) 합격. 경진1700(庚辰1700) 출생. 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간여(侃如). 생원(生員) 합격자. 찰방(察訪) 지냄. 부(父)는 강제만(康濟萬). 조부(祖父)는 강시석(姜時錫). 증조부(曾祖父)는 강내쇄(姜乃𤨏).

[과거합격자] 강도(姜導)
순조(純祖) 19년. 기묘년(1819) 합격. 계축1793(癸丑1793) 출생. 본관은 진주(晉州). 유학(幼學) 합격자. 부(父)는 강경(姜澃). 조부(祖父)는 강협일(姜協一). 증조부(曾祖父)는 강재빈(姜再彬).

[과거합격자] 이범인(李範仁)
고종(高宗) 25년. 무자년(1888) 합격. 무오1858(戊午1858)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원(聖元). 진사(進士) 합격자. 부(父)는 이계하(李啓夏).

[한국의 인물] 윤간(尹侃).  
본관은 파평(坡平). 부(父)는 윤필상(尹弼商).

[한국의 인물] 고환(高懽).
본관은 제주(濟州).

[과거합격자] 정자(鄭滋)
중종(中宗) 35년. 경자년(1540) 합격. 을해1515(乙亥1515) 출생.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민고(敏古). 진사(進士) 합격자. 이조/정랑(吏曹/正郞) 지냄. 부(父)는 정유심(鄭惟沈). 조부(祖父)는 정위(鄭潙). 증조부(曾祖父)는 정자숙(鄭自淑).

[한국의 인물] 배정자(裵貞子)
... . 일본에서 정자로 개명하고 이토로부터 수영·사격술·변장술 등 철저한 밀정교육을 받았다. 한편 사상적 세뇌를 받고 1894년에 귀국하여 일본세력의 비호를 받고 일본의 한국침략을 위한 반민족적인 부일(附日) 앞잡이노릇을 하여 우리나라의 국권박탈을 ...

[한국의 인물] 임신(林信)
1340년(충혜왕 복위 1)에 그의 딸이 단양대군(丹陽大君)의 노비로 사기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왕이 보고 총애하여 옹주로 삼고 상인이었던 그에게는 대호군을 제수하였다. 그가 기륜(奇輪)을 구타하였는데, 왕이 그의 편을 들어 친히 가서 기륜의 집을 헐어 ...

[한국의 인물] 한국의 왕 - 신라 - 지마이사금
지마이사금 (祇摩尼師今) ■ ?∼134 ■ 신라 제6대왕 ■ 재위 112∼134 지미(祇味) 또는 지마(祇磨)라고도 한다.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파사이사금(婆娑 尼師今)이고, 어머니는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史省夫人)이며, 비는 갈문왕 마제(摩 ...

[한국의 인물] 한국의 왕 - 신라 - 아달라이사금
아달라이사금 (阿達羅尼師今) ■ ?∼184 ■ 신라 제8대왕 ■ 재위 154∼184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일성이사금이고, 어머니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로 박 씨(朴氏)이다. 왕비는 지마이사금의 딸인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로 8촌 사이의 족내 혼이었다. ...

[한국의 인물] 추남(楸南)
... 게 되었다. 추남이 죽던 날 밤에 고구려 왕은 추남이 김유신의 아버지인 서현(舒玄)의 부인 품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이 사실을 여러 신하들에게 알렸다. 고구려의 신하들도 추남이 맹세하고 죽더니 그의 예언이 과연 맞았음을 알고, 추남의 화신인 신 ...

[한국의 인물] 고조다(高助多)
고추대가(古鄒大加)였으나 일찍 죽었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고,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문자명왕이 되었다.三國史記. 〈徐永大 ...

[한국의 인물] 유시발(柳時發)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인 팽로(彭老)의 손자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음보(蔭補)로 벼슬길에 나아가 현감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우고 집의에 임명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 ...

[과거합격자] 이시발(李時發)
선조(宣祖) 22년. 기축년(1589) 합격. 기사1569(己巳1569) 출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유학(幼學) 합격자. 형조/판서(刑曹/判書) 지냄. 부(父)는 이대건(李大建). 조부(祖父)는 이경윤(李憬胤). 증조부(曾祖父)는 이발(李渤).

[과거합격자] 조도(趙渡)
순조(純祖) 16년. 병자년(1816) 합격. 신해1791(辛亥1791) 출생. 본관은 배천(白川). 유학(幼學) 합격자. 부(父)는 조상급(趙相汲). 조부(祖父)는 조여갑(趙與甲). 증조부(曾祖父)는 조경엽(趙敬曄).

[한국의 인물] 박규(朴葵)
음보(蔭補)로 여러 벼슬을 거쳐 1425년(세종 7) 판통례원사(判通禮院事)가 되고 형조·이조의 참의를 지낸 뒤, 1429년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총제(同知摠制)에 승진되고 예조·호조·형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1433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재직중 야인(野人 ...

[한국의 인물] 이하악(李河岳)
1649년 산릉사(山陵使)로 천거되어 공로로 6품직에 제수되었다. 효종 때 김육(金堉)이 백성의 부역을 개정하기 위하여 그에게 위임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보은현감으로 임명되니 충청도관찰사의 위임을 받아 백성들의 부역문제를 잘 처리하 ...

[한국의 인물] 대간지(大簡之)
중국의 《화사회요 畵史繪要》를 인용한 이 기록으로 미루어보면 그는 산수화를 잘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발해출신의 화가로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져 있으나 전하는 유작은 없다.海東繹史, 韓國書畵人名辭書(金榮胤, 漢陽出版社, 1959). 〈安輝濬 ...

[한국의 인물] 안습(安習).
본관은 공산(公山). 부(祖父)는 안익(安翊).  
 
 
 
 
p.s
 
유명한 대학자 남명 조식 선생의 증조부의 함자는
 
'조안습'이다.
 
그리고 이분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197년 5월, 형인 이 후사를 이을 자식을 얻지 못한 채 죽자 고국천왕의 왕후였던 우씨(于氏)는 형사취수의 관습에 따라 왕의 동생이었던 발기와 연우(延優) 중 한명과 혼인하여 그를 왕으로 추대해야 했다.

우씨는 왕이 죽은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발기에게 찾아가 "왕에게 후손이 없으니 님이 왕위를 이어야지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아직 왕이 죽은 것을 몰랐던 발기는 왕후 우씨의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되려 "왕의 부인이라는 사람이 오밤중에 함부로 싸돌아다닌다."고 면박주었다.

발기에게 망신을 당한 우씨는 곧장 자리를 떠나 발기의 아우인 연우의 집에 찾아갔는데, 연우는 왕후 우씨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의관을 차려입고 술자리를 열어서(...) 우씨를 환대해주었다. <del>므훗? 므훗? 으흥?</del> 우씨는 무뚝뚝한 발기보다는 부드러운 태도의 연우에게 더욱 마음이 끌렸는지 "왕이 후손없이 죽어서 발기가 맏이라서 왕이 되야 하는데, 나에게 다른마음이 있다고 이르고 무례하고 오만하고 예절없이 대해서 아주버니에게 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날 밤에 우씨는 연우를 궁궐로 대려갔고, 다음날 아침에 고국천왕유언에 따른다면서 연우와 혼인함과 동시에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으니 그가 바로 산상왕이었다.
 
이에 분노한 발기는 발기(發氣)하여 곧장 군대를 이끌고 왕궁을 포위한 후에 "왕위는 마땅히 형이 잇는 것이 예이다."라고 외치며 왕위를 넘기지 않는다면 왕과 그 처자를 모두 죽여버리겠다고 위협을 가하였다. 이에 산상왕이 별 반응을 보이질 않자 산상왕의 처자식을 몽땅 잡아 죽여버렸다.
 
그러나 산상왕은 궁궐문을 3일동안 걸어잠그고 여론도 산상왕의 편으로 기울어지면서
결국 발기는 처자식을 데리고 요동의 공손도(공손탁)에게 의탁하였다. 그 삼국지 게임에서 북동쪽 요동 그 분홍쩌리2
 
이후에 발기는 공손도를 찾아가서는 동생에게 왕위를 빼앗겼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그리고는 왕위를 되찾을 수 있도록 군사를 빌려줄 것을 청하였다. 공손도는 이를 받아들여 발기에게 3만의 군사를 내주었으며, 발기는 한나라의 군대를 거느린채 고구려를 침략해왔다.
 
이에 산상왕은 계수로 하여끔 막게 하였고, 이 싸움에서 계수는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발기는 큰 패배를 당하였다.
 
계수는 발기를 추격하여 거의 따라잡았는데, 발기가 " "동생이 늙은 형을 해치려드느냐?"라고 묻자 형제간의 정이 떠올라 차마 발기를 잡지 못하였다.
그러나 계수는 대신 발기를 꾸짖으니
 
“연우(산상왕)가 나라를 넘겨주지 않은 것은 비록 의롭지 못한 것이지만 당신이 한 때의 분함을 가지고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 하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죽은 후 무슨 면목으로 조상들을 보겠습니까?"
 
이에 발기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배수로 달아나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그게 무슨소리요
 
 
 
 
3. 비운의 북방개척의 선두자, 소드마스터 척준경의 절친, 왕字之.
 
 
王字之(1066~1122).

자는 원장이며 초명은 소중(紹中)이라 한다.

그는 서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으며 한때 내시이었다 (물론, 고려때 내시는 고자가 아니었지만...)

윤관의 북방개척에 참가해 공을 세웠으며

예종 3년 병마판관이 되어, 윤관의 지휘아래

엑스칼리버를 든 소드마스터 척! 척! 척! 척준경과 함께 함주와 영주에서 여진을 퇴치하였다.

그는 척준경과 매우 긴밀한 사이였는데

여진족의 기습을 받아 말을 빼앗기고 죽을 뻔한 것을 척준경이 구해주고 말을 잃은 그를 위해 적을 추격해

장갑마 한필을 얻어다준 것을 계기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후 승진하여 추밀원사와 이부상서의 자리에 올랐으며, 사은 겸  진봉사로 송에 갔다가 대성아악을 들고 귀국하였다.

말년에는 참지정사로 있다가 1122년 향년 57세로 사망하였다.

장순이라는 시호를 받고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는 영예를 안았으나

뒷날 배향공신 자격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결국 배향은 철회되고 말았다.

이렇게 업적이 많은데도 교과서 여백관련으로 실리지 못하였다 한다

 
4. 고조선의 마지막 영웅, 성기.
 
기원전 108년, 한 무제는 고조선을 침공하였다.
고조선은 험난한 지형에 의지하여, 누선장군 양복의 왕검성 공격군을 격파하고, 패수 서쪽에서 순체의 수군을 격파하였다.

게다가 한나라 지휘부의 순체와 양복가 내분을 벌임으로써 고조선은 한숨을 돌렸으나,
순체가 양복을 잡아가두고 총력전을 펼치면서 고조선의 대신들은 위기를 느꼈다.
이에 대신들은 우거왕에게 항복을 종용하나 우거왕은 이를 거부하고 이에 일부 대신들은 몰래 항복을 한다

그러던 중 우거왕이 이계상 삼에게 암살당하자
성기는 고조선의 혼란을 수습하고 항전의지를 다지며, 한군에 저항하였다.

하지만 결국 그도 항복을 하려던 우거왕의 아들과 이계상 삼에게 암살당하고, 고조선은 멸망하였다.

이름이 막장. 아들이란 놈이 뭔가 이상하지만 넘어가자
 
 
[재 조명이 필요한 역사인물들]
 
1. 고조선의 마지막 영웅이자 전사, 성기. 항복하려던 우거왕(고조선 최후의 왕)의 아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무엇인가 역할이 뒤바뀌었다. 아들이란 놈이
2. 소드마스터 척! 척! 척준경의 동료이자 부하, 왕자지. 사망 후 예종의 묘역에 배향되었으나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배향은 철회되었다.
3. 조선 초기 팔방미인이자 고관대작이면서 세도공신을 탄핵했던 김자지. 그의 후손들은 그를 기리기 위해(or 피휘)
'잠지'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대하신 인물들인데 단지 이름때문에... 이름때문에...
 
결론: 이름을 지을때는 정성스럽게 지어보자.
 
 
 
※ 다음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주신
 
과거 위대한 업적을 남기셨던 위대한 선조들의 이름을 나열한 것입니다.
 
 

[한국의 인물] 성기(成己)
... 대신(大臣) 성기는 최후까지 저항을 꾀하여 적군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왕자 장(長)과 노인(路人)의 아들 최(最)가 왕검성내의 사람들을 선동하자, 성기는 마침내 이들에게 암살되고 왕검성도 아울러 함락되어 위만조선은 3대 80여년 만에 멸망하였다.史記, ...

[한국의 인물] 김성기(金聖基(器)1
젊어서는 활을 만드는 조궁장(造弓匠)이었으나 거문고를 배워 뛰어난 기량을 보여, 노년에는 서호(西湖)에 배를 띄우고 소일하면서 제자들에게 거문고를 가르쳤다. 당시의 시조작가 김천택(金天澤)과 교분이 있었으며, 자연을 읊은 〈강호가 江湖歌〉 다 ...

[한국의 인물] 도성기(陶成器)
1288년(충렬왕 14) 낭장(郎將)이 되어 남의 노비를 빼앗은 죄로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1295년 장군이 되고 공주의 총애로 내부(內府)의 홍정(紅鞓)을 하사받았다. 1297년에 공주가 병으로 죽었는데,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하여 주살되었다.高麗史, 高麗史 ...

[한국의 인물] 백성기(白性基)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고종 19) 남행선전관(南行宣傳官)으로 관로에 오르기 시작해서 같은해 무과에 급제한 뒤 승진을 거듭하여 승선(承宣)·철산부사(鐵山府使)·내금위장(內禁衛將)·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경상좌도병마절도사·한성부우윤 등을 역 ...

[한국의 인물] 임성기(任性基)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이후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1896년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어 울진·평해 등지에서 일본군과 세 차례나 교전하다가 잡혔다. 1907년 9월 재차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 주둔소를 공격하다가 영해지방에서 잡혀 대구 남산사장(南 ...

[한국의 인물] 조성기(趙聖期)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일찍이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과거에 응시하여 사마시에 여러번 합격하였으나, 몸에 고질이 생겨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사람들과 접촉을 끊고 심실(深室)에 들어앉아 공부하기를 30년간이나 계속하여 천 ...

[한국의 인물] 한성기(韓性祺)2
... 집 《구암리 九岩里》(1975), 제5시집 《늦바람》이 있고, 《낙향 이후》 시선집으로 《한성기시선 韓性祺詩選》(1982) 등이 있다. 충청남도문화상(1965)·한국문학상(1975)·조연현문학상(1983)을 수상하였다.忠南文學 15(한국문인협회 충남지부, 1984). 〈崔元圭 ...

[한국의 인물] 한성기(韓成基)1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의 준기능보유자 한농선(韓弄仙)이 그의 딸이다. 16세 때부터 김창조(金昌祖)에게서 산조를 배웠으며 전라남도 지방과 서울 등지에서 가야금 연주활동을 하며 제자들에게 전수시켰다. 1930년부터 1941년까지 일본 동경에서 거주 ...

[과거합격자] 신성기(辛成己)
선조(宣祖) 23년. 경인년(1590) 합격. 무오1558(戊午1558) 출생.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인수(仁叟). 분순교위(奮順校尉) 합격자. 통례랑(通禮郞) 지냄. 부(父)는 신진(辛溍). 조부(祖父)는 신종윤(辛宗胤). 증조부(曾祖父)는 신형(辛衡).

[과거합격자] 이성기(李聖起)
숙종(肅宗) 41년. 을미년(1715) 합격. 을축1685(乙丑1685) 출생.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계언(季言). 유학(幼學) 합격자. 병조/정랑(兵曹/正郞) 지냄. 부(父)는 이희겸(李喜謙). 조부(祖父)는 이만하(李萬夏). 증조부(曾祖父)는 이계도(李繼道).

[과거합격자] 김성기(金聖基)
고종(高宗) 28년. 신묘년(1891) 합격. 계해1863(癸亥1863) 출생. 본관은 연안(延安). 유학(幼學) 합격자. 부(父)는 김도(金鍍).

[한국의 인물] 김자지(金自知)
고려 우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1404년(태종 4) 집의가 되고, 1408년 형조참의가 되었다. 그뒤 1418년 호조참판, 이듬해에 형조참판이 되고, 다시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원주목사가 되고, 1423년(세종 5)에는 평안도관찰사, 1428년에는 형조판서가 되었다. 이때 ...

[한국의 인물] 왕자지(王字之)
서리(胥吏)에서 시작하여 매서인 왕국모(王國髦) 가 이자의(李資義)를 죽일 때 궁문을 지킨 공으로 도교령(都校令)이 되었으며, 숙종 때 내시를 거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다. 1108년(예종 3) 병마판관(兵馬判官)으로 윤관(尹瓘)휘하에서 척준경(拓 ...

[한국의 인물] 조자지(趙自知)
1482년(성종 13)경부터 남효온(南孝溫)·홍유손(洪裕孫)·이정은(李貞恩)·이총(李摠)·한경기(韓景琦) 등과 동대문 밖 대밭 속에 자주 모이면서 중국 진나라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자처, 소요건(逍遙巾)을 쓰고 세속적인 영화에서 벗어나 시(詩)·주(酒)·가 ...

[한국의 인물] 신보지(申寶至)
명종 때 장군이 되고 1181년(명종 11) 정월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만춘절(萬春節)을 축하하고 돌아와 같은해 12월에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올랐으며, 1194년 12월에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에 이르렀다.高麗史, 高麗史節要. 〈羅恪淳 ...

[한국의 인물] 장보지(張補之)
1363년(공민왕 12)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서운정(書雲正)으로서 2등공신이 되었다. 1378년(우왕 4) 왜구의 화를 피하기 위하여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로서 정당문학(政堂文學) 권중화(權仲和)와 함께 북소(北蘇) 기달(箕達: 峽溪)에 가서 궁궐의 터를 보고 왔 ...

[과거합격자] 이보지(李寶之)
세종(世宗) 2년. 경자년(1420) 합격. 유학(幼學) 합격자. 현감(縣監) 지냄.

[과거합격자] 남근(南瑾)
선조(宣祖) 19년. 병술년(1586) 합격. 병진1556(丙辰1556) 출생.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계헌(季獻). 호는 용호(龍湖). 진사(進士) 합격자. 지사(知事) 지냄. 부(父)는 남응운(南應雲). 조부(祖父)는 남세건(南世健). 증조부(曾祖父)는 남변(南忭).

[한국의 인물] 유방(庾方)
993년(성종 12) 거란의 소손녕(蕭遜寧)이 침입하여오자 화친사로 감찰사헌 이몽전(李蒙戩)을 보내었는데 돌아와서 아무런 회답이 없자 드디어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하게 되었다. 이때 대도수(大道秀)와 함께 낭장으로서 소손녕과 싸워서 이기니 더 이상 진 ...

[과거합격자] 유방(柳房)
연산군(燕山君) 7년. 신유년(1501) 합격.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평원(平原). 사직(司直) 합격자. 부(父)는 유자광(柳子光). 조부(祖父)는 유규(柳規). 증조부(曾祖父)는 유두명(柳斗明).

[과거합격자] 유방(柳埅)
영조(英祖) 20년. 갑자년(1744) 합격. 갑술1694(甲戌1694)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생원(生員) 합격자. 부(父)는 유춘서(柳春瑞). 조부(祖父)는 유향(柳晑). 증조부(曾祖父)는 유경창(柳慶昌).

[한국의 인물] 김유방(金惟邦)
1919년에 김동인(金東仁)·김억(金億)·전영택(田榮澤)·주요한(朱耀翰)·김환(金煥)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문예동인지 《창조 創造》를 창간하였다. 그러나 그는 평론과 희곡을 몇 편 썼을 뿐, 적극적인 문단활동이나 연극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  

[한국의 인물] 서유방(徐有防)
수찬 효수(孝修)의 아들이며, 이조판서 유린(有隣)의 동생이다. 1768년(영조 44)에 진사가 되어 음보로 교관(敎官)을 지내다가 1772년 별시 탕평과(蕩平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부응교 등을 역임하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우부승지에 임명되었으며, 1778년(정조 2) ...

[한국의 인물] 고유방(高惟訪)
궁정작화기관(宮廷作畵機關)이었던 도화원(圖畵院, 또는 畵局)의 화가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사》에 의하면 이광필(李光弼)과 함께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高麗史, 고려시대의 일반회화(洪善杓, 韓國美術史, 藝術院, 1984). 〈許英桓 ...

[한국의 인물] 아음부(阿音夫)
236년(조분이사금 7) 2월 무리를 거느리고 신라에 항복하였다. 그 공으로 신라로부터 저택과 전장(田莊)을 받았으며, 골벌국은 신라에 편입되어 군(郡)이 되었다. 진한의 소국 가운데 유일하게 왕의 이름이 전하고 있다.三國史記. 〈文暻鉉 ...

[한국의 인물] 음모(陰牟)
미천왕 을불(乙佛)이 왕위에 오르기 전 봉상왕에 의하여 아버지 돌고(咄固)를 잃고 피신하여 다녔다. 이때 을불의 정체를 모르고 고용하여 밤에는 개구리가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연못에 돌을 던지게 하고, 낮에는 나무를 해오게 하는 등 가혹하게 부렸다. ...

[한국의 인물] 고자(高慈)
... 되었으며, 고자는 아버지의 공훈에 힘입어 우무위장상(右武衛長上) 등을 받았다. 696년 거란을 토벌하는 군사(軍事)에서 문이 여하도토격대사(濾河道討擊大使)에 임명되어 출진하자 종군하였다. 이 전쟁에서 공로를 세워 장무장군(壯武將軍)을 제수받기도 ...

[한국의 인물] 문고고자(文賈古子)
《일본서기》 및 《원흥사가람연기 元興寺伽藍緣起》에 인용된 〈원흥사노반명〉에서는 그를 각각 사공(寺工)·사사(寺師)라 하여 사찰의 조영을 맡은 기술자임을 알 수 있다. 588년(위덕왕 35) 사공 태량미태(太良未太), 노반박사(露盤博士) 백매순(白昧淳) ...

[한국의 인물] 발기(發岐)
... 왕의 장자 발기(拔奇)라는 인물이 보이며, 《삼국사기》에서는 이 발기(拔奇)와 발기(發岐)를 별개의 인물로 취급했으나, 양자를 동일인물로 보는 것이 옳을듯하다. 197년에 고국천왕이 자식 없이 죽고 동생 연우(延優)가 왕비 우씨(于氏)의 후원을 얻어 산 ...

[한국의 인물] 이자위(李子威)
1076년(문종 30)요나라의 황후가 상을 당하자 형부시랑으로 호부상서 왕석(王錫)과 함께 사신으로 다녀왔다. 1081년 이부시랑으로 예부상서 최사제(崔思齊)와 함께 송나라에서 의약(醫藥)을 보내준 데 대한 사은사(謝恩使)로 다녀왔다. 이듬해 우부승선(右副 ...

[과거합격자] 윤성교(尹誠敎)
숙종(肅宗) 8년. 임술년(1682) 합격. 을해1635(乙亥1635) 출생.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행일(行一). 전참봉(前參奉) 합격자. 목사(牧使) 지냄. 부(父)는 윤변(尹抃). 조부(祖父)는 윤훈거(尹勛擧). 증조부(曾祖父)는 윤황(尹煌).

[과거합격자] 남성교(南性敎)
헌종(憲宗) 3년. 정유년(1837) 합격. 계축1793(癸丑1793) 출생.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금여(錦汝). 참봉(參奉) 합격자. 부(父)는 남이범(南履範). 조부(祖父)는 남기노(南綺老). 증조부(曾祖父)는 남태계(南泰堦).

[과거합격자] 조성교(趙性敎)
철종(哲宗) 10년. 기미년(1859) 합격. 무인1818(戊寅1818) 출생.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성유(聖唯). 군수(郡守) 합격자. 부(父)는 조형만(趙亨晩). 조부(祖父)는 조수인(趙秀仁). 증조부(曾祖父)는 조사근(趙思近).

[과거합격자] 강간(康侃)
영조(英祖) 9년. 계축년(1733) 합격. 경진1700(庚辰1700) 출생. 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간여(侃如). 생원(生員) 합격자. 찰방(察訪) 지냄. 부(父)는 강제만(康濟萬). 조부(祖父)는 강시석(姜時錫). 증조부(曾祖父)는 강내쇄(姜乃𤨏).

[과거합격자] 강도(姜導)
순조(純祖) 19년. 기묘년(1819) 합격. 계축1793(癸丑1793) 출생. 본관은 진주(晉州). 유학(幼學) 합격자. 부(父)는 강경(姜澃). 조부(祖父)는 강협일(姜協一). 증조부(曾祖父)는 강재빈(姜再彬).

[과거합격자] 이범인(李範仁)
고종(高宗) 25년. 무자년(1888) 합격. 무오1858(戊午1858)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원(聖元). 진사(進士) 합격자. 부(父)는 이계하(李啓夏).

[한국의 인물] 윤간(尹侃).  
본관은 파평(坡平). 부(父)는 윤필상(尹弼商).

[한국의 인물] 고환(高懽).
본관은 제주(濟州).

[과거합격자] 정자(鄭滋)
중종(中宗) 35년. 경자년(1540) 합격. 을해1515(乙亥1515) 출생.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민고(敏古). 진사(進士) 합격자. 이조/정랑(吏曹/正郞) 지냄. 부(父)는 정유심(鄭惟沈). 조부(祖父)는 정위(鄭潙). 증조부(曾祖父)는 정자숙(鄭自淑).

[한국의 인물] 배정자(裵貞子)
... . 일본에서 정자로 개명하고 이토로부터 수영·사격술·변장술 등 철저한 밀정교육을 받았다. 한편 사상적 세뇌를 받고 1894년에 귀국하여 일본세력의 비호를 받고 일본의 한국침략을 위한 반민족적인 부일(附日) 앞잡이노릇을 하여 우리나라의 국권박탈을 ...

[한국의 인물] 임신(林信)
1340년(충혜왕 복위 1)에 그의 딸이 단양대군(丹陽大君)의 노비로 사기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왕이 보고 총애하여 옹주로 삼고 상인이었던 그에게는 대호군을 제수하였다. 그가 기륜(奇輪)을 구타하였는데, 왕이 그의 편을 들어 친히 가서 기륜의 집을 헐어 ...

[한국의 인물] 한국의 왕 - 신라 - 지마이사금
지마이사금 (祇摩尼師今) ■ ?∼134 ■ 신라 제6대왕 ■ 재위 112∼134 지미(祇味) 또는 지마(祇磨)라고도 한다.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파사이사금(婆娑 尼師今)이고, 어머니는 허루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史省夫人)이며, 비는 갈문왕 마제(摩 ...

[한국의 인물] 한국의 왕 - 신라 - 아달라이사금
아달라이사금 (阿達羅尼師今) ■ ?∼184 ■ 신라 제8대왕 ■ 재위 154∼184 성은 박씨(朴氏). 아버지는 일성이사금이고, 어머니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로 박 씨(朴氏)이다. 왕비는 지마이사금의 딸인 내례부인(內禮夫人) 박씨로 8촌 사이의 족내 혼이었다. ...

[한국의 인물] 추남(楸南)
... 게 되었다. 추남이 죽던 날 밤에 고구려 왕은 추남이 김유신의 아버지인 서현(舒玄)의 부인 품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고 이 사실을 여러 신하들에게 알렸다. 고구려의 신하들도 추남이 맹세하고 죽더니 그의 예언이 과연 맞았음을 알고, 추남의 화신인 신 ...

[한국의 인물] 고조다(高助多)
고추대가(古鄒大加)였으나 일찍 죽었기 때문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였고,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여 문자명왕이 되었다.三國史記. 〈徐永大 ...

[한국의 인물] 유시발(柳時發)
호남창의대장(湖南倡義大將)인 팽로(彭老)의 손자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음보(蔭補)로 벼슬길에 나아가 현감에 이르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우고 집의에 임명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 ...

[과거합격자] 이시발(李時發)
선조(宣祖) 22년. 기축년(1589) 합격. 기사1569(己巳1569) 출생.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양구(養久). 호는 벽오(碧梧). 유학(幼學) 합격자. 형조/판서(刑曹/判書) 지냄. 부(父)는 이대건(李大建). 조부(祖父)는 이경윤(李憬胤). 증조부(曾祖父)는 이발(李渤).

[과거합격자] 조도(趙渡)
순조(純祖) 16년. 병자년(1816) 합격. 신해1791(辛亥1791) 출생. 본관은 배천(白川). 유학(幼學) 합격자. 부(父)는 조상급(趙相汲). 조부(祖父)는 조여갑(趙與甲). 증조부(曾祖父)는 조경엽(趙敬曄).

[한국의 인물] 박규(朴葵)
음보(蔭補)로 여러 벼슬을 거쳐 1425년(세종 7) 판통례원사(判通禮院事)가 되고 형조·이조의 참의를 지낸 뒤, 1429년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동지총제(同知摠制)에 승진되고 예조·호조·형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1433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재직중 야인(野人 ...

[한국의 인물] 이하악(李河岳)
1649년 산릉사(山陵使)로 천거되어 공로로 6품직에 제수되었다. 효종 때 김육(金堉)이 백성의 부역을 개정하기 위하여 그에게 위임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보은현감으로 임명되니 충청도관찰사의 위임을 받아 백성들의 부역문제를 잘 처리하 ...

[한국의 인물] 대간지(大簡之)
중국의 《화사회요 畵史繪要》를 인용한 이 기록으로 미루어보면 그는 산수화를 잘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발해출신의 화가로 유일하게 이름이 알려져 있으나 전하는 유작은 없다.海東繹史, 韓國書畵人名辭書(金榮胤, 漢陽出版社, 1959). 〈安輝濬 ...

[한국의 인물] 안습(安習).
본관은 공산(公山). 부(祖父)는 안익(安翊).  
 
 
 
 
p.s
 
유명한 대학자 남명 조식 선생의 증조부의 함자는
 
'조안습'이다.
 
그리고 이분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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