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이국땅에서 온몸을 사른 독립투사들의 혼이 밴 항일 유적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윤봉길 의사 묘전 앞에서 열린 ‘윤봉길 의사 탄생 105주년 기념식’.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상임부회장 겸 매헌기념관장 윤주씨(66)는 “윤 의사의 탄신일에 이처럼 우울한 이야기를 하게 돼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그는 최근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소식을 접했다.
상하이(上海)시 훙커우(虹口)구의 인민정부 관계자로부터 루쉰공원(옛 훙커우공원) 광장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인 ‘매헌(梅軒)’의 폐쇄가 불가피하다는 말을 전해들은 것이다.
‘매헌’ 기념관의 공식 명칭은 ‘윤봉길 의사 생애사적전시관’으로 윤 의사가 일본군 요인들을 폭살한 훙커우공원 의거를 기념해 훙커우구 인민정부가 1994년 건립했다.“개관 첫해인 1994년 연간 20만여명에 달한 관람객이 최근 몇 년 새 3분의 1로 줄었답니다. 중국 정부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 관광수입이 괜찮은 유적지는 적극 복원하고 유지 관리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가져준다면 관광객 유치에 큰 어려움이 없을 텐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윤 관장은 해외 유적지는 물론 국내 기념관조차 보존이 잘 안돼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1988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시민의 숲에 건립된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시설이 낡아 벽면에 금이 가고 누수현상이 생긴 지 오래다.
최근에는 건물 뒤편의 기왓장이 떨어져 내려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윤 관장은 장마가 본격 시작되는데 관람객이 많은 주말에 혹시 사상자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했다.“기념관 방문자들은 속도 모르고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시설 관리가 왜 이렇게 허술하냐며 항의를 해요. 순수 민간 차원의 성금으로 건립된 기념관은 정부로부터 한푼의 지원도 받지 못한다는 걸 모르는 거죠. 지금까지 무보수 명예직으로 활동하는 임원들이 십시일반 모아온 기금과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했어요. 이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비가 새도 보수공사는 고사하고, 전기요금 등 공과금이 두세 달씩 밀리는 상황이에요.”
윤 관장은 국가나 지자체에 소유권이 있는 기념관만 운영비를 지원하는 현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기념관의 소유권 소재가 아니라 설립 목적, 규모, 공헌 정도 등을 고려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윤 관장은 윤봉길 의사의 동생인 고 윤남의 선생의 아들이다. 윤남의 선생은 윤 의사의 훙커우의거 이후 와해된 농촌 계몽운동 조직인 ‘월진회’를 되살려 평생 사회활동을 펼쳐왔고, 아들인 윤 관장에게 큰아버지의 애국정신을 교육했다.
“어렸을 때 부친께서 장롱에서 보자기를 꺼내 피묻은 손수건을 꺼내 보는 광경을 여러 번 봤습니다. 윤 의사께서 순국하시기 전에 사용한 손수건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친구들을 불러 자랑하기도 했어요.”윤 관장은 대학 시절부터 주위 친구들과 함께 ‘매헌학회’를 만들어 학보와 일간지에 글을 기고하는 등 윤 의사의 삶과 독립운동을 알리는 데 일생을 바쳤다. 요즘은 월진회를 이끌며 젊은이들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매헌기념관에 ‘윤봉길 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역사교육을 소홀히 하면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립니다. 각종 사회병리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더 늦기 전에 역사교육을 제대로 해 무너져내리는 정신의 기둥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