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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관련 글을 쓰기 시작한 지가 어언 10년이다. 그동안 수천 편의 글을 썼고, 수만 건의 기사를 읽었다. 그 방면으로는 나름 준전문가 수준은 된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간의 경험에 비쳐, 도무지 신뢰하지 못하는 국가기관들이 있다.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믿을 수 없는, 아니 믿음이 안 가는 부류의 조직 말이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상명하복을 지고지순의 미덕으로 여긴다는 점, 폐쇄적이며 비민주적이라는 점, 법조차 초월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점 등이 그렇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국정원, 군, 그리고 검찰은 사실상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 국가기관이라 해도 무방한 조직이다. 그렇다보니 각종 부정 비리에 노출되기가 쉽고, 시대적 화두인 개혁과 혁신과도 동떨어져 있다.
사정기관인 검찰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군과 국정원의 경우 정권의 기조와 의지에 따라 조직의 운용 방향과 철학 등이 개선될 여지가 있지만 검찰은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검찰은 언제나 '검찰'편이기 때문이다.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직제상 통제를 받아야 할 법무부 장관의 명조차 무시되기 일쑤다. 대통령과 장관의 명령과 지시보다 중요한 것이 검찰총장의 뜻이며 의중이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검찰'은 대한민국 검찰의 민낯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명숙 사건'을 보자.
이 사건은 지난 2009년 12월 검찰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한명숙 전 총리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검찰은 소환에 불응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총리 공관에 대해 현장검증을 실시하는 등 고강도 수사를 펼쳐 논란을 자초했다.
6개월 뒤에 있을 서울시장 선거에서 유력한 야당 후보로 거론되던 한 전 총리에 대한 표적수사라는 세간의 비판이 잇따랐던 것이다. 기소 이후 서울시장 선거 직전까지 한 전 총리는 무려 13차례에 걸쳐 공판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피의사실을 언론에 유포한 검찰에 의해 난도질 당하며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한 전 총리는 결국 0.7%의 차이로 선거에서 낙선하고 만다.
당시 검찰 수사는 재판부가 꼬집을 정도로 기소 내용이 부실했다. 1~3심 모두 검찰이 제시한 공소장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재판부는 검찰이 피고인 곽영욱의 허위자백을 이끌어 내기 위해 강압수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검찰의 기소 자체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관련해 곽영욱은 당시 재판부에 검찰의 강압수사 사실을 털어놓은 바 있다.
곽영욱이 말을 바꾸자 검찰은 이번에는 한신건영 한만호 대표를 끌어들여 한 전 총리를 엮으려 했다. 이후 과정은 모두가 안다. 곽영욱과 마찬가지로 한만호 역시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가 있었다고 토로하며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박근혜 대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명숙 사건이 다시 부각된 건 얼마 전 <뉴스타파>가 한만호의 친필 비망록을 조명하면서다. 한만호는 옥중에서 작성한 비망록을 통해 당시 검찰이 한 전 총리를 기소하기 위해 강압수사와 허위자백을 유도하는 등 표적수사를 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한만호는 검찰이 돈을 전달한 순서와 관련해 "433·332·333" 등의 숫자를 암기하게 했다며 사건 자체가 조작·날조됐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윤석열 검찰이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검찰이 한 전 총리를 잡기 위해 기획·모의했던 정치사건을 재수사해야 마땅할 터다. 그러나 윤석열 검찰은 해당 사건을 대검 감찰부가 아닌 중앙지검의 인권감독관으로 배당해 버렸다. 이에 검찰의 표적수사 사건을 검찰 내부의 인권침해나 비리를 조사하는 인권감독관으로 배당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부장검사급으로 알려진 인권감독관이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관련자들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를 펼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검찰의 생리를 감안하면 사실상 봐주기, 부실 수사의 전철을 밟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판사 출신인 한동수 감찰부장이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배경이다. 검찰 내부의 자체 조사를 믿을 수 없다는 뜻.
한동수 부장이 책임자로 있는 대검감찰 본부는 검찰로부터 독립된 수사권까지 갖춘 별도의 조직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한명숙 사건은 당연히 인권감독관이 아닌 감찰본부에서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검찰 자체 조사로 진상규명이 제대로 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윤석열 검찰은 한명숙 사건은 감찰부 소관이 아니라는 원론적 해명을 늘어놓으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자신들이 해왔던 온갖 모략과 악행, 부정과 비행의 흔적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도 저따위 헛소리를 내놓는 걸 보면, 검찰이 스스로 자정을 일으키거나 개혁을 할 종자들이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도무지 신뢰가 안가는 국가기관들이 있다.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믿을 수 없는, 전혀 믿음이 안 가는 부류의 조직 말이다. 겉으로는 법과 원칙을 내세우면서, 그 법과 원칙을 마음껏 유린하고 있는 윤석열 검찰이 그중 으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검찰이 자행한 '뻘짓'을 무수히 봐왔지만, 윤석열 검찰의 악행은 가히 '넘사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시민의 압도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은 검찰총장이었다는 점에서 비극도 이런 비극이 없다. 윤석열은 적폐 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열망에 차디찬 비수를 꽂았다. 그가 역대 최악의 검찰이자, 최악의 검찰총장으로 불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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