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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기리족보 타이젬 바둑왕에 오르다
게시물ID : humorstory_4434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도사-
추천 : 3
조회수 : 261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1/14 13:12:38

요즘 <응답하라 1988> 덕분에 바둑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듯합니다. 

게다가 얼마전 이세돌 9단의 아까운 반집패도 항간의 이슈가 됐었죠. 


바둑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문득 재밌게 읽었던 글이 떠올라 자유게시판에 올려봅니다. 

아주 오래전(2005년쯤) 갈무리 해놨던 글인데 다행히 전문은 스크랩을 해뒀지만, 원글 링크는 워낙 오래돼서 찾을 수가 없네요. 


원출처는 타이젬(www.tygem.com)의 '기리족보'라는 아이디를 쓰시던 분의 글입니다.

(맞춤법 및 띄어쓰기, 오타 일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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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족보 타이젬 바둑왕에 오르다 


아내는 고상한것들을 아주 싫어하는 단순 과격형이요 무식쯤은 목에 거는 악세사리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 아내와 판을 벌린 내가 잘못이다 
어쩌면 모든 사단이 아내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연 용서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요즘 묘수를 찾기위해 긴 장고에 빠져있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는 아내가 어느날 넷 고스톱을 배워 와서는 컴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새는 줄 모른다 하더니 아내가 그짝이다
좀 하다가 싫증나면 그만 하겠지 하고 그냥 못본채 했더니 멍청하게도 어느날 낯선 남자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가 기겁을 하고 내게 전화를 넘겨 주고는 "오잉 남자에요?" 한다
고스톱 치는 상대자가 여자 이름이라 몇마디 나누다가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는데
남자 목소리가 나오니 기겁을 한 것이다 
"이런 숙맥같은 여편네가 있나 요즘 어떤 세상인데 함부러 전화번호를 알려줘? 바보 아니야 당신 앞으로 고스톱 치면 그날로 끝이야 알아 들었어?" 
이렇게 호통을 치며 컴 금지령을 내렸다 사실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살림 꾸려가면서 스트레스도 그렇게 푸는것도 괞찮겠지 했는데 그일로 그냥 두면 안되겟다 싶어 컴을 뺏앗아 앉은 것이 한 반년 전 일이다
또한 타이젬과 인연을 맺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물론 아내로부터 쉽게 컴을 차지 한 것은 아니다
넷 고스톱에 중독이 되어서 그런지 며칠안가 또 컴에 앉아 있는걸 보고 나무라니
"그냥 입도 벙긋 안하고 고스톱만 칠게요" 하면서 버티는 것이다
내가 힘으로 끌어내니 자꾸 그러면 밖에 나가 돈내고 화투칠거라고 협박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궁리 끝에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다
어느날 TV바둑 방송을 틀어 놓고 
"우와! 바둑 한판에 상금이 1억인가 2억이라 하네?"
억 자에 엑센트를 강하게 주며 혼자말처럼 소리 쳤더니 돈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내가 예상대로 반응을 보여 왔다 
"아니 무슨 판이 그렇게 커 정말 1억씩걸어놓고 저사람들 두고 있는거야?" 
아내는 바둑도 화투처럼 내기에 쓰이는 잡기로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여름 한철 앞집 문구점 박원장님과 맥주내기 바둑 두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다 싶어 바둑에 대해 간단히 아내에게 설명했다 
주로 아내가 솔깃할 상금 이야기를 많이 했다 
바둑은 도박이 아닌 정신 스포츠로 각종 대회가 엄청 많이 열리고 상금 또한 보통 억대이고 이창호나 조훈현 같은 사람은 1년에 상금이 한 백억쯤 된다고 부풀려 이야기 했더니 대뜸 아내가 말한다
"자기도 바둑대회 나가 자기 바둑 잘 두잖아 웅?" 하며 바싹 다가 앉는다
 
아내는 내가 바둑을 엄청 잘 두는 줄 알고 있다 
사실 나의 기력은 후하게 쳐도 6-7급 정도다
기원 근처에도 못가보고 순전히 어깨너머로 배운 바둑이라 비공식적이라 할수 있다
그런 내가 대단한 고수로 둔갑 한 것은 순전히 신혼 때 살았던 집 앞 문구점 박원장님 때문이다
 
박원장님은 본인말로는 교육계에 종사하다 은퇴 했다고 하는데 우리집앞에서 희망 문구점 간판을 달고 할머니와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문구는 물론이고 술과 잡화등 슈퍼도 겸하고 있었다 
그 앞에 평상이 있어 겨울 빼고는 늘 그곳에서 바둑이 벌어 졌다 
바로 옆에 가로등이 있어 여름에는 밤늦게 까지 바둑을 두어 우리는 도둑걱정 없이 편하게 지낼 정도였다
 
 
어느날 여름밤 맥주사러 갔는데 역시 박원장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옆에서 누가 손님이 왔다고 하니 힐끔 쳐다보고는 안면이 있어 그런지 
"아~ 잠시만요!" 하고는 다시 바둑에 눈을 박아 버린다 
그때 나는 바둑 15급정도의 초급바둑으로 축도 일일히 손가락으로 짚어나가는 수준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옆에서 그냥 구경하게 되었는데,
아마 승패가 갈리는 아주 중요한 순간 이었던 것 같았다 
대마가 걸린 패사움이라 한수 삐걱 하면 끝장이 나는 그런 판이었던 것 같았다 
드디어 원장님 이 불계승을 거두고 맥주내기였는지
"얼른 맥주가져와 목부터 축이자고 입에서 단내가 나는구먼 허허~" 하며 한껏 기분을 내며 일어서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그때서야 생각났는지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하며 몹시 미안해 하길래 
"아닙니다 저도 구경 잘 했습니다" 하며 내가 직접냉장고에서 캔맥주 두병 꺼내들고 돈을 드렸는데 
세상에 거스름돈이라고 손에 쥐어 주는데 보니까 물기가 촉촉한 하얀 바둑돌이 아닌가 
여태 손에 들고 있다가 거스름돈이라고 쥐어 준 것이엇다 
"내가 이게 뭡니까?" 하며 웃으니 
"아이고 내가 이거 정신이 나가 버렸네" 하며 
허둥지둥 돈통을 여는데 같이 있던 사람들 모두가 이사님 하여튼 못말린다고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었다 
마을금고 명예이사라 모두 이사님이라고 하는데 유독 나만 원장님이라고 부른게 된 연유는 이러하다
 
그날밤 헤프닝으로 나도 자연히 평상대국 멤버로 합류 하게 되었는데 멤버들은 동네에서 모두 장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원장님은 기원6급 실력으로 제일 상수 였고 철물점 이씨는 8급 (청년회장)비디오가게 오씨는 9급 
그리고 장어구이집 원씨는 10급 등 다 고만고만한 하수 들이라 실력보다는주로 덜컥 수로 승패가 많이 갈리는 언제나 화기애애한 골목기원이요 맥주한잔 나누는 친목단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모국회의원 당원들이기도 했다 
어째든 나는 박원장님에게 여섯점으로 출발하여 석달만에 정선까지 기력이 급상하여 평상기원 최고수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게 되어 강6급으로 인정 받았다
 
그것이 한계였는지 아직도 그이상 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줄어든 느낌이다
주로 캔맥주내기였는데 처음에는 물주에서 나중에는 대접받는 입장이엇다
저녁마다 평상으로 줄행랑치는 나에게 아내의 불만이 싸여가고 잔소리 또한 심해졌다
급기야 박원장님은 문구점 영감탱이가 되고 나머지는 동네 놈팽이가 되어 싸잡아 욕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나보고 한번만 더 그들과 어울리면 가만 안 있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박원장님은 교장선생님 출신인데 지금도 시내에 큰 바둑학원을 운영하는데 사범들 여럿두고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금고도 저분 것이고 국회위원 모씨도 저분한테 꺼벅 죽는다 
저사람 빽이 얼마나 좋은지 구청에서 가게 앞에 가로등까지 세워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방법대장에 청년회 위원장 그리고 통장님등 모두 이동네 유지들이다 
저사람들 하고 친하면 여러모로 이득이 된다 당장 민방위 훈련도 안가도 된다 
그리고 저 원장님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바둑고수인데 저분 한테 바둑 배우려면 돈을 엄청 내야하는데 우리는 이웃이라 그냥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머리가 좋다고 특별히 지도도 많이 해주어 거의 비슷한 실력이 되었다 
그러니 앞으로 원장님 보면 깍듯히 인사나 하라구~ 
 
사실 박원장님은 향상 모시옷에 합죽선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어허하고 몸을 뒤로 재끼곤 햇는데 누가 봐도 엄청난 내공을 지닌고수처럼 보인다 
그런 좋은 풍채와 나의 뻥튀기 우상화로 아내도 수긍을 하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 원장이 기원 갈 때 아내는 "학원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하였다 
원장님은 가게를 낮에는 할머니한테 맡기고 매일 기원에 다녔는데 기원을 젊은 사람들이 학원이라 하는 줄 알았는지 아내의 인사에 당연히 "아 네~" 하고 잘 응대하여 나의 평상 대국은 계속 되었다 
 
 
우리가 그곳을 떠나면서 바둑도 멀어지게 되었는데 벌써 십년 전 일이기도 하다
그런 고수들 이기는 바둑이니 아내는 자연히 나를 바둑고수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 뻥아니야 바둑 잘둔다는 것?" 
"이사람이 누가뻥이래" 하고 성질을내니 
"그러면 왜 그때 대회같은데 나가지 안 나갔느냐?" 하면서 아내가 큰 돈에 잠시 홀렸던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게 아닌가? 
나는 '안 돼 깨어나면 안 돼' 하고 속으로 외치며 수습에 나섰다 
 
그 당시에는 상금이 수억씩 하는 세계대회도 없었고 국내 대회는 상금이 일이백 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만일 우승못하면 처자식 밥굶기겠다 싶어 깨끗이 접었다고
지금처럼 이렇게 커질 줄 알았다면 계속 공부 했을텐데 하고 사뭇 애통해 하자
"어이구 등신 그래 당신은 어떻게 한치 앞도 못 내다 보느냐! 당신하는 일이 그렇지!!" 하면서
아내는 에구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쉬운지 "자갸 지금은 영 안되겠어?" 하는게 아닌가
"왜 어디 학원같은데 가서 조금만 공부하면 못 따라갈까? 저봐!" 하면서 화면속에 조훈현국수를 가리키면서 "저기 저사람은 당신보다 훨신 나이도 많구먼 엉? 어떻게 안 되겠어?" 하며 허벅지를 쥐고 흔든다
저사람은 어릴때부터 공부하고 일본 유학까지 갓다 왔는데 나는 못 따라가 하니 
아내는 체념하듯 "에구 그렇치 뭐 내 복에 무슨" 하면서 신세 한탄에 들어 가려 한다 
그순간 나는 혼자말처런 "글쎄? 공부 좀 하면 큰 대회는 아니더라도 작은 대회는 나갈수 있을라나~" 하니 작은대회는 상금이 얼마냐 한다 
한 오백에서 몇 천까지 대중없다 하니 다시 아내의얼굴이 박꽃같이 환해지면서 
"할 수 있겠어 자기 그럼 어떻게 공부 할건데 공부만 하면 자신있는거지?" 하며 바싹 다가 앉는다
 
어허 나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어디 고수한테나 학원같은데 배우려면 한달에 한 백만원정도 나가는데 요사이 인터넷 바둑사이트에 들어가면 고수들한데 배울 수 있다 십만원만 하면 된다고 하니 당장 시작 하라 하면서 손에 거금 이십만원을 쥐어 주는게 아닌가 
아내는 그뒤 한 번도 컴 앞에 앉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무료였던 타이젬에 석달 정회원으로 가입하고 타이젬아 어화둥실 나하고 놀아보자 하고 밤마다 컴을 차지하여 마음놓고 타이젬을 활보 할수 있었다
물론 아내로부터 받은 이십만원은 술 사먹었다 
장미 응원도 돈으로 산다고 해놓고는 엥해서 장미응원을 했다 
물론 아내는 고수님께 꽃선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엄청난 장미다발을보고는 나처럼 배우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생각을 했는지 걱정을 하였다 
그럴때면 나는 대기실목록 하수들 클릭하여 전부 나보다 한수 아래니까 걱정말아라 했다 
당시 나는 7급부터 시작했는데 아내가 몇 급이 제일 세냐고 묻길래 1급이라고 했다 
한 일년만 하면 1급될 것이다 그러니 걱정말라고 아내를 안심시켰다 
 
정회원이 되고나니 가 볼 데가 너무 많았다 
음방에도 가야 되고 만화도 봐야 하고 
소설도 읽고 리플도 달아야 하고 
또 베팅하고 엥도 하고 하니 보통 새벽 한두시였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쉬엄쉬엄 하세요 하면서 밤마다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캔맥주등 간식거리를 쉴새없이 갖다 날랏다 
그 바람에 체중이 5키로나 늘었다
아내는 보약까지 지으러 하는것을 양심상 그것은 막아야 되겠다 싶어 지금 체중이 불어있는데 여기서 보약먹고 살이 더 찐다면 대회출전 못 한다고 했다
체중도 상관이 있다 했더니 다음날부터 아이스크림등 살찌는 간식이 없어져 버렸다 
맥주도 잘 안주려 했다 살찐다고 
어째던 나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내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반찬부터 시작하여 잠자리까지 아내는 나를 끔직히 챙겨주었다 
 
 
기리족보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었다
특히 잠자리서비스가 좋아진 것이 개인적으로 제일 흐뭇하였다 
하지만 아내의 그런 지극정성이 커질수록 나의 심적부담 또한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휴일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타이젬에 접속하여 음방에서 키득대며 채팅하는데 
아들놈이 자꾸 게임하고 싶다고 비켜 달라는게 아닌가 나는 안된다 아들놈은 비켜라 하고 옥신각신하는데 
문이 덜컹 열리더니 "너 빨리나와! 너 아빠공부하는데 방해 말라 했지" 하면서
손에 빗자루를 높이 쳐들고 있는데 장판교에 창을 꼬나들고 서있는 영락없는 장비 모습이다 
아이가 볼맨 소리로 "이것 아빠 게임하는거란 말이야 아까 킥킥대고 있었는데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하며 항의하자 "시끄러 콱!! 너 맞고 싶어?" 하면서 당장 내리칠 기세다
(임마 저게 얼마나 돈 되는 것인데 노다지야 노다지) 아내는 차마 그 소리를 아이한테 하지는 않았지만 돈 앞에 그 무엇이던 아내에게는 통하지 않기에 아들놈은 그 뒤로 내가 앉아 있으면 아예 포기하고 피시방이나 친구집으로 놀러 가버렸다
 
 
아들놈은 내가 특별대우받는 것 보고 자기도 배우고 싶다 하는 것 내가 안된다 했다
인격형성이 된 뒤에 배워야 하는데 일찍 배우면 잘못하여 잡기가 되어 사람버린다 하며 안된다 했다
거짓말이다 바둑을 알면 나의 허접이 들통나기 때문이다 흐흐흐
 
 
아내의 그런 집착과 관심이 일말을 불안감으로 즐거운 타이젬생활에 반감이 되었지만 그것은 나중일이라 치부하고 나의 신나는 타이젬 바둑공부는 계속되었고 별로 대국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덧 1급이 돼버렸다 
아이디옆에 1급이 된 것을 본 아들이 엄마에게 일러주었고
한걸음에 달려온 아내는 흥분된 목소리로 이제 대회출전할수 있느냐 하였다
나는 동급 1급들을 쭉 보여 주면서 이사람들 모두 이겨야 한다 했다 
"뭔 1급들이 이렇게 많아요?" 한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쉬운게 아니다 바둑이 돈 된다 하니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두려고 난리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러니 조용히 기다려라 1급에서 다시 2급으로 떨어 질 수 있으니 이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대충 그런 식으로 나는 시간을 벌어 놓아고 한동안 대국을 멀리 하였다 
아내가 왜 바둑은 안 두는냐 하면은 내가 너무 고수라 아무도 나하고 붙으려 하지 않는다 원래 고수끼리는 잘 안붙으려 하는법이다 라고 둘러 대었다 
 
 
하지만 사달은 그만 내가 내고 말았다 
일말을 불안감이 검은 그림자가 되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모처럼 쉬는날이라 늦은 아침을 먹고 컴 앞에 앉아 타이젬에 접속을 하였다 갑자기 대국을 하고 싶어 설정을 대국허용으로 바꾸고 만만한 하수를 기다렸다
사실 2승만 올리면 꿍에 그리던 1단이 되는 것이다
내심 단반열에 한번 올라 보고 싶었기에 마우스를 잡은 손에 작은 흥분으로 손끝이 다 떨리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드디어 대국이 시작되고 한 판씩 주고 받아 단에 오르는데 1승을 남겨놓고 다시 다른사람과 대국을 했는데 강자다 얼른 항복하고 다른 상대와 두는데 출발이 좋았다 
느낌이 온 것이다 
그 순간 아까부터 김치냉장고 사러 가자고 조르던 아내가 들어왔다
잠시만 잠시만 한 것이 벌써 한 시간이 된 모양이다 
갔다와서 하라며 채근하는 아내에게 조금더 기다려 이 판만 하고 했더니 아이참 하며 다른날과 달리 신경질을 내며 코드를 뽑으려고 하는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뭐야!! 하며 고함을 치며 아내를 나무랐다
 
그리고는 그만 해서는 안될 말을 해버렸다 유리했기에 꼭 단에 오르고 싶었기에
"당신 이 바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않아 이 바둑만 이기면 드디어 단이 된다고 단!!"하니
"단은 또 뭐에여?" 하는 아내에게 나는 1급중에 최고수가 되는 것이다 단이 된다면 대회 나갈 수 있는 조건이 주어 진다 그래서 이 한 판에 목이라도 걸어야 한다 
어쩌면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가만 있어라~ 이제 당신 고생 끝났다~
나는 바둑에 몰두해 있었기에 대충 그런 소리를 내밷고 말앗다
 
아내는 깜짝 놀라며 헉~ 그렇게 중요한 바둑이면 진작 말을 해야지 
아이구 내가 미친년이지 이 성질때문에 큰일 낼뻔 했구먼 하며 스스로 책망하며 나가더니 
어느새 유자차 한 잔 옆에 살며시 갖다놓고 뒤쪽에 무릎꿇고 앉아 손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
아무런 종교도 없는 아내가 누구에게 비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승리를 비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나중에 올 파장은 걱정도 없이 나는 그저 어느때보다 신중하게 두어서 드디어 승리를 거두었다 
와! 만세 이겼다!!는 나의 함성과 동시에 아내가 벌떡 일어나 나를 끌어 안고 엉엉 우는게 아닌가 
"여보 나는 당신이 해낼줄 알았어여 정말 장해요" 아내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나는 이래도 되냐 싶었지만 나도 기뻤기에 에라 모르겟다 하는 심정으로
 
아내의 눈물을 딱아주며 정겨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동안 당신이 정말 수고 했어 이 영광은 모두 당신 덕분이야"
울고 싶은데 고춧가루뿌려준 격으로 아내는 더욱 감격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날 저녁 수라상같은 밥상이 차려졌다 
계추때나 나오는 큰상에 차려 놓았는데 상다리가 부러질것 같았다 
낮에 누님과 동생을 부르려고 하는 것을 나중에 대회나가 상금타면 
그때 식구들 모두 불러서 잔치하고 오늘은 우리끼리 자축하자 했더니 
네식구 사흘먹어도 못먹을 음식을 손큰 아내는 해버렸다

나는 프로 입단식이다 자위하며 찔리는 양심을 애써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작은 상에 따로 차려진 술상이었는데 가관이었다
그 이름도 찬란한 임페리얼 17년산이 상중앙에 힘찬 남성처럼 우뚝 서 있는게 아닌가 
비록 작은병이지만 12년산도 아닌 17년산이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맨날 소주인데 양주라니 그것만 보아도 아내는 이 저녁상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또 한번 가슴이 미어져 왔다 어디서 보았는지 보온 도시락에 얼음도 가득하였고 우유에 실론티까지 준비 돼 있었다 
 
 
아내가 먼저 한잔을 올리면서 다시 한번 축하 인사를 해준다 
"참으로 당신 대단해요 해준 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에 바둑왕이 되었는지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한다 그러면서 눈물을 찍아낸다 나는 그저 두눈 질끈 감는 수 밖에
아들이 "엄마 아빠 바둑왕 되었어? 하니 "그렇단다 너도 아빠게 축하주 한 잔 올리거라" 한다
아들이 "아빠 축하해요" 하면서 한 잔 올리고 딸이 또 한잔 올리고 몇 잔 들어가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간이 부어 오른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 수가 나겠지 하고 
아내에게도 한 잔 주면서
"그 동안 당신이 수고 했어요 자 한 잔 받으시오" 하고 잔을 권하니 아내의 자태가 요상하다
반 무릎으로 공손히 두 손으로 잔을 받더니 살짝 고개를 돌리고 마시는 것이 아닌가
평소 나보다 술을 더 마시며 불쑥 한 손으로 잔을 내밀며 자 따라라 하는 아내가 이렇게 변하더니 분명 아내는 지금 고상해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아침마당에 나온 조훈현국수 사모님을 보고는 참 보기 좋더라 하더만 자기도 언제가는 그렇게 텔레비젼에 출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고상을 떠는게 틀림이 없었다 
"너희들 아버지께서 얼마나 휼륭한 줄 아느냐? 고모도 그랬다 너희 아버지 뒷바라지만 잘 해주었다면 아주 큰 인물이 되었을 것이라고 그러니 너희들은 앞으로 아버지께 항상 말 공손히하고 행동거지 조심하여라" 하면서 목소리를 착 깔면서 말하는게 우스워 나와 아이들은 마주보며 킥킥 대었다 
딸애가 "엄마 왜그래?" 하니 "콱! 가시내가" 하고는 금방 본색을 드러 낸다
 
나는 "어허~ 내가 한마디 하리다~ 하며 마치 황제가 된 양 무게를 잡으니
아이들이 또 킥킥 거린다 아내가 도끼눈을 하고야 모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다
 
비록 내가 오늘 바둑왕이 되었지만 세상에는 고수들이 엄청 많을 것이다
내가 공부한곳에서 바둑왕이 된것이지 우리나라 바둑왕이 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바둑왕이 될려면 또 얼마나 걸리지 모른다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이 사람도 내적 소양이 쌓이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언제 대회에 출전 할지는 모른지만 그때까지 내가 바둑왕이 된 것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된다 지금 세상이 어수선하여 잘못하면 대회나가기도 전에 잘못 될수도 있어요 얼마전에 인천의 한 바둑왕이 칼을 맞은적이 있단다 상대방이 미리 손을 쓴것이야 
 
"어머나 여보 어떡해여~", "아빠 어떻해" 하며 호들갑이다 
"어허 조용히 그래서 소문을 내지 말란 말이야" 
저녁내 내딴에 생각해둔 묘수였다 
소문나면 무슨 쪽팔림인가 또한 그것을 안 아내로부터 나는 죽음이기에 내가 생각해둔 강구책이엇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입단속을 강조하더니 "여보 친구는 괜찮지?" 하는게 아닌가 
"이 사람 무슨소리 하는게야 혹시 어디 말한 것 아니야?" 하니 
아직 못했고 내일 할려고 했다 하는게 아닌가
분명 자랑할게 틀림이 없다 
"어허 내가 이럴 줄 알고 입조심하라고 하는거야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 몰라 나 칼 맞는것 보고 싶어?" 하고 으름을 놓으니 "알았어요 아무한테도 말안할게요 동서에게도..." 하며 아내가 꼬리를 내린다 일단은 안심이었다 
시간은 일단 벌어놓았는데 대마가 절대절명이다 
일단 장고하는 수 밖에는 
분명 묘수는 있을 것이다 
대마불사라 했으니
 
 
아내의 눈치가 작은대회라도 나가 몇 백 상금이라도 벌어 왔어면 하는 눈치인데 큰일이다
괜히 아들녀석하고 오목을 둔다고 먼지가 쌓여있던 바둑판을 반들반들 딱는게
무언을 시위로 느껴진다
트로피야 짜가하나 만들면 되지만 상금이 문제이다
또한 내가 허접이란걸 아는 날에는 그동안 월 이십만원씩 타서 술 먹은 것 모두 토해 놓고
두번 다시 바둑의 바자도 못 끄집어 낼지도 모른다 
낭패다 패중에서도 참으로 고약한 낭패가 난 것이다
나는 지금 장고 중이다 진신두같은 묘수를 찾기위해 장고 중인 것이다
 
 
^*^ 
살기가 모두 어렵다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어느해 보다도 쓸쓸하고 맥빠진 연말인 것 같습니다 
작은 즐거움이나 드릴까 하고 부족한 글 마음으로 대신합니다
모두 힘내시고 새해에는 뜻하시는 모든일 다 이루시기를 두손 모아 빕니다
그리고 저 당분간 바둑을 둘 수가 없습니다 
1단에서 2단으로 떨어져도(?) 안되고 1급으로 떨어져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대기실 목록 제일위에 기리족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밑에 운영자 몇 분들 그리고 준기 우정과 신라면 야 맛잇다 감각적의 절대지존 공짱타약 등
기라성 같은 프로고수님들도 모두 저의 하수입니다 
그렇게 이해해주십시요
행여 우리 마누라가 묻거든 그렇다고 기리족보가 제일 고수라고 말해 주십시요 
허접한 긴글 읽어주신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출처 구글링으로 뒤늦게 찾았으나, 역시 원글은 아님. (2004년 12월 19일 펌글)
http://www.thinkpool.com/MiniBbs.do?action=read&hid=think2001&sn=13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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