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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의 의혹을 두고 진실규명 하라는 똥아
게시물ID : sisa_115652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력거꾼김첨지
추천 : 9/2
조회수 : 1464회
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20/05/12 04:38:26
이용수 할머님의 수요집회 불참 발언으로 촉발된
정의기억연대의 후원금 사용의혹을 두고 
윤미향씨를 향한 언론들의 전방위적인 논란기사로
정의기억연대의 본질적인 정체성에 많은 의구심을
가진 시각으로 윤미향씨의 사회적 물의를 중심으로
수구언론들의 일심동체로 논란을 확대시키고 있다.
아픈 과거를 덮어두고 긴 세월을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찰나 1991년 8월.
갸름한 용모와 주름이 깊게 패인 할머님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는데
바로 일본군에게 강제 성착취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으신 고 김학순 할머님의 충격적인 증언이었다.
김학순 할머님은 1924년 만주 지린 출신으로 17세 당시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소 생활을 하셨고 그로부터
5개월 뒤 조선인 남성을 만난 김학순 할머님은 그에게
사정을 하였고 결국 김학순 할머님과 같이 끌려오신
양언니와 함께 위안소를 탈출하게 되었다.
위안소 탈출 이후의 삶은 김학순 할머님을 더욱 
옥죄게 만드는데 광복 이후 한국전으로 남편을 잃고
마지막으로 의지를 하였던 아들마저 익사로 잃게 되신 후
서울 종로의 한 판잣집에 세들어 사시면서 궂은 일을 
하시게 된다 1990년 일본정부에서는
 ‘일본은 ‘군대 위안부’에
관여하지 않았다’라는 주장에 김학순 할머님은 과거
자신이 끔찍한 일을 당한 지난 날이 생각 나셨는지 격분을
하며 폭로를 결심하게 되었다.
지난 날의 한이 서리신 김학순 할머님의 충격적인 폭로는
한국에서 그 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도화선을 일으키게 되었고 한국 내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역사적 아픔이 아닌 여성의 인륜적인 의지를 침탈
함의 문제로 이어지게 되었다. 위안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상황에서 단체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바로 지금
후원금 논란으로 이슈 중심에 서게 되었던
정의기억연대다.
정의기억연대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단체활동을
해왔던 모습은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한국 사회에서
널리 퍼지도록 야기케 하였던 조연 역할을 해왔던 것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더욱 고취시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수요집회를 매주 열어 
대중들과 인간적인 호흡을 나누게 하였다.

“어쨌든 내가,어쨌든 끝나기 전에는 내가 안 죽는다 
110살까지도 살란다. 120살까지도 살란다 지금 
그러고 악을 쓰고 있잖아 그냥 내 직접 내 눈으로,
 내 귀로 (사과를) 들어야 하겠다고.”

김학순 할머님께서 1997년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하신 말씀이다. 김학순 할머님께서 자신의 
한 많은 평생을 살아오시면서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루고자 하였던 작고도 함축된 단 하나의 
소원이자 자신의 주름을 질때까지 인간의 세월을 살
아야 하는 근원적인 마지막 불꽃이 아니었을지....

정의기억연대를 두고 세간의 의혹을 받고있는 
이 시점. 후원금 의혹 앞에서 서로간의 
얼룩이 진 모습을 스포트라이트 켜 정의기억연대를
향한 정체성 문제를 잡기 보단 위안부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몇 십년간 목놓으면서까지 소리를
쳤던 그들의 몸부림과 투쟁에 대하여 스포트라이트를
켜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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