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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참하라"고? 정말 그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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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SowHat
추천 : 15
조회수 : 1856회
댓글수 : 117개
등록시간 : 2013/09/08 17:10:52

<왕을 참하라>를 읽고 한 네티즌이 적은 책의 서평입니다. 책의 서평을 적는 사람들 중에선 잘 적으시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정통 역사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게 아니면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독자들의 호기심을 끌려는 속셈인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이렇게 말한다. "왕을 참하라!" 왕의 목을 베라는 뜻이다.

 

 인터넷 상의 표현법을 빌린다면 저자는 극단적인 "조선까"다. 예전에 나와 토론을 했던 어떤 네티즌이 조선은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제외한다면 아무런 훌륭한 점도 없으니 망해야 할 나라라고 극언을 퍼부었는데, 저자도 그런 경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혹시 동일인물인가?

 

 하지만 과연 조선이 저자의 말대로 진작에 망하고 없어졌어야 할 저주받은 나라였을까? 내 생각에는 단연코 "아니올시다."이다.

 

 우선 기억나는대로 몇 가지만 지적해 본다.

 

 첫째, 조선은 17세기 말까지 제대로 된 화폐 제도도 없는 아프리카보다 못한 미개한 나라였나?

 

 위 문장은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그는 조선 사회에서 화폐 대신 쌀이나 포목이 돈 대신 쓰는 물물 교환이 이루어졌다고 저렇게 길길이 날뛰고 있다. 아프리카보다 미개한 나라라며...

 

 하지만 그건 잘못된 편견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물물 교환이 아니다. 쌀과 포목은 물품 화폐였고, 특히 포목의 경우는 그 크기를 엄격한 규격에 맞추어 쓰여졌다.

 

 그리고 화폐라고 해서 반드시 금속이나 종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사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지폐도 정부의 공신력이 사라진다면 한낱 종이 뭉치에 불과하다. 약 백년 넘게 명실상부한 세계의 기축 통화 노릇을 했던 미국의 달러화도 지금 미국의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로 인해서 그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을지 여부를 두고 불안한 실정이다. 만약, 달러화의 가치가 폭락하고 미국 정부가 더 이상 달러를 자국의 화폐로 쓰지 않겠다고 선언이라도 한다면 달러는 뭐가 될까? 그냥 휴지 쪼가리다.

 

 사실, 조선 초기에도 세종대왕을 비롯한 지배층들은 백성들을 상대로 지폐를 발행해서 쓰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지폐를 사용하기 거부했다. 왜냐? 지폐는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종이 뭉치에 불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런 백성들의 생각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황된 노파심은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14세기 말 경, 원나라에서 경제난과 물가 인상을 해결하기 위해 지폐를 마구잡이로 찍어냈다가 오히려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폭등하는 막대한 부작용을 겪다가 결국 천하대란이 일어나 정권이 무너진 일도 있었으니까.

 

 원나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태어났고 그런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조선 백성들이 지폐에 대한 거부감을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을까?

 

 또한, 조선이 끝끝내 화폐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숙종 시대로 접어들면서 재상 김육의 주장대로 금속 화폐가 발행되어 화폐 결제가 굳어졌으니 말이다.

 

 사족을 덧붙인다면 영국에는 1110년부터 탤리 스틱(Tally Stick)이라는 나무 막대가 화폐로 쓰여, 정상적인 물품 결제의 수단이 되었다. 이 탤리 스틱은 1826년까지 사용되었는데, 자그마치 7백년 넘게 영국의 공식 화폐였다. 조선이 쌀과 포목을 돈 대신 썼다고 미개한 사회라며 혹평하는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영국도 그렇단 말인가?

 

 아프리카를 미개한 사회라고 단언한 부분도 석연치 않다. 인류 최초의 문명 중 하나인 고대 이집트가 있던 곳도 아프리카였고, 막대한 황금 생산량을 자랑하던 가나 왕국과 18세기까지 배닌과 콩고를 다스리던 강력한 왕국이 있던 지역도 아프리카였다. 최초의 원시 인류의 화석이 발견된 곳도 아프리카가 아닌가? 이런 곳을 미개하다고 폄하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인종 차별적인 발언이 될 수도 있다. 참고로 저자가 좋아하는 선진국에서 흑인한테 미개하느니 어쩌니 했다가는 바로 인종 차별로 고소당해, 패가망신한다.

 

 둘째, 조선의 신분제도가 세계에서 유례없을만큼 악질적이었나?

 

 부모 중 한 명이 노비여도 노비가 되고, 첩의 몸에서 태어난 서자들이 차별을 받았던 조선 사회의 현실에 대해서는 나도 비판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선이 세계에서 제일 악질적인 신분 차별 국가였다는 관점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예컨데, 노비라고 해도 조정에서 하급 벼슬을 지낼 수도 있었고, 전쟁 때 공을 세우면 노비 신분이 벗겨지고 양반으로 올라갈 수도 있었다. 경종 무렵, 우의정을 지낸 조태채의 노비였던 홍동석은 선국에서 일하는 서리였다. 이괄의 난을 진압한 장수 정충신은 원래 전라도 광주 관아의 노비였다가, 임진왜란 당시 멀리 선조가 피신한 의주까지 가서 의병들의 승전보를 전한 공로로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양반이 되었고 권율의 딸과 결혼까지 했다. 인조 반정 때, 공을 세워 3등 공신이 된 이기축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던 몸이었다. 1591년까지 활동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한 학자 서고청도 본시 노비였던 사람이었다.

 

 노비(노예) 해방의 시기를 보더라도 조선은 1801년, 관아에서 부리던 모든 공노비들을 풀어주고 그들의 노비 신분을 풀어주었다. 반면, 미국은 남북전쟁까지 치르고 1862년에야 노예 해방이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조선은 미국보다 노예 해방과 인권이 더 앞선 나라였을까?

 

 셋째,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어도 그들을 구휼하지 않았다고 현종을 비롯한 당시 왕들과 대신들이 아무런 할 일도 안한 밥벌레라고 혹평하는데...

 

 사실은 아니다. 당시 현종은 대기근을 국가적인 중대사로 보고 비축해 둔 군량미까지 풀어 백성들을 먹이고, 그것도 모자라자 농사를 위해 금지시켰던 소까지 도살시켜 식량을 공급했다. 또한, 실권이 없는 명예직 벼슬까지 팔아 진휼미를 모아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궁중 의약국에 보관된 약을 나누어주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굶어죽는 백성들이 많았던 것은 기근의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번 대기근이 닥치면 수많은 백성들이 굶어 죽던 일은 비단 조선에서만 있던 현상이 아니었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 심지어 저 먼 유럽에서도 18세기까지 존재했다.

 

 일본의 예를 들어볼까? 일본에서도 수십만 명이 굶어죽었던 대기근은 여러 번이나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만 보아도 1642년의 간에이 대기근, 1732년의 교호 대기근, 1782년의 덴메이 대기근, 1833년에서 39년까지 계속된 덴포 대기근 등이 그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 덴메이 대기근 당시에는 무려 92만 명(최대 140만 명)이 굶어죽는 대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나마 조선에서는 중앙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구휼 활동을 벌였지만, 일본에서는 그런 일조차 없었다. 왜? 당시 일본은 봉건제라서, 다른 번의 백성들이 굶어 죽어도 그건 남의 나라 일처럼 무심하게 여겼으니까...

 

 구휼 활동을 벌이고도 비판받은 조선의 현종과 대신들을 감안하자면, 저렇게 수십에서 수백만의 백성들이 굶어 죽도록 '방치한' 일본 에도 막부의 쇼군과 영주들은 전부 칼로 배를 가르고 할복 자살이라도 하란 말인가?

 

 넷째, 조일전쟁에서도 지적된 사항이지만 이순신이 고작 세 번 밖에 못 이겼다고 평가절하한다. 그리고 적게 이겼어도 전황을 주도한 승전이니 나쁘게 볼 건 아니라고 한다. 영국의 넬슨 제독이나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가 단 한 번의 결전에서 이겼으니 영웅이 되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논리대로라면 수많은 승리를 거두다가 워털루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몰락한 나폴레옹이나,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크게 이겼다가 자마에서 패배한 한니발이나,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용맹을 떨치다 끝내 패전한 롬멜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들은 그저 무능력한 졸장들이란 말인가?

 

 다섯째,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이 공정한 역사를 쓴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저자가 쓰고 있는 내용들 중 상당수는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는 야사거나 아니면 그냥 저자의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을 믿을 수 없다고 한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실록의 기사를 대고 있으니,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여섯째, 저자의 "조선까" 주장의 핵심은 조선이 구한말에 가서 지리멸렬하게 무너졌다고 아예 조선이 생기지 말았어야 한다는 건데... 그렇다면 무모한 침략 전쟁을 하다 핵폭탄 두 발을 맞고 무너진 일본을 본다면 메이지 유신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헛일이 된다. 소련이 경제난으로 망했다고 해서 아예 처음부터 소련이 생기지 말았어야 할 나라였을까? 아니, 역사를 보더라도 어떤 나라이든지 말기에 가면 다 망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말기의 혼란을 염두에 두고서 생기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면 도대체 세상에 정당하게 들어선 나라가 어디있나?

 

 일곱째, 마지막 부분의 말을 보고 나는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우리가 지금 잘먹고 잘살고 있으니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그럼 골치아프게 역사를 왜 보나? 그냥 즐겁게 인생을 살면 될 일을... 아무리 정식 역사학자가 아니라고 해도, 그게 역사를 공부한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물론, 이 책에 좋은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단순히 나라를 망하게 한 잘못이 아니라 나름대로 훌륭한 정책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은 볼만했다. 그 외에 한글의 원형이 일본의 신대문자가 아니라, 오히려 신대문자가 조선통신사가 전해 주고 간 한글을 모방해서 만들어진 글자라는 내용과 세종대왕을 높게 보는 부분은 내가 보아도 납득이 갔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무수한 오류와 편견이 발견되기도 했으니 마냥 칭송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 반대인 면이 더 많다.

 

 저자는 조선 시대의 왕들을 가리켜 그들을 참해야 한다고 소리높여 외쳤다. 거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왕을 참하기 앞서, 당신의 편견과 무지부터 참하라고...

 

 

 추신: 어느 네티즌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소감을 덧붙였다.

 

 "왜 삼국시대 사람들은 핵폭탄이나 비행기를 안 만들고 말타고 싸웠어요? 그 사람들은 되게 멍청했나 봐요





출처 -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xvz12&artSeqNo=155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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