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정세균 국무총리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코로나) 확산으로 위축된 자영업자 격려 차원에서 최근 잇따라 전통시장과 도심 상가(商街) 지역을 방문했다. 그러나 이 방문 행사는 모두 사전에 짜놓은 각본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방문 상점을 미리 정해두고 상점에 없는 물건은 미리 준비까지 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비우호적인 상인을 배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는 지난 18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 동원전통종합시장을 방문해 상점 다섯 곳을 돌며 꿀 40㎏, 음성 배, 진도 대파 등을 샀다. 19일 이 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곳을 방문하기 나흘 전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 직원 2명이 상인회 사무실을 찾아왔다. 처음엔 김 여사가 아니라 "박영선 장관이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중기부 관계자들은 두 차례 시장을 찾아 동선(動線)을 짜고, 방문 점포를 정한 뒤 17일 이 명단을 상인회에 통보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해당 점포의 상인들에게 "대파와 생강, 꿀을 준비하라"며 ㎏ 단위까지 정해줬다고 한다.
시장에 박 장관이 아닌 김 여사가 온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방문 당일 오전이다. 상인회장은 "김 여사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새벽부터 일어나 상인들에게 '계란은 던지지 말자' '반갑게 환대하자'고 말하고 다녔다"고 했다.
김 여사가 배와 딸기 등을 구매한 과일가게 상인 A씨는 "며칠 전부터 모르는 사람들이 장관님이 오실 수도 있다며 '진천 딸기 있느냐, 없다면 뭐가 있느냐'고 조사해 갔다"고 했다. 진천에는 우한에서 온 교민과 체류자들의 임시 숙소가 있었다. 김 여사는 이 과일가게를 방문해 똑같이 "진천 딸기가 있느냐"고 묻고, A씨가 "요즘 진천은 안 들어온다"고 답하자 배를 3만5000원어치 사 갔다.
꿀은 '건어물 가게'에서 샀다. 이 가게 상인 B씨는 "(중기부 쪽에서) 한밤중에 전화가 와 '물량을 맞출 수 있게 꿀을 미리 대량으로 준비해 두라'고 하더라"고 했다. 이 가게는 꿀을 주된 상품으로 판매하지 않아, 당시 꿀 1~2통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량으로 꿀을 추가로 들여놓았다. 김 여사가 다녀간 다음 날에도 이 가게 진열장엔 꿀단지 8~9통이 남아 있었다. 가격을 묻자 B씨는 난감한 듯 "(급하게 들여오느라) 꿀을 얼마에 팔아야 할지 몰라서 지금 당장은 팔 수 없다"고 했다. 상인회 관계자는 "중기부 쪽에서 김 여사가 구입할 물품과 동선을 다 정했는데, 동선 안에 꿀을 파는 곳이 없어서 이곳을 찾아내 추가로 들여놓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생강과 꿀은 임시 생활시설에 있는 우한 교민 등에게 생강청으로 만들어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정세균 국무총리의 신촌 명물거리 방문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몇몇 상인은 지난주 초 서대문구 소상공인회 이사장인 오종환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며칠 뒤 총리님이 가게에 찾아가면 협조해줄 수 있겠느냐"는 '섭외' 전화였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신종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해달라"는 것이었다.
오씨 전화를 받은 상인 C씨는 "신촌이 '차 없는 거리'가 된 다음부터 장사가 안 돼 죽을 맛인데, 총리님께 이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했다가 "그러면 안 된다"며 퇴짜를 맞았다. C씨는 "판 다 짜놓고 정해진 말만 하라는데, 이게 무슨 애로 청취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