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지진이 일어난 지 59년 뒤인 1982년 9월2일 ‘간토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 유골을 발굴해 추도하는 모임’ 회원들과 재일동포들이 당시 학살된 조선인이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도쿄 근교 아라카와의 둔치 발굴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유해를 찾고 있다. 재일동포 사진가 배소 제공 |
[한겨레]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90년
일 시민단체, 증언 모아 자료집
동포들도 특별전시회 열어 환기
정부는 ‘진상 규명’ 요구조차 안해
“조선인을 10명씩 묶어 세운 뒤 군대가 기관총으로 쏴 죽였다. 죽지 않은 사람은 선로 위에 늘어놓고 석유를 부어 태웠다.”
“9월3일 낮이었다. 다리 아래에 조선인 몇명을 묶어 끌고 와서 자경단원들이 일본도로 베고 죽창으로 찌르거나 해서 죽였다. 임신해서 배가 크게 부른 여자도 찔러 죽였다. 내가 본 것으로는 30여명이 이렇게 죽었다.”
일본 시민단체 ‘간토대지진 때 학살된 조선인 유골을 발굴해 추도하는 모임’이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자행된 재일조선인 학살에 대한 증언을 모아 최근 발간한 자료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대지진 피해에 절망한 일본인들 사이에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군과 경찰, 자경단에게 조선인 수천명이 학살되는 참극의 발단이 된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지 1일로 90년이 흘렀다. 그러나 당시 희생된 조선인 원혼들은 아직 안식을 찾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희생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고,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가리지 않았다. 우리 정부도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과 사죄를 일본에 요구한 적이 없다.
일본 보수세력은 학살의 역사를 감추고 지우기에 오히려 바쁘다.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고교 일본사 부교재 ‘에도에서 도쿄로’에 실린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대한 글에서 “대지진의 혼란 와중에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됐다”고 돼 있던 내용을, 2013년도판에서는 “비석에는 대지진 와중에 ‘조선인이 귀중한 목숨을 빼앗겼다’고 적혀 있다”는 내용으로 바꿨다. 조선인이 왜, 어떻게 희생당한 것인지 모호하게 처리해버린 것이다. 요코하마시 교육위원회는 중학생용 부교재 ‘요코하마 알기’ 올해판에서, 간토대지진 때 ‘군대나 경찰 등이 조선인에 대한 박해와 학살을 자행하고 중국인을 살상했다’(2012년판)고 서술된 문장 가운데 군대와 경찰이 관여했다는 부분을 삭제하고, ‘학살’이라는 표현을 ‘살해’로 바꿨다.
그러나 90주년을 맞은 올해엔 그때의 참극을 기억하고, 그런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요코하마와이엠시에이와 가나가와인권센터는 1일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희생자 추모비가 있는 요코하마시 구보야마 묘지에서 추도식을 열었다. “학살의 역사를 기억에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취지다. 요코하마에서도 기록영화 상영회와 강연회가 열렸다. 하루 전인 31일에는 도쿄 메이지대학에서 ‘간토대지진 90주년 기념행사 실행위원회’ 주최로 추도와 학술발표를 겸한 집회가 열렸다.
동포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관장 강덕상)은 지난 31일부터 12월28일까지 도쿄 미나미아자부에 있는 자료관 기획전시실에서 ‘간토대지진으로부터 90년, 청산되지 않은 과거’라는 제목의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다. 민단 중앙본부는 1일 오전 관동대지진 90주년 희생동포 추도식을 열었다. 예년에는 도쿄총영사가 행사에 참석했으나, 올해는 이병기 주일대사가 직접 참석해 헌화했다.
1923년 9월1일 도쿄와 요코하마 등 간토지방 일대를 강타한 간토대지진(규모 7.9)으로 10만5000명 이상이 희생됐다. 당시 일본 군과 경찰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퍼뜨려 조선인 학살을 주도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