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선거나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5.16 군사정변이 쿠데타냐 아니냐, 폭력적이었는가 평화적이었는가에 대한 찬반논란이 거셉니다.
오유분들은 대부분 같은 의견을 가지고 계시겠죠?
제 생각에 5.16을 통해 우리가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점은 쿠데타 및 폭력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무지했었는가, 그리고 왜 무지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가르쳐 주셨던 사학과 교수님은 좌파성향의(좌파라고 불리지만 알고보면 그게 중도인 경우가 많죠) 사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분도 5.16이 '쿠데타'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셨습니다.
결과는 분명 쿠데타인데, 국민과 여론 때문에 5.16 당시에는 평화적인 정권이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좌도 우도 민주화운동과 박정희 독재의 핵심을 파고들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라 말씀하셨는데,
그 때 듣고 뼈저리게 느낀 점을 여기에 적어보고자 합니다.
4.19혁명으로 인해 고조된 민주화 열기와는 달리, 당시 정치계는 '해쳐모여'식으로 다시 권력자 집단이 득세했습니다.
이 당시 1~2년간은 부산, 대구, 울산, 포항과 같은 경상도 지방 사람들도 광주와 전라도 시민들과 딱히 반목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경상도 각 지방방송들이 4.19의 중심지였던 부산과 마산, 대구와 고려대에 대해 보도하면서
(광주 민주화항쟁 전에도)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컸던 광주에 큰 관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전라도에서도 경상남도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했고 동참했습니다. 서울, 경기지방은 말 할 것도 없죠.
4.19 이후에도 계속된 독재정치 하 권력가들의 득세가 전국 국민들을 한 뜻이 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지역감정이 불 붙은 것은 박정희의 편파적인 발전과 민주화 운동 억압을 위한 국민여론 분열 조장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애써 일궈낸 민주주의 운동이 별 성과 없이 사그라드는 것에 실망하게 됩니다.
이승만 정권의 세손가락 안에 드는 권력자였던, 부통령에서 사임했던 장면과, 옛 자유당 의원들이 다시 정계를 장악하는 것을 보며,
결국 국민들의 봉기는 완수될 수 없는 혁명이라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 때, 박정희가 육사생도들의 지지를 받으며 서울을 장악합니다.
육사생도들의 지지만 받은게 아니었습니다. 실망해있던 국민들과 언론의 지지도 받았습니다.
많은 서울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박정희를 환영했죠. 물론 몇몇 지식인들은 친일파 군벌이 민주화의 큰 적이 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나폴레옹, 시저 등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제위에 올랐을 때 얼마나 민주주의가 후퇴했는지에 대한 사설도 나왔었죠.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박정희를 지지했습니다. 심지어 대학생들도... 4.19를 완수해줄 거라 여겼죠.
박정희가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한 뒤 정권을 다시 이양하겠다는 발언을 했을 때가 인기의 최고조였습니다.
그러나 일년 뒤 정권이양을 유보하고... 다시 정권 이양 포기(대체 왜 포기?)선언을 하면서...
국민들은 '우리가 속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후 오랫동안 독재치하에서 언론과 자유주의사상이 억압받게 됩니다.
당초 민주주의 혁명 완수였던 기치가 반공, 경제성장으로 바뀌면서부터는 독재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3권을 장악하고 정보기관을 통해 국가의 안팎을 통제하죠.
쉽게 말해서, 4.19~5.16까지 국민들은 엄청난 실망감에 젖어 있었고, 혁명 완수에 대한 갈증이 심해졌으며,
때문에 독재 의도를 숨긴 박정희에게 속아, 장면이 순순히 정권을 이양하기에 좋은 여론을 만들어 낸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 봐야 할 점은 "왜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이들마저 군사쿠데타를 지지했는가"입니다.
쉽게 말하면 "왜 박정희에게 속았는가."
첫째, 혁명이 국민들의 손에 의해 완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마산과 부산을 돌며 시민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은 민주당에 의한 혁명 완수가 가능하다 여기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이기붕씨 일가가 자살하는 등, 시민들의 승리를 상징할 만 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때문에 진정으로 민주화를 위해 필요한, 친독재정치인들의 숙청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자유당 의원들을 민주당에서 대거 받아준 것도 한몫을 했죠.
이런 상황에서 당시 지식층이었던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퍼레이드를 하고 시민들에게 박정희 지지를 호소하니까,
박정희도 혁명 완수 후 정권을 국민들에게 이양하겠다고 하니까,
속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둘째, 언론이 심하게 분열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언론사들은 둘 중 한가지 의견만 냈습니다. 박정희가 민주화운동을 완수할 것이다 or 박정희 쿠데타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지금은 둘 다 엄밀히 틀렸고, 그래도 넓게 보면 후자가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민심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국민들은 흑백논리에 쉽게 휘말리는것 자주 봐서 아시잖아요?
객관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핵심이 무엇인지, 결과가 어덯게 될 것인지 예측하는 기사가 아니라 좌든 우든 그저 선동하는 기사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그 뜻을 하나로 모으기 힘들었고, 박정희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될 수밖에 없었죠.
셋째,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장면과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윤대통령은 의원내각제이므로 사실상 총리와 비슷)
때문에 4.19를 겪은 그들로서는 국민들의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서울 시민들과 대학생, 그리고 육사 생도들이 지지한다니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어리둥절해 있는 상황인지, 정말로 박정희를 잘 알고 가만히 있는 것인지, 가만히 있는 것이 지지하는 것인지
제대로 파악이 안 된 상황에서 정부기관들을 점령당했으므로 군, 민이 자신들을 버렸다 생각해서 3일만에 물러난 것입니다.(버린게 맞지만)
위와 같은 내용을 정리해 보았을 때, 우리가 5.16을 통해 배워야 할 점은
국민들이 정확한 판단력을 지니지 못하고, 언론이 객관적인 보도로 지식층을 이끌지 못하면
곧이어 제2의 박정희가 나왔듯 언제 또 다시 민주주의가 유린당하게 놔둘지 모른다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국민들은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여기며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점도요.
지금의 국민들은 다원화된 언론사의 보도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행동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다 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 순간 듣고 본 소식들을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가령 작년 대선 때 박근혜씨가 공기업 민영화 안 되었다고 했을 때, 법제처에서 민영화에 과한 법률을 보면 이명박대통령 2년차부터 3년차에 공기업들이 민영화된 법률들이 통과해서 발효된 것은 알 수 있는 것 처럼...)
촛불집회나 반공집회 같은게 있으면 자신의 정치성향과 관계 없이 한 번쯤은 직접 참여 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집회에는 선량한 시민들이, 어떤 집회에는 미친놈들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여 알게 됩니다.
언론의 보도는 믿을게 못된다는 것도 매우 현실적으로 알게 되죠.
뭐라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부터 조심하자'는 마음으로 민주주의사회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