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투수였던 최동원
당시 그의 연봉은 9천만원이 약간 넘는 수준
그 80년대 그 연봉으로는 강남아파트 한채를 살 수 있었다.
그랬던 최동원이 맞닥들이게 된 현실.
<최동원이 생전 인터뷰 했던 내용 중 일부>
최동원이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선수회를 행동으로 옮긴 직접적 계기는 2군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을 지켜보고서였다.
2006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동원은 “2군 선수들의 연봉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2군 포수가 내 공을 받아준 적이 있다. 수고했다고 고기를 사줬는데 ‘얼마 만에 먹는 고기인 줄 모르겠습니다’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선수 연봉이 300만 원(당시 2군 최저 연봉)이었다. 300만 원으로 야구 장비 사고, 시골에 있는 부모님께 생활비 보내드리고, 동생들 학비 대주면 남는 돈이 없다고 했다. ‘1군이든 2군이든 프로라면 최소한 생계유지는 해줘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구단은 2군 선수들을 무슨 낙오자 취급하며 머슴처럼 부렸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최고 연봉을 받는 것도, 슈퍼스타를 대접을 받는 것도 뒤에서 고생하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음지에 있는 동료들을 위해 내가 먼저 움직이겠다’고 말이다.”
당시 해마다 강남의 아파트 한채를 살 수 있던 최고의 연봉을 받던 슈퍼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선수협을 만들었던 이유는 본인의 배부름을 위함이 아닌 가난하고 힘이없는 약자를 위함이었다.
물론 결말은 당시 대기업과 정부에 의해 새드엔딩. 현재 선수협의 전신이었던 선수회는 갈기갈기 찢어지고, 주축세력인 최동원을 비롯한 선수들은 트레이드 되고 만다.
프로야구 기록만 본다면 선동열에 밀리는 선수지만, 야구계에서 아직까지 최동원을 최고의 선수라 평하는 이유가 바로 야구계를 위한 최동원의 이런 업적 때문이었다.
[최동원 동상 앞에 헌화, 묵념하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현재 매년 최고의 국내 투수에게 "최동원상"이 수여되고 있으며, 사직야구장 앞엔 최동원의 동상이 놓여있다. 또한 조만간 건립될 "한국야구 명예의전당"에도 당연히 헌액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