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천황의 '종전조서' 방송을 듣고 울음을 터트리는 일본인들.
8월 10일 새벽, 일본 천황과 최고전쟁지도 회의 구성원 등이 참여한 어전회의가 2시간의 격론 끝에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합니다. 아침 7시, “천황의 대권에 변경을 가하는 식의 요구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양해 아래“ 포츠담 선언을 수락한다는 메시지가 중립국의 스위스와 스웨덴 주재 일본공사에게 전해집니다.
그런데 일본군 일부에서 항복파 인사들을 제거하고 연합국과의 전쟁을 계속하기 위한 쿠데타 계획이 세워집니다. 도쿄의 경비책임을 받고 있는 동부군과 근위사단 병력을 동원해 천황이 기거하는 궁성을 차단하고 계엄령을 발동해 국가보전(천황제의 존속)에 대한 연합국의 확증을 받을 때까지 항복하지 않고 항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8월 13일, 연합국 정부로부터 일본정부가 문의한 ‘국체보장 문제에 대한’ 정식 회답이 도착합니다. 회답내용 중에 ‘subject to'라는 문구를 놓고 각료회의에서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 문구는 일본은 ’연합국의 관리하에 들어간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일본제국의 해체와 천황제의 폐지를 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8월 14일 오후 8시30분, 항복 선언문인 이른바 종전조서가 완성 됩니다. 그리고 내일 오전에 중대발표가 있을 것이니, 국민들은 모두 경청하라는 예고 방송이 나갑니다. 자정 직전, 히로히토 천황이 “짐은 곰곰이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재 상황을 감안하여...”로 시작되는 종전조서 녹음을 합니다. 같은 시각 소장파 장교들이 육군대신을 찾아가 쿠데타에 동조를 요구하다가 거부당하고, 모리 다케시 근위사단장을 찾아가 병력동원을 강요하다가 사단장이 거부하자 일본도로 그를 참살합니다. 그리고 사단 명령서를 위조, 근위사단 병력을 동원하여 황궁을 포위하고 궁성에 난입, 천황의 항복 선언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찾기 시작합니다. 아나미 육군대신은 ‘불충을 통감하며’ 자살하고 항복파 인사들은 급히 몸을 피합니다.
일본 해군 아쓰기 302 항공대도 사령관 고조노 대좌가 장교들을 모아 놓고 정부의 무조건 항복을 무시하고 철저항전을 다짐합니다. 이들은 ‘황군의 사전에 항복이란 절대 있을 수 없으며, 전쟁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믿는 인간들이었죠. 촌극의 하이라이트는 요코하마 경비대장 사사키 대위가 이끄는 병사들과 요코하마 공고 학생들로 구성된 소위 ‘국민신풍대(國民神風隊)’ 40여명의 도쿄 진입 미수 사건입니다. 이들은 각료회의장을 습격하여 스즈키 수상을 암살하고 본토결전이라는 허황된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근위사단 장교들의 쿠데타 시도는 동부군 사령관 다나까 대장의 등장으로 어이없이 끝나 버립니다. "너희들은 누구의 군대인가!" 라는 한 마디 호통으로 소장파 장교들은 거짓말처럼 풀이 죽어버렸고, 8월 15일 오전 근위사단 병력은 궁성에서 철수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8월 15일 정오 , 일본 천황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문이 4분37초 동안 라디오를 통해 일본과 당시 일본 식민지 전역에 방송되었습니다. 그러나 소위 천황의 ‘옥음(玉音)방송’이라고 부르는 항복 선언문의 공식 명칭은 ‘패전조서’가 아닌 ‘종전조서’이며, 그 어디에도 ‘항복’이나 ‘패배’라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전쟁에 패하여 작성된 것이 아니라 전쟁을 끝내며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이 문서는 사실 제목부터가 기만적입니다. 객관적으로 사태를 명료하게 규정하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남을 기만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그 기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말로 최면을 건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거죠.
조서는 오히려 국가의 안위와 국민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종전이라는 성단(聖斷)을 내렸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원폭 등을 거론하며 스스로가 피해자임을 주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종전조서는 "너희 신민"은 일본의 "불멸을 믿고" 천황제라는 "국체를 수호"하는 가운데 신일본 건설에 매진할 것을 명하는 일본 천황의 메시지를 담고 있을 뿐이네요. 국가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국체'라는 의미도 우익들에겐 '천황제'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진정한 국가 정체성인 국민은 그들의 안중에는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군대의 보유와 (자위대를 군대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교전권을 회복한 ‘보통 국가’를 만들기 위한 일본 보수우익의 목소리와 60여년 전의 쿠데타 미수세력은 근복적으로 맥이 닿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