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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에서 벌어졌던 게임의 세이브와 로드에 대한 논의
게시물ID : gametalk_2881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rediac
추천 : 5
조회수 : 1340회
댓글수 : 46개
등록시간 : 2015/12/22 13:35:31
  안녕하세요 저는 인디게임 개발팀에서 프로그래머와 게임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 외돌프 카터입니다. 
 
지난번에 '게임의 세이브와 로드에 대해서' 라는 게시물을 오유에 올린 적이 있는데요, 몇몇 분들에게 적지 않은 반박을 받았습니다. 다음은 몇 분들이 해주신 제 입장에 대한 반박이나 혹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입니다. 직접 반박해주신 분들이 아니더라도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1.     자유로운 퀵세이브 시스템의 경우 유저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어려운 난이도를 원한다면 세이브를 제약하면 되는 것이다. 세이브 시스템은 단지 도구이며, 세이브 시스템 자체가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는 없다.
-퀵세이브 시스템을 차용할 경우 몇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세이브는 게임의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게임의 몰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게임의 스토리나 배경 등 다른 설정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DQ1.jpg
 
<고전 RPG 드래곤 퀘스트. 1~3편부터는 국왕에게, 4편부터는 교회 성직자에게 가면 세이브할 수 있다.
 
 
 
 
RPG게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같은 장소 같은 상황에서 세이브 / 로드를 한다고 하더라도 플레이어가 ESC 키를 눌러 잠시 게임을 멈춘 뒤에 또 세이브(혹은 로드)키를 눌러 세이브 / 로드 하는 것과, 고전적인 RPG게임들에서처럼 교회나 도서관 등등에서 잠시 파티를 쉬게 하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책 등에 남겨놓는 것과는 플레이에 있어서 매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어려운 난이도와 많은 제약을 바라는 플레이어라고 해봅시다.
퀵세이브 시스템을 차용한 RPG를 플레이 할 때 저는 (항상 원하는 때에 세이브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마을 내에서만 세이브를 하기로 정하고 플레이 할 것입니다. 저는 마을 중 제가 정한 장소 (예를 들면 교회나 도서관) 앞으로 가 게임을 잠시 멈추고 세이브키를 누를 것이고, 세이브키를 누르는 순간 게임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교회 내의 성직자가 저에게 뭐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제 파티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죠. 게임은 전과 같은 상태로 멈춰 있습니다.
개발자가 몇몇 고전 RPG의 방식을 따라 교회의 성직자에게서만 세이브가 가능하도록 만들어둔 경우 저는 세이브가 필요할 때마다 마을의 교회를 찾아 성직자의 축복(상태이상 치료, 회복 등)과 함께 세이브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전자와 후자는 같은 상황에서 세이브를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키 하나만 누르면 저장이 가능한 상황에서 일정 장소에만 저장을 진행하는 것은 때때로 많은 부자연스러움을 유발합니다.
세이브는 게임의 다른 요소들과 어느정도 조화를 이루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다른 댓글들에서 언급된 다크소울 / 블러드본 시리즈나 언더테일 등이 좋은 예시가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자유로운 세이브를 제공하는가 하는 것은 단순히 '게이머의 선택'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적어도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얼만큼 플레이어에게 세이브의 자유를 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해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ico.jpg
<이코의 세이브장면. 세이브를 두 주인공이 벤치에 앉아 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2.     세이브 방식을 개발자쪽에서 강제로 조정하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세이브/로드는 편의의 내용이지 재미의 내용이 아니다. 개발자는 플레이어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로 개발자가 ‘"! 세이브/로드를 어렵게하면 더 재밌어지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 말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Onyxia first kill.jpg
<WOW 오닉시아를 한국의 Chosen 길드가 공략하고 있는 장면. 승부다!>
-저는 Game의 적절한 번역어가 '오락'이 아니라 '승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락'이란 쉬는 시간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감정을 즐겁게 하는 일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게임만을 포함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영화가 취미인 경우에는 영화 또한 하나의 오락이고, 독서 또한 오락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영화와 독서를 게임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게임은 하나의 승부입니다. 멀티게임의 경우 주로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간의 승부, 혹은 다수의 플레이어와 정교하게 짜인 레이드몹 사이의 승부이며, 싱글 플레이의 경우 작게 볼 때 몬스터 하나와 플레이어 간의 승부, 더 크게 보자면 던전과 플레이어 사이의 승부, 또 최종적으로는 게임이라는 장애물 사이에서 플레이어가 바라는 엔딩에 다다르는가 다다르지 못하는가의 승부가 됩니다
.
이러한 관점에서 게임의 재미란 플레이어에게 적절한 제약을 가하는 것으로부터 옵니다. 많은 승부들이 룰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제약을 가하고 있고, 또 이러한 룰적 제약들이 승부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컨대 축구의 경우 손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오프사이드를 행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룰적 제약이 있으며, 농구의 경우 역시 트래블링이나 워킹 등의 제약을 룰적으로 강제합니다. 또 이러한 룰적 제약들이 축구와 농구의 중요한 개성이나 특징이 되는 것입니다. 승부의 재미는 적절한 룰적 제약에서 오는 것이 아닐는지요.
이러한 면에서 게임을 디자인하는 개발자에게는 플레이어에게 얼마나 많은 제약을 가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로서 다가옵니다. 세이브 / 로드가 편의의 문제일 뿐 재미의 문제는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게임에 있어서 편의의 내용이 재미의 내용과 관련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편의와 재미는 쉽게 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 게임은 시시해질 것이며, 또 별로 재미있는 것으로 다가오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많은 제약을 가해 플레이어가 도저히 접근해볼 수 조차 없다면, 역시 의욕을 잃고 재미있는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겠지요. 어떤 이유로 편의의 내용을 재미의 내용과 불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하신 것인지 설명을 듣고 싶었습니다.
 
3.     게임과 승부는 별개의 것이다. 게임은 게임이고 승부는 승부인데 어떻게 게임이 항상 승부를 포함한다고 주장하는가.
225px-Chris-Crawford.jpg
 
<게임 디자이너 Chris Crawford>
위키피디아 Game 항목을 보면 저명한 게임 디자이너 Chris Crawford 의 정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크로포드가 내리고 있는 게임의 정의를 하나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n interactive, goal-oriented activity made for money, ‘with active agents to play against, in which players (including active agents) can interfere with each other.’
또한 크로포드는 위의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몇 가지 단계를 거치고 있는데, 이중 4번째 단계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4.If a challenge has no "active agent against whom you compete," it is a puzzle;
ㅡ 크로포드의 길지 않은 설명 전체를 참고하면 이 4단계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플레이어가 경쟁하거나 겨룰 누군가가 없다면 게임이 아닌 단순한 퍼즐이다' 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위키피디아를 찾아 전문가의 정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게임은 일종의 승부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구글에서 game이라고 친 뒤 옥스포드 온라인 사전에서 정의를 살펴 봅시다

A form of competitive activity or sport played according to rules.
게임은 룰에 따른 경쟁적 활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의내려지고 있는 게임이 과연 정말 '승부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4.     세이브창을 열어 저장하는 방법이 현실감이나 게임의 몰입도를 해친다는 주장에 공감하기 어렵다.
역시 개인차가 있겠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세이브/로드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고 또 게임 내의 시간에 개입하는 행위입니다. 고로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성질을 띌 때가 많습니다. 게임을 개발하는 입장이라면 이러한 세이브 시스템이 게임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이브 창을 열어 저장하는 방법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때 플레이어가 접하게 되는 메뉴창은 게임 내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플레이어에게만 보이는 무언가입니다. 즉 캐릭터에게는 지각되지 않는 것이지만 플레이어에게는 지각되는 무언가입니다. 고로 플레이어와 캐릭터간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동작입니다. 고로 메뉴창을 활용해 세이브를 진행하는 시스템은 게임 내의 현실감과 몰입감을 해치는 것입니다
.
 
둠.png
 <세이브 / 로드 창은 플레이어에게만 지각되며, 플레이어 캐릭터를 포함한게임 내의 인물들에게는 지각되지 않는 무언가이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수 있겠지요 메뉴창을 띄워 세이브를 하는 것에 익숙하다면 다소 덜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타 게임들(이코나 다크소울 시리즈 등)의 세이브 시스템보다 몰입감과 현실감이 떨어지는 행위라는 것은 제가 방금 위에서 했던 것과 같이 어느 정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네가 이야기하는 방식은 개발자의 재미를 플레이어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냐.
처음에 이런 질문을 받고 조금 당황했습니다.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새로운 사고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어긋나있는 주장이 아닐는지요. 게임을 만드는 것은 개발자이며, 이것을 플레이할지 하지 않을지는 플레이어의 자유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게임 개발자가 자신의 게임에 어떤 방식을 채용했던 이것을 자신의 재미를 강제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할지 하지 않을지를 선택할 일차적 권한이 플레이어에게 주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게임 개발자가 플레이어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혹 중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더이상 플레이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되는데 개발자가 플레이어에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어떻게 해서 제가 이야기드린 방식이 개발자의 재미를 사용자에게 '강제' 하는 방식인지 자세히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플레이어에게 무조건 많은 제약을 가하는 것, 하드코어한 게임을 만드는 것이 항상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댓글들에서 제 입장을 잘못 받아드리신 분들이 많더군요. 제가 세이브 / 로드 시스템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적절한 제약으로 다가갈 것, 또 게임 내의 다른 요소들과 적절히 조화를 이뤄 몰입을 해치지 않을 것. 두 가지이지 항상 로그라이크와 같은 세이브 시스템을 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질문이나 혹은 반박해주실 것이 있다면 모두 읽어보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해드렸듯이 인디게임 개발자로서 대중들의 의견을 참조할 수 있는 것은 항상 중요한 기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게임 개발에서 중요한 양분으로 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http://feelds.tistory.com/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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