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부 [인터뷰 제2공장] 조국 동생 조권 측의 검찰 언론 고발! - 익명 (조국 전 장관 동생 조권 씨 지인)
김어준 : 지난 9일 법원은 조국 전 장관의 동생 조권 씨에 대해서 청구된 영장을 기각했었죠. 당시 보수 매체들은 조 씨가 꾀병 환자라는 취지의 보도를 쏟아냈었습니다. 실제 조권 씨 상태는 어땠었는지 전체 과정에 동행했던, 지인 어렵게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지인 : 네, 안녕하세요.
김어준 : 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우선 조권 씨와는 어떤 사이이신가요?
지인 : 저는 28년 동안 광고대행사에서 광고 기획 일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고요. 5월 초에 모 아파트 분양 광고로 인해서 부산에 내려오게 됐고 지인의 소개로 조권 씨를 알게 됐습니다.
김어준 : 그러면 아신 지 불과 조국 전 장관 후보 지명이 8월 초니까 불과 한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네요.
지인 : 네, 그렇습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일반인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과정들이 운이 나쁘게 같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김어준 : 자, 그러면 여기서부터 여쭤보겠습니다, 꾀병이다, 검찰도 심각성을 믿지 않으니까 영장을 청구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언론들도 대부분 꾀병을 부리는 게 틀림없다는 취지의 보도, 그래서 그런 언론 보도만 접한 분들은 꾀병이라고 생각해요. 직접 전 과정을 지켜본 분으로서 마침 그 시점에 가장 가까웠던 지인으로 운전도 해 주시고 뭐, 이사를 하면 도와주시기도 하고 그러셨다면서요, 계속해서.
지인 : 네, 그렇습니다.
김어준 : 실려 갈 때도 응급차에 같이 타셨고 전 과정을 목격하신 거잖아요. 그렇죠?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꾀병이다, 여기에 대해서 설명 좀 해 주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이게.
지인 : 조금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겠는데 조국 전 장관님이 장관 후보로 임명이 되시고 난 이후부터 동생분에게 지인들이 하나둘씩 연락을 하지 않게 되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또 괜히 연루되었다가 불리한 걸 당하는 그런 두려움 때문에 조권 씨 옆에서 사람들이 없어지기 시작을 하고.
김어준 : 그러니까 오래된 지인들이 연락을 안 받고 도움을 안 주니까 결국 의지할 분이 선생님밖에 남지 않게 된 거군요, 결과적으로.
지인 : 그렇습니다.
김어준 : 이것 참…. 수십 년 안 사람들은 떠나고 겨우 3개월 안 사람이 남았네요.
지인 : 네, 터무니없는 의혹들이 가족 전부에게 일어날 때 그것들을 최소한 들어만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는데도 사람들이 하나씩 아예 전화를 받지를 않는다든지 연락을 해도 만나 주지를 않는다든지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최소한 옆에 있어 주는 것 정도는 내가 해야 되겠다는, 이 사건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사람의 인간의 도리로써 그렇게 해 주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심정으로 계속 옆에 있었습니다.
김어준 : 주변 지인들 탈탈 털어서 겁나서 돕지 못하게 하거든요. 아마 1년에 한두 번 이상이라도 전화한 분들은 대부분 소환됐을 거예요.
지인 : 맞습니다. 지금 70여 명이 넘는 숫자가
김어준 : 조권 씨만 하더라도.
지인 : 맞습니다. 조권 씨 지인의 70명 정도가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네다섯 명이 참고인 조사를 받는 걸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김어준 : 주변에서 다 무서워서 떨어지는 거거든요.
김어준 : 선생님은 오히려 조권 씨가 가장 최근에 아신 분 아닙니까?
지인 : 오히려 가장 최근에 알고 있었으니까 조사를 해 봤자,
김어준 : 나올 게 없고.
지인 : 나올 게 없고, 연루된 바도 없고 오히려 인간적인 관계일 뿐이었다는 걸 오히려 더 명확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입장이라서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어준 : 자, 그래서 갑자기 넘어져서 수술을 요할 정도 심각한 상황, 마비가 오고. 이게 이제 의심할 수는 있어요. 구속영장을 칠 상황이 올 것 같으니까 일부러 꾀병 부리는 거 아니냐. 재벌들이 갑자기 아파서 휠체어 타고 가는 경우는 워낙 많이 봤으니까
지인 : 그럴 오해의 여지는 있습니다.
김어준 : 그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지켜본 상황은 어떤 거였습니까?
지인 : 10여 년을 넘게 병원 근처를 가 보지도 않았던 아주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손에 꼽힐 정도로 건강한 스타일이었고요. 가끔씩 목이 아프다든지 허리가 아프다든지.
김어준 : 그거야 그 나이 되면 다들.
지인 :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일어난 날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하셨는데 같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김어준 : 아, 그 장면은 못 보셨고.
지인 : 네.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넘어졌다고 했었고, 넘어지고도 툴툴 털고 일어났는지 창피하다는 정도. 워낙 자기 자신의 건강을 확신을 했었으니까
김어준 : 아팠다, 부끄럽다, 이 정도였겠죠, 처음에.
지인 :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운전을 했고요. 그날 또 부산에 마라톤 대회가 있어서 해운대 교통이 지옥이었었고요. 한 시간 정도 운전을 하시다가 다리 힘이 좀 빠진다 그래서 어차피 재판이 길어질 것 같고 이참에 한번 건강에 대한 확신을 하지 말고 큰 병원에서 정확하게 다 검진이나 받아 보자. 사실 저도 제 자신에 대한 건강도 좀 두려움들이 있었고.
김어준 : 그래서 이참에 건강검진 받아 보자, 이렇게 된 거군요.
지인 : 맞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다리가 저린다고 하셔서 제가 운전을 해서 모 대학교 병원 응급실 앞에 차를 댔고 상태가 계속 악화가 돼서 다리가 완전히 움직이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마라톤 대회 교통 체증 때문에 두 시간, 세 시간이 걸려서 병원에 가는 시간이, 도착한 시간이 그렇게 됐습니다.
김어준 : 악화시킨 요인 중에 하나일 수도 있겠네요.
지인 : 그래서 내릴 때 상황은 응급실에 가는 게 맞다고 판단이 될 정도로 상태가.
김어준 : 아, 건강검진이 아니라 응급실로 가야 되겠다, 이제.
지인 : 예. 그래서 부축을 해서 내리고 바로 침대에 눕혀서 응급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CT와 MRI와 순차적으로 찍었고요. 그랬더니 병증이 나오게 된 겁니다. 경추인대골화증이라는 그런 병이 있었습니다.
김어준 : 당시 그래서 MRI 사진 촬영하고 병원 쪽에서는 뭐라고 했나요?
지인 : 이런 병을 가지고 있었고, 넘어짐으로 인해서 갑자기 신경이 더 크게 자극될 수 있다. 그 당시에 정확하게 병원 기록에도 남아 있지만 혈압이 180에서 200 사이로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래서 응급실에 그냥 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병실로 이동을 해서
김어준 : 입원하라는 이야기네요.
지인 : 네, 그렇게 진단을 받았습니다.
김어준 : 그러니까 날 입원시켜 주세요, 가 아니라 애초에는 건강검진 받으러 갈 요량이었는데 넘어진 게 갑자기 마비 증상으로 나타나서 응급실로 가게 됐고 여러 가지 검사 결과 입원하는 게 좋겠다, 여기까지가 경과인데.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그리고 나서 이제 검찰에서 강제 소환하려고 했잖아요.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응급실에서의 차트에 다 나오니까.
지인 : 대학병원 병실들은 각 파트들이 다 나누어져 있고,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일, 검사실에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각 전문의들이 뇌 쪽을 담당하는 분, 정형외과라도 척추를 담당하는 분, 경추를 담당하는 분, 다 세분화되어 있었습니다.
김어준 : 당연히 그럴 것이고, 그러니까 조권 씨가 거기 가서 나 조국 동생인데 나 구속영장 나오면 안 되니까 내 병을 과장해 주세요, 그랬을 리도 없고 그게 통했을 리도 없는 거 아닙니까?
지인 : 예, 맞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검찰의 시각은 ‘꾀병이다’ 라고 판단한 것 같아요, 강제 구인을 시도했던 걸 보면.
지인 : 자기들이 계속 준비해 왔던 과정대로 가기를 원했던 거고 그 과정이 어긋나게 되니까 실제로 환자가 아프고 그리고 그런 병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겠죠.
김어준 : 수술을 요한다고 하는 내용도 등장하던데.
지인 : 첫째 날 입원을 하고 뇌 MRI까지도 찍고요. 그렇게 여러 번 검사를 받았고, 간호사들도 응급 환자라고 해서 30분마다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면서 혈압을 체크하고 경과들을 계속 지켜보면서 기록지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때 정형외과의 척추를 담당하는 담당의가 응급하게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직계 가족만 수술에 동의서를 쓸 수 있다고 해서 임시 보호자였던 저는 가능하지 않다, 가까이에 있는 직계 가족을 불러 달라고 해서 80이 넘으신 모친을 병원으로 긴급하게 모셔오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김어준 : 검찰이 와서 그런 과정을 다 봤을 거 아닙니까?
지인 : 예. 그리고 의사는 응급하게 수술할지도 모르니 수술 준비를 하기 위해서 뒷머리를 삭발을 시켰습니다. 경추, 목 쪽에 흐르는 신경을 계속 압박을 해서 마비 증상이 오고 한번 마비 증상이 오기 시작했을 때는 신경이 돌아올 수 없는 지경까지 갈 수 있다. 그래서 환자 상태를 계속 체크를 하면서 화장실 간다고 움직이다가 화장실 앞에서 쓰러지고 하는 모습들을 관찰을 하고 난 이후에는 수술을 해야 되겠다고 해서 동의서를 쓰기 위해서 모친을 불러오셨습니다. 그래서 모친이 대기하고 있던 중에 검찰이 들어와서, 첫 번째 날에는 병원을 다 이 잡듯이 뒤져서 이게 꾀병이 아닌가 라는 것들을 두 시간 정도 확인을 했고요. 그리고 사고 장소까지 확인을 해야 되겠다고 해서
김어준 : 넘어졌다고 하는 곳에 가자?
지인 : 네,
김어준 : 철저하게 조사했네요.
지인 : 네, 맞습니다.
김어준 : 그러면 실제 그런 일이 벌어져서 병원 측에서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걸 인지했을 거 아닙니까?
지인 : 네. 그리고 검사님이신데 의학 면허까지 있는 분이 한 분이 저녁 늦은 시간에 내려옵니다.
김어준 : 의료 면허를 가진 검사.
지인 : 네. 그래서 저녁에 늦은 시간까지 담당의와 상의를 하게 되죠. 그 상의가 끝나고 난 이후에 담당의가 병실에 들려서 환자에게 팔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환자는 그때 당시에 있는 힘을 다해서 팔을 조금 들었고요. 그랬더니 많이 회복되고 있다는 수술해야 된다, 뒷머리를 삭발을 시키고 모친을 병원에 모셔다 두고 수술을 대기하고 있었던 상태인데 매우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김어준 : 라고 태도를 바꿨어요? 불가능이 아니라 수술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지인 : 네, 맞습니다. 그렇게 태도가 바뀌게 되는 거죠.
김어준 : 그 검사하고 면담 후에?
지인 : 네. 그리고 모친은 놀랐고 당황스러운 상태에서 병원에 달려와서 수술 동의서를 쓰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태도에
김어준 :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태도였다는 건 어떤 태도였다는 겁니까?
지인 : 수술 안 시킬 거니까 가시라. 수술 없다. 안 다쳤다.
김어준 : 아, 검사들이. 수사관들이 내려와서 안 다쳤으니까 어머님은 빨리 가시라고.
지인 : 그랬을 때 아들을 생각하는 모친의 마음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고.
김어준 : 그러니까 꾀병이라고 판단한 거네요.
지인 : 그렇죠. 아들은 분명히 자기 눈앞에 아프고 움직이지 못하고 힘이 빠져서 평상시에 건강한 모습이 아닌 걸 모친이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사에 방해가 된다, 떠나 달라고 요청을 받았고요.
김어준 : 계속해서.
지인 : 예. 그리고 병원 측에서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김어준 : 정반대로 바뀌어 버렸고.
지인 : 그다음 날 구속적부심심사에 갈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안 좋다고 충분히 검사에게 이야기를 했고,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을 달라.
김어준 : 연기해 달라고 했는데.
지인 : 그 당시가 진통제와 혈압약과 스테로이드제를 계속 투여를 받았기 때문에 약물 치료로 인해서 거의 맥이 다 빠진 상태였거든요.
김어준 : 실질심사를 안 받겠다는 게 아니라 며칠만 연기해 달라.
지인 : 하루 이틀만이라도 연기를 해 달라.
김어준 : 하루 이틀만이라도 연기를 해 달라.
지인 : 그럼 자기가 자신의 방어할 수 있는 어떤 그런 기회를 온전하게 받지 않을까.
김어준 : 기력이 하나도 없는데.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가서 나를 어떻게 방어를 하란 말이냐, 지금 상태에서.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기력 좀 챙기게 하루 이틀 시간 좀 달라.
지인 : 네. 그랬는데 그다음 날 아침 7시 반 정도에 강제 구인장을 소지하고 검찰이 병실로 들어옵니다. 걸어서 앰뷸런스를 탔고, 그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직접 걸어서 화장실에 갔다, 그런 말이 되지 않는 그런 악의적인 언론들이 계속 기사화되면서.
김어준 : 직접 보신 실제 장면은 어떤 겁니까, 그 과정이.
지인 : 보호자로서 대응을 해야 되니까 그 좁은 앰뷸런스 안에, 더군다나 그 뒤에는 검찰 조사관 두 명이 같이 동승을 했습니다. 자기가 지금 당장 몇 시간 후에 구속이냐, 불구속이냐에 대한 어떤 그런 긴급한 상황인데 어떤 사람이 검찰 조사관 두 명을 동승시킨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걸어서 화장실을 가고.
김어준 : 그러니까 몸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의 보도들이잖아요. 스스로 걸어 나와서 탔고, 같이 담배 피우면서 이야기하면서 왔다, 이런 거 아닙니까?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지인 :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응급차가 거의 3시간 반 만에 서울검찰청 앞까지 도착을 합니다.
김어준 : 빨리 달렸네요.
지인 : 조금의 미동도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요. 척추 신경이라는 게 그런 위중한 환자인데도 불구하고 앰뷸런스는 시간 내에 달려가서 자기들이 정한 수순대로 진행하기를 원했었죠.
김어준 : 본인들이 원한 아마 영장판사가 있었을 거예요. 걸어서 자기가 혼자 힘으로 탔고 그 안에 들어가서 담배 피우면서 여유작작하면서 올라왔다는 그런 보도를 보시면서 기분이 어떠셨어요? 보통은 이제 검찰이 이야기하고 언론이 보도하면 맞나 보다, 생각하고 사셨을 거 아니에요?
지인 : 그렇죠. 저도 이런 경우를 처음 당하다 보니까. 너무 이런 검찰 측의 놀라운 방식들, 그리고 언론들이 이 사람을 어떻게 몰아가는가의 방식들을 계속 곁에서 지켜보다 보니까 이제는 그냥 웃음이 나올 정도로. 응급차 안에서의 일어났던 일을 보도한 언론을 접했을 때 참 그냥 웃음이 나오는 정도 지경까지. 그때 상태는 그랬습니다.
김어준 : 그런 걸 직접 겪지 않으셨으면 검찰이 이야기하고 언론이 보도했으면 큰 틀에서는 대략은 맞겠거니 생각하셨을 텐데 이제는 안 믿으시겠습니다.
지인 : 절대로 이제는 제가 확실히 겪지 않은 일에 대해서 미디어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은 검증하지 않는 한 절대로 믿어서는 되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이번 계기를 통해서 느꼈습니다.
김어준 : 그 말씀을 하시러 나온 거잖아요, 사실은.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졸지에 3개월 안 한 지인을 도와주다가 평생 겪지 못할 일을 겪으셨는데. 조권 씨에 대해서 영장을 다시 청구할 것 같은데 그 전에 이런 이야기를 꼭 하고 싶으셨던 거군요.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이제 이렇게 되면 이렇게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3개월밖에 안 지가 안 됐다고 하더라도 검찰 입장에서는 굉장히 선생님이 걸리적거리거든요.
지인 : 그럴 수 있겠죠.
김어준 : 선생님도 피의자로 만들어서 영장이 청구될 수도 있어요. 혹시 그럴 가능성 검찰의 힘이 세거든요.
지인 : 이미 실제로 저는 증거 인멸을 도왔고, 도피를 도왔다는 혐의로 피의자로 검찰 조사를 수차례 받았고요. 곧 4차 조사를 예정 중에 있습니다. 지인을 도왔다는 게, 그리고 지인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든지에 의해서
김어준 : 억울한 지점도 분명히 있는데.
지인 : 분명히 있고 그리고 그걸 소명해야 될 권리도 있고 그리고 재판에서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게 법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그렇게 알고 살아왔었는데 이미 범죄자로 만들어 놓고 저같이 도왔던 사람은 범인처럼 그렇게 취급을 받았습니다.
김어준 : 졸지에 그래서 피의자 조사도 받고 이런 인터뷰하는 것 검찰이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더 괘씸해져서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알고 나오신 거죠?
지인 : 충분히 감수할 만큼 지금 이 상황들이 어이없게 돌아가고 있고, 정말 만화 같다, 소설도 아닌 만화 같은 그렇게 이 스토리들이 전개가 되고 있고.
김어준 :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셨군요.
지인 : 그렇죠.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에 대한 가치관 전체가 다 붕괴되고 새롭게 만들어질 정도로 저 역시 마음의 상처도 컸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완전히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바뀌어 버리는 계기가 됐죠. 그렇기 때문에라도 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리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의도로 출연하게 됐습니다.
김어준 : 누구를 타겟으로 하여 그 주변을 샅샅이 털어서 언론과 함께 만들어 낼 때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요, 사실은.
지인 : 숱하게 저희가 타 매체에 저희의 어떤 심정을,
김어준 : 사실이 이렇다고 여러 차례.
지인 : 얘기하고 싶었어도 연락 주겠다고 하고 그다음부터는,
김어준 : 다른 매체들에서 연락 주겠다고 해 놓고 답이 없더라, 결국은.
지인 : 네, 그랬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고, 그들은 그렇게 수많은 매체들을 사용해서 자기들의 정해진 스토리대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정말 변명할 수 있는 여지조차 주지 않고 매장을 시켜 버리게 되는 거죠.
김어준 : 어떤 잘못된 보도가 나올 때마다 그건 아니라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명해 보려고 하였으나 받아 주지를 않더라. 받아 주지를 않고 결국은 영장청구까지 가게 됐고.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사람은 수술이 당장 필요한데.
지인 : 그 이후에 세 군데 병원을 더 돌아다니면서 지금 이제 네 번째 병원까지 갔는데 똑같은 검사의 과정을 다 겪어 봤습니다. CT와 MRI를 다 각 병원마다 다 받아 봤는데 오히려 심하면 더 심했지 그 병이 만들어진 병이 아니다.
김어준 : 수술해야 된다고 하는 그 진단 결과는 다 똑같고.
지인 : 다 동일합니다.
김어준 : 그렇게 병원을 여러 군데 가신 이유는 또 뭡니까?
지인 : 처음에 갔던 대학병원에서도 검찰 관계자들이 와서 불과 몇 시간 만에 기피를 하게 되고 다른 병원에 가서 제대로 알고 싶어서 그리고 이게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니라 다른 병원, 공신력 있는 병원들에서 다 똑같은 의견이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병원을 들려 봤는데 수술 직전까지 갔다가 조권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아, 부담이 간다. 담당의는 수술이 필요하다까지는 진단을 내려놓고 수술을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수술할 수 없다, 장비가 없다, 우리 병원에.
김어준 : 자기들이 하자고 해 놓고 장비가 없다고 나가라고? 이야…. 그래서 병원을 계속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지인 : 우리가 어떤 수술을 강제로 시키기 위해서 병원을 옮겼다는 게 아니라, 일부 언론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수술을 해서 기간을 늦추고 하기 위해서 간 게 아니라 다른 공신력 있는 병원을 들려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언론에 이야기할 수 없고 언론이 받아 주지 않으니까 우리 나름대로 데이터라도 만들어 놓자. 그래서 공신력 있는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똑같이 받고 진단서를 똑같이 받았고 그 의사들은 수술을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계속 이야기를 했었는데도 불구하고.
김어준 : 수술을 안 해 줘요.
지인 : 조권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장비가 없다, 1~2주 더 경과를 지켜보자. 회피를 하게 됩니다.
김어준 : 그래서 계속 옮긴 거군요.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사실 병원을 옮긴 것에 대해서도 소설들을 많이 썼어요. 어떻게든 안 되는 병을 진단서 안 끊어 주는데 억지로라도 끊으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그게 아니라 처음에 갔던 대학병원에서 수술하라고 그랬는데,
지인 : 머리까지 깎게 했는데요.
김어준 : 자기들이 이발사 불러서 머리까지 깎았는데, 수술 곧 하자고.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해서 사인하기 직전인데 검찰이 와서 야기하더니 경과가 나았다고 나가라고 그래서 갔다 왔어요. 그런데 영장이 기각됐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병원은 이미 관계가 그렇게 됐으니 다른 병원으로 간 거 아니겠습니까?
지인 : 갈 수가 없죠.
김어준 : 거길 갈 수가 없고 다른 병원에 가서 여차저차해서 같은 검사를 했어요. 똑같은 결론이 났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바로 조국 전 장관의 동생 조권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수술을 할 수 없다, 장비가 없다, 경과를 더 보자. 그래서 또 옮기고 옮기고 옮기고 해서 네 번째 옮기게 됐다, 이런 이야기네요?
지인 : 맞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에 또 저는 두려움이 생겼었고요.
김어준 : 혹시 이러다가 전신 마비가 되지 않을까.
지인 : 그래서 응급실을 통해서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서 입원을 했고요. 검사를 다시 받으면 그와 동일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한 상태로 진단서가 나왔었고요.
김어준 : 왜냐하면 그런 상태로 계속 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지인 : 맞습니다. 약물 치료만 받았고. 그 과정을 다 꾀병이고 일부 언론에서 계속 ‘허리디스크다’ 허리디스크라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직접 취재당한 적도 없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허리디스크다. 그리고 병실에서 고함을 지르고 담배를 피웠다. 정상인처럼 걸어 다녔다. 앰뷸런스 안에서도 커피를 사 마시고 화장실을 걸어갔다.’ 마치 자기들이 직접 취재해서 확인하고 쓴 것처럼.
김어준 : 다 사실이 아닌데.
지인 : 수많은 언론들이 그렇게 계속 기사를 써냅니다.
김어준 : 다 거짓말 아닙니까?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그 말도 안 되는 기사를 보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지인 : 그러면서 이 사실을 한 번 정도는 제대로 짚어서 언론의 행태들이나 그리고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의 방식들이나 이것들을 일반인인 제가 감히 자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정도는 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라는 그런 울분 같은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생겼습니다.
김어준 :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억울하셨군요.
지인 : 그렇습니다.
김어준 : 일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 검찰이 혹은 수사관들이 노모도 막 대하더라. 노모는 피의자가 아니거든요.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아들을 걱정해서 온 노모일 뿐인데 대하는 태도, 이런 걸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지인 : 저도 피의자로 되어 있어서 검찰에 세 차례 조사를 받았고요. 3차 조사를 받던 중에 조사관이 저에게 뭐 괘씸하다, 기분이 언짢은 태도로 질문을 했습니다.
김어준 : 어떤 질문을 하나요?
지인 : “당신이 조권하고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주인공인 줄 아느냐.” 그때 제가 지금까지 참아 왔던 억울함과 분함과 감정들이 갑자기 폭발하게 되거든요. 당신이 주인공인 줄 아느냐.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상태에서는 자기가 다 주인공입니다. 우리 모두가, 소시민 모두가 다 주인공들이고 주인공으로서의 삶을 열심히 충실히 살아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당신은 조권의 하수인일 뿐이다, 그리고 조권 역시도 자기들이 목표로 하는 조국의 동생일 뿐이다. 조국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주인공 아닌 것들은 우리가 계획한, 설계한 방식대로 가야만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주인공인 척하면서 이야기가 많냐. 방향을 이해 못 하겠느냐.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는 대로, 그 길로 가야지 왜 자꾸 주인공인 것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느냐. 저는 그때 정말 분노를 느꼈고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한 개인으로서 보는 게 아니라 이 사건에 달려 있는 아주 조그만 부속물이다, 시키는 대로 가라, 우리가 의도한 바를 모르겠느냐, 말귀를 못 알아듣겠느냐, 우리가 원하는 대로 따라와라. 그런 태도에서 가장 격분을 해서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무조건 언론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김어준 : 인터뷰 결심을 거기서 하시게 된 거군요. 검찰이 그려 놓은 그림이 있는데 협조가 안 된다는 말은 자기들이 그린 그림으로 안 들어와 준다는 거거든요.
지인 : 그렇죠.
김어준 : 당신이 주인공 아니야, 여기서. 아주 작은 조연인데 대충 인정하고 빨리 빠져.
지인 : 맞습니다.
김어준 : 당신 몸이나 사려, 그런 거죠.
지인 : 네. 그런 태도에서 개인의 어떤 가치나 신념이나 도덕이나 정의나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왔던 그런 삶 자체가 아주 우습게 취급당한다는 그런 분노를 본질적인 분노, 순수한 분노가 마음속에서 튀어나오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김어준 : 보통은 이럴 경우에 원하는 것 대충 건네주고 빠져나오거든요,
지인 : 그렇게 저를 봤다면 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겠고요.
김어준 : 그래서 오히려 인터뷰를 더 적극적으로 해야 되겠다. 내가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지인 : 그것까지 감수하고 내가 앞으로 내가 28년간 해 왔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최소한 이것 정도는 인터뷰를 통해서라도 이야기를 해서 이 사람들이 일반 국민들을, 시민들을, 개인을 어떻게 보는가. 그 태도를 한번 정확하게 지적을 해 보고 싶다는 것,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김어준 : 선생님의 싸움이기도 하네요, 이제는.
지인 : 이제는 제 문제가 되어 버린 거죠.
김어준 : 알겠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조국 전 장관의 동생 조권 씨 지인과의 인터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