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했던 승자. 고독했던 패자.
그 둘은 서로를 기다렸다.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야만 했다.
“이번에야 말로 조치훈이 올 것이다.”
고바야시 9단은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기성(棋聖)의 자리를 지켜냈고, 8년의 기다림 후에야
조치훈 9단은 도전자의 자리에 올라 설 수 있었다.
도전자는 바뀌었고, 8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그 마음은 아직까지 변하지가 않았다.
고바야시는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승리를 통해 기성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그대로 반상에 보여준 첫 대국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난번의 패배를 떨치지 못한
모습이 나타난 것일지도...
169수 고바야시9단 흑 불계승.
“또 다시 패배자가 될 순 없다”
1국의 패배는 치명적이었다. 지난 승부로부터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 패배였기 때문. 조치훈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승리를 가져 올 것이다.”
반면 고바야시 9단으로선 8년의 기다림 끝에 얻은 완전한 승리의 기회였다. 부상투혼 조치훈을 상대로 올라선 반쪽짜리 기성(棋聖). 첫 대국은 그런 둘의 마음을 조금은 느슨하게 그리고 더욱 절실하게 바꾸어 놓았다.
제 2국.
조치훈은 흑을 잡았다. 이번까지 무너지면 다시는 흐름을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승부사인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기에 한 수 마다 목숨을 건다. 7전의 결승기는 아직 시작이라 할 수 있지만 이번이 승부를 갈라놓을 결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흐름. 흐름. 지난번 승부로부터 8년까지의 흐름....바꿔야만 했다.
그 절심함이. 생명의 건 한수 한수가...241수까지 흘러서야 끝을 맞이했다.
241수. 흑 6.5집 승
분위기는 바뀌었다. 또한 그 흐름까지도 유지했다. 첫 대국의 승리로 완전한 기성의 자리를 차지할 거란 예상을 조치훈은 2국의 반전으로 내리 3연승을 얻어냈다. 고바야시 9단은 물론
일본 바둑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역시 조치훈”
기성까진 단 1승을 남겨두고 모두가 숨을 죽이며 반상을 바라보았다.
“쉽지 않을거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고바야시9단은 담담하게 지금까지의 결과를 받아들이며 5국을 맞이했다.
제 5국. 흑 고바야시 9단, 백 조치훈 9단.
흑. 3.5집승.
마지막이 될 한판이 될 것인가. 최종국으로 끌고갈 한판이 될 것인가.
6국은 서로에게 절실함만을 남겨 주었다.
여유가 생겼던 모습은 이제 서로에게선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조치훈이 흑을 잡고 판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번 결승에서 백을 잡고 이긴 경우는
제 3국. 조치훈이 이긴 단 한번 뿐. 흑의 유리함을 이어 나가려면 이번 대국에서
승부를 내야한다. 그것이 승부사의 눈빛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250수. 백의 마지막 착점이 끝난 후 서로의 시선이 교차한다. 결과는 이미 서로가 알고
있었기에.....
흑. 8.5집 승
8년. 모두들 사고 이후 내리막의 길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그러나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을 뿐.
조치훈의 눈빛은 언제나 반상위를 향하고 있었다.
그 것이 언제까지 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조치훈의 마음은 변한적이 없다.
“목숨이 남아있다면.. 한 수에 그것을 걸고 둘 뿐입니다.”
조치훈편 끝.
ps. 4년이 지나서야 조치훈편 마지막을 올리는 군요...죄송합니다;;
늘 마지막 편을 못 올린것이 마음에 걸렸는데...이제는 이 글을 읽었던 분들이 계실지도 의문이군요;;
마지막 편을 올리고 싶었던 이의 글이라 생각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