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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7.6 메르스 대란 중 자가격리를 #2
게시물ID : readers_232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5
조회수 : 99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21 01: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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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의심환자였던 분이 최종 음성 판정을 받았다기에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다음 근무 까지는 말이죠.

     

헌데 음성 판정이란 연락을 받은 날, 으슬으슬하니 약간 감기 기운이 있기에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격리 상태를 하루 더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한잠 자고 일어나면 낫겠지 했는데 밤이 되니 약간의 오한과 온 전신이 두들겨 맞은 듯 한 전신 근육통이 일어났습니다. 메르스 감염되었다 완치된 분의 인터뷰 중에 극심한 근육통과 오한이 있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길, 일단 열이 없고 기침 가래가 없고, 접촉했던 가장 의심스러운 환자가 음성이라고 하니 사실 제가 메르스 감염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헌데 또 한쪽에선, 의심환자였던 분을 만난 날 열이 나지 않는 전신 근육통 환자가 평택의 모 병원에 문병을 갔었다고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이 환자는 열이 없었으니 메르스 의심 신고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당연한 얘기지만 마스크와 장갑 등 보호 장비를 착용한 채 진찰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일단 하루 더 혼자 지켜보다 열이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9일 낮, 상황 종료 메시지를 블로그에 남긴 채 아이들과 아내와 합류했습니다.

     

나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밤, 둘째가 열이 나고 구토를 한차례 하고 나니 제 맘속에 다시 의심의 봉오리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주일 전부터 기침 가래와 열이 있었다가 며칠 전부터 호전 양상이더니 하필 제가 집에 돌아온 그날 밤부터 다시 열이 나다니요. 게다가 심한 오한과 근육통이 계속되어 제 귓속을 체온계로 확인하니, 아뿔싸……. 37.5도가 찍혔습니다. 어제만 해도 열이 없어 그 사실에 안도하며 격리를 풀고 가족과 합류했는데 열이 난다면 이제 저도 안심할 입장은 아닙니다.

     

다음날 오전, 아이는 열과 구토가 계속되고 저는 오한과 전신 근육통에 낮까지 잠만 자다 깨다를 반복, 이대로 확진 없이 있다가는 다음날 예정된 응급실 근무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나름 큰 결심을 하고 일단 병원에 먼저 알리기로 했습니다. 응급실 수간호사 선생님께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니 병원 감염 담당이신 내과 선생님과 상의 후 연락을 주겠다 합니다. 잠시 후 나온 결정은 오늘부터 각 병원 별로 중환자실 환자들을 위해 메르스 확진검사를 외부 검사로 진행하고 있으니 그 김에 함께 검사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외래 종료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낮 시간이라 바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근무하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병원 입구에 커다란 흰 천막이 처져 있군요. 주말 이후에 설치되었나 봅니다. 도착했다 연락하니 고맙게도 부원장님, 호흡기 내과 선생님, 수간호사 선생님들까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눈가만 보이는걸요.) 흰 천막 안에서 나오지 않는 가래를 열심히  콜록콜록하며 모아 검체 보틀에 담았습니다.

     

병원 입장으로선 소속 응급실 담당의를  검사하는 것이 심히 부담스러운 일 일 겁니다. 만에 하나 양성이 나오면 응급실 폐쇄, 실질적으론 환자가 급감해 병원 폐쇄 효과까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죠. 이것이 지금 이 대란에 대책 없이 내몰린 병원과 의료인들의 현실입니다. 사실 호흡기 증상이 없으면 검사 적응증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비용도 직접 지불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2주간 근무를 안 할 것이 아니라면 근무 전에 확인했으면 좋겠다는 제 얘기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병원에서 비용을 들여 확진검사를 나가 준 저희 병원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임에도 의사로서의 윤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저희 병원 운영진이 참 대단하고 고맙습니다.

    

이제 화살은 쏘아져 활시위를 떠났습니다. 남은 일은 집에 돌아와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뿐입니다. 검사가 다음날 오전에 나온다 하여 예정된 근무를 하루 뒤로 미뤄 놓았습니다. 저녁에 있던 요셉의원 봉사 진료도 취소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감염되었던 의사 한 분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안타까운 뉴스가 들어와 있습니다. 건강하게 병원 생활을 하던 동료 의료인이 상태가 악화되었다는 뉴스는 가뜩이나 어지러운 제 머릿속을 심하게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 열과 구토를 지속하고 있는 둘째의 목을 들여다보니 작은 수포가 잡혀있네요. 아마 주말에 제가 봤던 많은 인후염 환아들에게 바이러스를 옮아와서는 저는 근육통, 아이는 인후염을 앓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의 혼란은, 솔직히 두렵습니다.

     


방금 음성 결과를 알리는 문자가 도착했네요. 후우, 다행입니다.

경과가 좋지 않은 의사 환자 분을 포함해 모든 분들이 이 파도를 잘 넘기고 건강을 되찾길 진심으로 빕니다.


MERS 의 공포는 응급실 진료 현장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간호사 분들께도 이번 대란은 힘겨운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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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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