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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7.5 메르스 대란 중 자가격리를 시작하며
게시물ID : readers_232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6
조회수 : 96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21 01: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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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진단된 감염자 수와 의심되어 격리 중인 사람의 수, 그리고 사망자 수가 늘어나 뉴스를 채웁니다. 일 년 전 사건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큰 혼란에 빠졌을 때마다 많이 봤던 모습입니다. 매번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운다고 하더니 이번엔 초동대처 미흡으로 일을 더 키우고 전 세계적인 민폐의 나라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초동대처 미흡으로 일이 더 커진 것도 문제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에겐 언론을 통해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특별한 감기가 40% 사망률을 가지는 치명적인 질환으로 인식되면서 그 공포가 더해진 것 같습니다. 사스와 신종플루 등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질환들의 경과와 비교하며 조심스레 예측해 보자면 한 자릿수 정도의 사망률을 기록하고 3개월쯤 지나면서 집단 면역이 획득되면 서서히 사그라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 자릿수 사망률도 아주 무서운 결과임은 틀림없겠지만 말이죠.




어제 토요일 밤이 제 당직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저희 병원 응급실엔 메르스를 강력히 의심해서 보건소에  신고할 만한 환자는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질환이 퍼지는 양상과 속도로 보건대 오늘 아니면 내일이면 김포에도 환자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으로 출발하기 전 부인과 첫째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잠들어있는 둘째 얼굴을 보면서 뺨에 입 맞추고 나오려니 참 뭐랄까…….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전쟁터로 파견 직전, 가족에게 인사하는 느낌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날 당직이었던 동료의 아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생각납니다. 동료가 출근 전, 아이 이마에 입 맞추면서 '한동안 못할지도 모르잖아…….'라고 말해 가슴이 짠해 왔다는 이야기. 각 병원마다 외래와 수술이 취소되고 환자분들이 도망치듯 병원을 나서는 지금의 현실에서, 자리를 피할 수 없는, 피해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의료진들이죠.


의료진 내부에서는 이 같은 희생을 다 알아주진 못하더라도 정부가 신고를 안 한 의료진에게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등의 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어쩌다 전문가 단체인 의사가 존경은커녕 한국 사회에서 이런 취급밖에 받지 못하는 지경에 왔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쨌든 맘 단단히 먹고 출발한다고는 했지만, 병원이 가까워져 올수록 올라오는 약간의 두려움까지 떨칠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에 도착해 토요일 저녁답게 밀려드는 경증환자와 오토바이 교통사고 환자를 보다 보니 정신없는 시간 속에서 두려움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N95 마스크를 착용하고 진료를 봤다는 것과 열이 나거나 감기 증상으로 온 환자는 접수실 앞에서 문진표를 먼저 작성하고 확인 후 들어왔다는 두 가지 였습니다. 병원 차원에선 메르스 의심환자를 위한 외부 격리 진료소를 따로 마련해주어 의심환자가 내원하게 되는 경우 응급실 내부가 아닌, 외부 임시진료소에서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진료를 보기로 약속이 된 상태였습니다.




새벽이 되면서 어느 정도 밀린 환자들이 정리가 되어가는 시간이 왔습니다. 여유를 찾고 대기시간 없이 접수되는 대로 진료가 진행될 때쯤, 기침 가래 없이 오한과 열이 나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문진표가 들어왔습니다. 미리 약속한 대로 중동지역 여행력이나 확진 환자와 직접 접촉한 과거력이 없다는 문진표를 확인한 간호사는 문밖으로 나가 환자를 모시고 들어왔습니다.


간호사와 함께 들어온 젊은 남자 분은 몸을 한껏 움츠리고 있었습니다. 몸을 떨며 오한을 호소했고 집에서 상당한 고열이 났다고 했습니다. 문진표를 봤지만 혹시나 싶어 평택 수원에 다녀오신 건 없느냐 물으니 그제야 며칠 전, 확진환자가 있었던 서울의 모 병원 장례식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얘길 하십니다. 속으론 적잖이 당황했지만 환자 앞에서 내색할 순 없었습니다. 일단 기본 진찰을 마쳐 특이한 열의 원인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환자분께 조심스레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열이 확인되었지만 호흡기 증상이 없어
아직 메르스 얘기를 하긴 조금 이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건소와 통화를 해보고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다시 알려드릴게요

일단 열이 높으니까 해열진통제 주사랑 약 먼저 받으시고
밖에 임시진료소로 안내해드릴 테니까 거기서 잠깐 기다려주세요



며칠 전 제 당직 때 미리 확인해놨던 보건소 감염질환 담당자 휴대폰 번호를 제가 다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전화를 걸어 상의하니 밤이 늦었으니 일단 환자 집에서 자가 격리하도록 설명하고 연락처를 알려주면 다음날 오전 댁으로 방문해 검체를 채취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환자분은 검사가 진행 중인 메르스 의심환자가 되는 것이지요. 조용하던 응급실에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저와 간호사들은 미리 준비해뒀던 우주복 같은 방역 의류와 고글, 장갑을 챙겼고 응급실 안에 들어와 있던 환자와 보호자 분들께는 마스크를 나눠 드렸습니다. 그땐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갑작스런 상황에 불안을 느끼실 법한데 저희를 믿고 잘 따라주신 어젯밤 환자 보호자 분들께 늦게나마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환자분은 어느 정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나 봅니다. 별로 당황도 않고 질문도 없이 격리 설명에 응하고 귀가하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보건소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리기로 하고 말이죠.




환자를 보내고 나니 이제 응급실에 남은 의료진들은 걱정이 가득해집니다. 응급실장님과 수간호사님께 전화로 상황을 보고하고 환자가 앉았던 의자 등을 소독했습니다. 각자 손도 다시 닦고 복장도 새로 챙기고요.


정신 차리고 나서 생각하니, 아직은 의심환자지만 만약 확진환자로 확인된다면? 그때의 후폭풍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전 고민에 빠졌습니다.


'병실이나 응급실에 방문한 것도 아니고 장례식장만 갔다 왔다는데, 그리고 열만 나고 호흡기 증상도 없었는데 오버하는 것 아닐까? 진짜 메르스 감염환자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진짜 환자여도 마스크 쓰고 십여 마디 대화하는 사이 내게 옮겨져 왔을까? 목 안쪽은 괜히 봤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열도 안 나고 기침도 없는데 나까지 격리할 필요 있을까란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환자분의 확진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 격리를 하는 게 원칙이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밤에 같이 환자를 봤던 간호사 전원 또한 근무 일정을 동료들과 바꾸고 집에서 자가 격리에 들어가기로 했다는군요. 설마 했는데 말 그대로 '내게도 이런 일이?'입니다.


앞으로 3일간 외부 일정을 모두 취소했습니다. 보건소 예상으로는 10일이나 11일 확진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하는군요. 마침 아이들 키우는 문제로 장모님 댁에서 지내며 저희 집은 창고 겸 음악실처럼 사용하고 있었는데 자가 격리하기엔 딱 맞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걱정 한가득 담긴 눈빛으로 격리기간 동안 먹을거리를 챙겨주네요. 아이들 잘 부탁해요~


아내가 챙겨준 먹을거리와 책들…….
3일간 지낼 공간……. 혼자 온 여행이라 생각하자!



혼자 격리할 집으로 들어와 짐을 풀고 사진 한 장 찍어봤습니다. 모자랐던 잠도 푹 자고 책도 읽고 미뤄뒀던 글도 쓸  생각하니 이런 기회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인도에 놀러 온 느낌? 첫날이라 그럴까요? 부디 환자의 확진검사에 별 일이 없기만을 기대해 봅니다. 더 큰 혼란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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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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