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할 날 없는 한화 이글스. 또 다시 불거진 감독-프런트 문제에 선수들과 팬들 어리둥절. 근본적인 문제 해결하지 않고선 한화에게 허락된 가을은 없다.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시작됐다. 이 게임엔 승자도, 패자도 없다. 결과는 오직 ‘제로’일 뿐이다. 게임의 선공은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 김 감독은 4월 2일 두산 베어스전을 마치고 "퓨처스팀 투수 4명을 대전에 부르겠다"고 구단에 통보했다. ‘좌완 투수가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2일 기준 한화 1군 엔트리에 포함된 좌완 투수는 박정진과 마무리 정우람뿐이었다. 박정진은 두산과의 개막 3연전에 모두 등판했고, 정우람은 두 경기에 나섰다. 이후 경기를 고려하면 좌완 불펜 두 명으론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 계획대로라면 좌완 필승조 권혁이 명단에 포함됐어야 했다. 하지만, 권혁은 3월 22일 NC 다이노스전 등판 당시 허리 통증을 호소했고, 그 여파로 당분간 경기에 등판할 수 없다. 다급해진 김 감독은 ‘퓨처스팀 김혁민과 좌완 김범수, 김용주, 김병현 등을 1군에 올려 살펴보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했다. 그러나 구단의 대답은 ‘NO’였다. 한화 관계자는 "신인 김병현을 제외한 김혁민, 김범수, 김용주는 1군 코칭스태프가 전지훈련과 시범경기 내내 봤던 투수들"이라고 말했다. 참고로 한화는 2015, 16시즌 무분별한 선수 콜업으로 팜이 초토화되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구단은 이미 세워놓은 육성 기조에 따라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점은 김 감독 역시 동의했던 부분이었다. 한화 관계자는 “올 시즌 구단 시스템이 확고하게 정해진 상태다. 감독님도 동의한 부분”이라며 “구단은 정해진 기조를 계속 끌고 갈 생각이다. 예외를 둔다면 지난 시즌과 다를 게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지금은 원칙을 따질 때가 아니다”라며 “현장에선 선수 육성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구단은 그간 도대체 뭘 했냐”고 되레 불만을 표시했다. (중략) 다른 구단 1군 운영팀장은 사견을 전제로 “현장과 구단의 시각이 너무 다른 게 문제의 시작"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감독은 모든 선수를 직접 확인하겠단 입장이고, 구단은 '퓨처스팀을 믿고 기다려 달라'는 자세다. 한화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요즘 1군은 퓨처스팀에서 추천한 선수를 1군으로 콜옵한다. 퓨처스 선수를 가장 잘 아는 게 퓨처스팀 코칭스태프이기 때문이다. 1군 감독이 퓨처스팀 투수를 1군으로 불러서 불펜투구만 200, 300개 던지도록 시켰다고 치자. 그런 다음 마음에 안 든다고 퓨처스팀으로 다시 내려 보내면 그 투수는 퓨처스팀에서 정상적으로 등판할 수 없다. 선수의 등판 일정은 일정대로 꼬이고, 선수 마음은 마음대로 상하는 까닭이다. 이 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있다는 건 큰 아쉬움이다." 모 구단 단장은 “나도 모든 원칙은 1군이 우선이다. 모두 1군이 잘되라고 노력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운을 뗀 뒤 이렇게 한화 갈등을 설명했다. “문제는 소통이다. 감독은 선수가 필요하면 퓨처스 코칭스태프에 얘기해 확인한 뒤, 쓰면 된다. 또 퓨처스 코칭스태프는 ‘누가 있고, 이 선수가 컨디션이 좋습니다’라고 보고해 스케줄에 맞게 올리면 그만이다. 양측이 이런 단순한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풀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덧붙여 이 단장은 “개인적으로 정말 안타까운 건, 이런 이야기가 외부로 흘러나갔단 점이다. 내 가족, 내 동료로 일하다 보면 서로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 오해 살 일도 많다. 하지만, ‘한번 당해봐라’하는 식으로 지르는 건 구단 전체 분위기를 망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중략) 김 감독의 ‘퓨처스 선수 불러올리기’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투수 김민우다. 김민우는 2016시즌 투수에겐 치명적인 '어깨 관절와순 손상' 판정을 받았다. 한창 관리받고, 보호돼야 할 어린 유망주는 2015시즌부터 시작된 무분별한 불펜 피칭과 과도한 투구 수에 선수 생활의 큰 위기를 맞았다. 퓨처스팀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도 모자랄 판국에 1군에서 허송세월한 것이다. 지난 시즌 배영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1군에 올라와선 공 한번 던져보지 못하고 퓨처스팀으로 내려갔다. 여기다 팔꿈치 수술에서 돌아온 이태양은 재활 투구를 실전 경기에서 치러야 했다.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구단은 김 감독의 선수단 관리 방식에 급제동을 걸었다. 비정상적이었던 선수단 운용을 이제야 겨우 정상으로 돌려놨다. 퓨처스 선수를 1군에 불러 등록도 하지 않은 채 많은 공을 던지게 하는 '김성근식 쇼케이스'는 더는 안 된단 입장이었다. 지난 시즌 한화 투수 유망주였던 김민우는 1군 말소 상태에서 1군과 동행하며 많은 공을 던졌다. 그 결과 김민우를 기다린 건 지독한 부상과 고독한 재활뿐이었다. 그저 ‘한 번 보겠다’는 감독 욕심이 선수를 절벽으로 몰아 넣은 셈이다. 1군에 필요한 선수를 공급하는 것은 퓨처스팀 고유의 역할이다. 하지만, 퓨처스팀 코칭스태프를 배제하고 감독 마음대로 팀을 주무르려 해선 안 된다. 퓨처스팀을 믿고, 맡겨야 한다. 감독도 팀의 일원이다.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구단이 정한 원칙에 따라가는 것이 기본적인 역할이다. 감독은 팀에 소속된 일원이지 ‘절대자’가 아니다. 그렇게 팀을 위했다면 선수가 필요했을 때, 왜 먼저 퓨처스팀에 연락하지 않았을까. 팀 걱정에 밤잠을 설친단 노(老)감독에게 그 전화 한 통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일까. 어쩌면 노감독에게 ‘팀’이란 ‘우리’란 팀웍보단, 자신을 빛내줄 ‘도구’가 아니었을까. (중략) 쉐인 스펜서 화성 히어로즈 감독은 KBO리그에 뿌리 내린 소수 감독의 잘못된 관행을 이렇게 말했다. “아마 제일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경우 1군 감독이 팀 전체를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퓨처스팀 모든 구성원이 1군 눈치를 보게 된다. 물론 1군 감독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1군 코칭스태프와 선수 관련해 이야기를 자주 나누고, 퓨처스 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간다면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다.” 스펜서 감독의 말이다. 이어 “마이너리그에 비하면 퓨처스리그엔 선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아직 1군에 올라갈 준비가 안 된 선수가 1군에 콜업 되는 경우가 많다.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난 그때가 제일 아쉽다. 1군 선수단과 함께 훈련하는 것도 좋은 기회이지만, 퓨처스 경기에 출전하며 스스로 경험을 쌓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화 올 시즌 성적은 2승 2패.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개막전부터 지난 시즌 우승팀 두산과 준우승팀 NC를 만나 거둔 성과였다.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건 한화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다. 타자들은 최선을 다해 뛰었고, 몸을 사리지 않았다. 투수들은 공 하나에 온 힘을 다했다. 경기마다 선수들의 ‘간절함’이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