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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펌][픽션]병신우화(丙申偶話)
게시물ID : sisa_6366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튀각먹깨비
추천 : 1
조회수 : 97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19 08:42:47
출근길 맘이 존나 무겁다.

내년도 예산도 각하가 원하시는 대로 통과가 됐고 각하의 지지율도 여전히 견고하다. 경제수석의 낯빛이 조금 어두웠지만 그거야 그냥 지네들 평소 걱정일 뿐, 언제 경제가 좋아졌다고 희희낙락할 넘들도 아녔다.

허구헌날 경제는 문제였고 언제 한 번 빼꼼한 날이 있기는 했나 싶다. 그것두 다 각하가 국회에 통과를 요청하고 계신 관련 법안들이 지지부진하긴 때문이란 걸 알기는 하는 걸까.

써비스 관련 법안만 통과가 돼도 7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데 돌대가리 야당넘들이 우리 각하 잘 되는 일을 못 봐서 쌩트집을 잡아대고 물러터진 여당 대표가 강단 있게 일 처리를 못 한 탓이지.

그래도 내 맘이 이렇게 무거운 건 며칠 있으면 닥치게 될 새해 때문이다.

각하의 임기가 이제 절반을 지나 후반기에 접어들고 여전히 정치판은 각하의 호령 한 마디에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할 정도로 전례에 없었던 장악력을 행사하고 계신 이 마당에 정말 며칠 후가 문제가 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하고많은 60갑자 중에 병신년이 웬 말이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로 예순번에 한 번 오는 그 해가 하필 왜 내년이란 말인지 실로 경악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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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각하는 실로 열 남자, 천 남자의 몫을 넘치게 하는 영명하신 영도력을 지니고 있는데 하필 내년이 병신년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일찍이 각하의 심기 관리를 비서실 업무의 가장 최우선으로 삼으셨던 전임 비서실장께서도 임기 후반의 정세 분석을 하면서 제일 염려했던 일이 2016년이었던 것으로 보면 이미 여름도 가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됐지만 각하의 부단한 해외여행순방 일정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 코앞에 닥쳐있다.

보신각 타종이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든 넘들이 하나같이 외치게 될 “국민 여러분, 드디어 병신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리는 상상만 해도 피가 마를 지경이다.

그 넘들이 그 멘트를 하고 싱긋 웃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나라가 뒤집어질 일이니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꼭 이 문제를 해결하고 말리라 다짐하며 오늘 관계기관 대책회의로 이 문제를 풀고야 말리라, 단호한 각오를 다시 폐부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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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의 존안을 뵙고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총리와 문체부 장관, 교육부 장관, 미래창조 과학부 장관, 안행부 장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벌써 자리에 있었다.


“왜 국정원장은 안 오셨습니까?”


빈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오시고 계십니다. 댓글 추이 분석 자료를 준비하여 오시느라 조금 늦는다는 전갈이 있었습니다.”

“그 넘의 댓글이 문제야. 알겠습니다. 국정원장님이 도착하지 않으셨지만 곧 오실 테니 지금부터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오늘 회의의 목적은 ‘병신년’에 관한, 아니 내년 간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총리님께서 주재해 주세요.”


헛기침을 한 번 길게 한 총리가 말문을 열었다.


“아~ 주지하시다시피 내년 2016년이 병신년, 아니 간지년이, 아니 음, 여튼 내년이 문제입니다. 대책방안들 수립하여 와 달라 했는데 좋은 의견들 준비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어느 분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문체부 장관입니다.”


디자인을 배우고 광고에 일가를 이룬 문체부 장관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간지는 원래 우리나라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화사상에 찌든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말도 안 되는 구악 중의 하나입니다. 21세기에 간지라니 말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간지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상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를 지지하고 있는 노년층들이 반발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문체부 장관은 결의에 차서 말했다.


“국정교과서 때 보셨지 않습니까. 조금은 반발해도 논네들은 젤 먼저 돌아설 겁니다.”

“그럼 임진왜란은 어떻게 할까요? 갑자사화, 을미사변은 어떻게 할까요? 이것도 다 바꿀 수 있을까요? 교육부 장관 말씀해 보세요.”


법조인으로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교육부 장관이 안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쉽지 않습니다. 지금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일정도 촉박한데... 겨우 대일본 제국주의 시대와 각하의 부친이 관계된 근현대사 부분만 손보는 일정도 빠듯합니다. 다만 임진왜란은 일본 제국을 왜국이라 폄하한 부분이 있어서 임진 한일전으로 바꾸겠다는 국편위원장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임진 한일전? 괜히 임진년에 축구 경기한 거처럼 보이는데, 괜찮을까요?”

“자주 쓰다 보면 관계없습니다.”

“어찌됐든 일정 때문에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다른 의견 말씀해주세요.”


잠시 아무도 발언하는 사람이 없어 회의장을 둘러보았다. 그때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국정원장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바쁘신 모양입니다. 각하의 총애를 독식하시는 듯합니다. 총애 좀 노나주세요.”


총리가 부럽다는 듯 국정원장을 향해 입을 뗐다.


“총애는요, 그냥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입니다.”

“왜요?”

“컴퓨터만 켜보세요. 다들 각하 욕질로 온통 도배입니다. 일베가 있어서 다행이긴 합니다만, 일베가 없었으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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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이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어디 좋은 의견 있으십니까?”

“뭐 다른 방법 있습니까, 다 잡아넣으면 되지요. 병신년, 아니 간지년, 아니 참. 여튼 각하에 빗대서 대놓고 그런 말 하는 넘들 다 잡아넣으면 됩니다.”


국정원장다운 답이었다.


“다 잡아넣을 수 있습니다. 국가원수 모독죄, 경범죄든 뭐든 엮어 다 잡아넣겠습니다.”


안행부 장관이 호기롭게 나섰다.


“국가의 최고 존엄에 대해, 간지년…흠…을 빗대서 병신년…흠…이라고 댓글만 달아도 다 잡아들이세요, 다음은 검찰에서 조져대겠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눈치를 보던 검찰청장이 나섰다.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으나 미래창조 과학부 장관만이 한쪽 구석에서 썩소를 날리고 있었다.


“미창 장관님, 뭐 좋은 의견 없으십니까?”

“커험,……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쯔쯧.”


일동의 시선이 못마땅함을 담아 미창 장관으로 쏟아졌다.


“미래를 위한 창조를 해야지요. 그렇게 다 잡아넣겠다고 각하께 말씀드리면 각하야 좋아하시겠지만 또 얼마나 시끄러워지겠습니까.”

“뭐 다른 좋은 방안이라도 있으신지?”


총리가 기대에 찬 눈빛을 쏟아부으며 물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각하 치세 어언 삼 년입니다. 부친의 결단력을 온전히 빼다박으신 각하의 업적이 사해에 떨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각하의 업적을 기려, 다투어 초청장이 답지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보다 현명한 방법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까 방법이 뭐냐구요?”


총리가 조금 핏대를 세웠다.


“한자 표기법을 바꾸는 겁니다. 병을 반으로 바꾸기만 하면 반신년이 됩니다. ‘절반 반’자에 ‘갇 신’. 이미 신의 경지에 이르신 각하의 영도력에 반신이라는 말이 썽에 탁 차지는 않지만 인간의 경지를 이미 탈피하신 각하에게 딱 어울리는 호칭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국민 모두가 반신의 경지에 이르신 각하를 경애하며 반신년이라 부르며 기뻐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거야말로 대대손손 반신의 대통령을 기리는 창조적 개념의 확립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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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의에 찬 미창부 장관이, 각하가 집무를 보고 계신 쪽을 향해 성은이 망극한 눈길을 돌리며 확언했다.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띵한 얼굴로 총리와 나를 바라봤다.


“어때요? 교육부 장관, 문체부 장관님?”

“별문제 없을 듯합니다. 역사 교과서도 국정 하는데 국어 교과서와 한자 교과서만 국정화하면 됩니다.”


교육부 장관이 충성스럽게 나서며 말했다.


“자 그럼 모두들 나서서 관계부처 협조체제를 갖추고 TF를 구성하세요. 특히 이미 배포된 병신년, 아니 내년 달력들 전량 수거해서 폐기하고. 시간이 없습니다. 서두르세요, 저는 이만 각하게 보고하러 가겠습니다.”


참으로 보람차다.

이제 누구도 병신년을 병신년으로 부르지 못할 터였다.

이제부터 병신년은 반신년이다. 각하가 이제 인간계를 넘어 신의 단계에 접어들게 되셨다.

이 아니 기쁠쏘냐, 집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흥겨워졌다.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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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 독투 풍금

편집: 딴지일보 cocoa
출처 http://www.ddanzi.com/ddanziNews/6054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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