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의 정의란
오유의 문재인 찬양하는 사람들중에 대부분이 생각하는
내편아니면 다적이다라는 그런개념이 아닙니다.
그 어느 집단이건 100%의 그집단의 주장이 다 옳은 수는 없는법이고
다 자신과 생각이 갖지않는법입니다.
새누리당의 주장이나 새민련의 주장이 각자가
100%의 옳음이 아니며, 각개인에게마다 이익을 주지는 않습니다.
이는 필연적이죠
이에 선택을 해야합니다.
A집단은 나와의 이익관계에 60%의 도움을 주고
B집단은 나와의 이익관계에 40%의 도움을 준다.
A집단의 주장은 내 도덕적 잣대로 판단햇을시 40%가 인정되며
B집단의 주장은 내 도덕적 잣대로 판단햇을시 60%가 인정되다
의 개인적 잣대의 판단으로 표를주고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집단에 속해있는 당 기반 부동층의 지지자들은
A의 주장이 몇%가 옳고 자신에게 몇%의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를 떠나
믿고 무조건적인 표를 주는것이 부동층입니다.
이런 부동층과 중도층의 구조는
대한민국에서 야당에 많이 처줘야
야당 3 여당 4 이고 중도가 3를 잡으시면 됩니다.
중도인 3은 각정당에 나뉘어서 위에 말한 조건값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게 됩니다.
또는 권리를 포기하거나 합니다.
이는 자세히 구분되면 결국 중도좌파 또는 중도자유주의라고 불리우고
중도보수 또는 보수자유주의라고 불리웁니다.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결정을 못한것이고요~
중도라는것에도 이렇게 세분화할수 있지만 그들은 쉽게 움직일수 있으므로
합해서 중도라 불리우는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야당이 대부분 지는 결과는
중도층의 3중에서 자신쪽으로 표를 끌고오지못하는 것이 이유입니다.
표를 끌고오지 못한다는것은
결국 그들의 능력이며 중도층의 입장에서는
야당의 주장이나 여당의 주장이나 그게 그거다라는 판단일 것입니다.
어차피 야당이 승리하기위해서는 중도층의 표를 기권하게 만들어서도 아니되며
새누리당에 뺏겨서도 아니됩니다.
그렇다는것은 어찌되었건간에 중도층의 표를 흡수해야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흡수해야될 표는 적어도 3중에 1.5는 나와야 하는것이고요
나머지 1이 새누리에 가고 0.5가 투표의 권리를 포기하게 되더라도
4.5 VS 5로 지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유의 문재인 찬양하는 사람들중에 대부분이 하는짓이
새누리당의 골수 부동층과 하는짓과 똑같다고 여기는겁니다.
이렇게 국사교과서 사건으로 인해 중도층 및 기존 보수층안에서도 야당의 편을 들어주려하는데도
하는짓이 변함이 없고 이용할줄을 모른다면
결코 중도층의 표는 야당쪽으로 넘어오지 않을 겁니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정권을 교체할수 있다고만 판단하며
스스로가 여우가 호랑이인줄알고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다른 호랑이인 새누리와 그래 한번 붙자!
하는 꼬라지입니다.
중도층의 유입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중도층은 생각보다 합리적입니다.
어느집단의 논리가 더 옳다 판단되거나
어느집단이 나에게 이익을 주는가의 판단이나
어느집단의 도덕성이 더 좋은가로
움직여집니다.
중도층을 포기하느냐 유입을 시키느냐의 문제는 각집단의 노력으로 해야 하는것이지요
중도좌파나 중도보수냐의 선택을 할수 있게 각 집단이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왜 중도층들이 존재하냐..?
한쪽을 평생 선택하면 안되느냐??
라고 한다면
만약 중도층이 없다면 각 정당 및 국회위원들은 자신의 정당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을 필것입니다.
이는 이분법적으로 치고밖는 싸움만이 될뿐이면
한번잡은 승기는 연속으로 이어질것이고 이는 독재의 기반이 되는겁니다.
야당은 영원한 야당으로 여당은 영원한 여당으로 남게될것입니다.
하나의 집단에 속해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골수 정당 지지자가 되는것도 탓할수는 없듯이
중도층 또한 자신의 잣대로 도덕성과 이익이나 사상을 판단하여 표를 행사하겠다는 것 또한 탓할수는 없는것입니다.
그냥 선거에서 이기려면 자신들의 이익집단말고 그밖에 있는 나와 다른 이익집단의 이익도 지켜주어야 하며,
나와 다른 이익집단에게도 자산의 이익집단의 도덕성의 옳음을 증명해야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