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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이야기 7.3 할머니의 위험했던 순간
게시물ID : readers_232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원칙과정의
추천 : 6
조회수 : 85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18 04: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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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전날부터 아침까지 24시간의 진료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며 생각하니, 하루 동안 본 많은 환자 중 유독 한 할머니의 위험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큰 교통사고를 당한 할머니



할머니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발생한 교통사고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마치고, 입원 치료를 위해 가족들이 가까이 살고 있는 저희 병원에 전원을 왔습니다. 환자의 전원 문의를 통해 들었던 진단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어깨 쪽과 다리 쪽 골절만 있어 응급 수술이 필요치 않다는 소견이었습니다. '환자가 도착하면 기본검사만 하고 병실에 입원해도 되겠구나'란 생각을 하며 전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원 온 할머니를 처음 봤을 때, 붕대를 칭칭 동여맨 할머니 모습을 보고 저는, '진단과 달리 심상치 않은 큰 사고를 당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마와 눈 주위에 큰 부종과 멍이 있었고 어깨는 상당히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 것 까지 기억이 나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병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진찰한다는 생각으로 머리, 가슴, 배를 시작해 이곳저곳 순서대로 진찰을 시작했습니다. 골절이 있다는 어깨 쪽을 진찰하던 중 할머니는 목이 많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였습니다. 목이 아프다면 검사에 이상이 없더라도 보통 목 고정 밴드를 착용하고 이동하게 마련인데, 아마 어깨 쪽에 골절이 있었기 때문에 목 고정 밴드를 착용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마치고 온 상태였기 때문에 여러 CT 검사를 진행했을 것으로 생각되어 보호자께 CT를 복사해 온 CD를 달라 하였습니다. 그러자 같이 온 보호자는 이송차량에 타지 않은 뒤따라 오는 보호자가 CD를 가져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CT 결과를 확인할 순 없었지만 CT 검사에 큰 문제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 일단 필요한 X-ray 만 촬영하고 입원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목 고정 밴드를 착용했으면 좋았겠지만, 어깨 골절로 착용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30여분 뒤, 뒤따라 온 보호자가 도착해 그제야 CT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 CT와 목 CT를 차례로 살펴보던 중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목 뼈가 순서대로 보여야 할 자리에 뭔가 위치가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자세히 앞뒤로 옮겨가며 확인해보니 가장 위쪽 목뼈에 골절이 있었습니다. CT에도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골절이 있어 제대로 발견되지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골절은 상당히 위험해 까딱 잘못하면  사지마비뿐 아니라 심폐정지까지 발생할 수 있는 골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할머니께 목을 고정하는 밴드를 착용시키고 나서, 저는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CT 검사에 이상이 없다는 얘기만 듣고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 목 고정 밴드 착용 없이 입원 준비를 진행했더라면 할머니가 언제 위험에  빠질지 몰랐을 그런 상황이었으니까요. 보호자가 도착하는 30분간, 별 검사 진행 없이 할머니를 누워있게 했던 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대학병원 전공의 선생님이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목 CT를 확인했다면 쉬이 놓칠 수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 결과가 심히 끔찍할 수 있었습니다. 당장 목은 고정했지만 까딱 잘못하면 큰 위험이 올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골절의 위험성이 너무 커 2차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다시 진료했던 대학병원으로 보내자니 새로운 진단으로 인해 서로 난감해질 전공의와 보호자의 관계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병원으로 다시 이동하는 것은 검사를 두 번 받게 하는 일인 까닭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보호자분들께 설명해야 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해당과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한 결과, 일단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환자 안정을 유지한 채 차후 치료방법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걱정되었지만 일단 보호자분들께는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하기로 했습니다. 추가로 목뼈 골절이 확인되었는데, 대학병원 응급실이 혼잡해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뼈에 금이 간 미세 골절을 놓친 모양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목뼈 골절의 특성상 사지마비 위험성과 사망 가능성이 있음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대학병원으로 이동해 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점도 설명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다음날 다시 촬영한 목 CT에서 예상보다 위험한 골절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수술 없이 목 고정 밴드만 유지한 채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어느 때보다 특별히 더 할머니의 쾌유를 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꼭 완쾌해서 건강하게 걸어나가 주셔야 해요!



할머니, 퇴원하는 그 날까지 힘내세요!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여러 검사를 받고 전원 온 할머니께, 심각한 골절이 발견되어 치료 방향이 크게 바뀌는 상황을 보며 예전 전공의 시절의 많은 위험했던 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아마 저도 제가 알지 못하는 순간순간, 또 다른 놓쳐버린 진단들이 있을 겁니다. 그중 일부는 다행히 큰 위험이 아니었을 수 있겠지만, 다른 일부는 할머니와 같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오류인 경우도 있었겠지요. 그 생각을 하니 전공의 시절 참 아팠던, 제 부주의로 인해 할아버지의 생명을 놓쳐버렸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마 응급의학과 의사라면 누구나 저와 같은 가슴 아픈 기억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응급실에 항상 존재하는 의료사고의 위험은 환자의 응급함 만큼이나 그 위험성도 큽니다. 순간순간 환자의 생명을 좌우하는 의료진의 판단에 가능한 한 오류가 적게 발생하도록, 아니 가능하다면 없어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 응급실의 진료 시스템이 제대로 역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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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runch.co.kr/@csj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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