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인구 2만의 작은시골에 정착한지도 꽤 많은 날들이 흘렀지요. 이제는 가게도 안정이 되고 있고 아들 제이도 별 손색없는 미국 촌놈으로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문제없이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있는데, 바로 그 문제가 없는것이 문제였습니다. 평온하게 지내다 보니 외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많아진 거지요.
거기에다가 가깝게 지내던 필리핀계 의사인 후안과 가게 원래 주인이었던 순이 아주머니, 그 두 사람이 얼마전에 이곳을 떠났습니다. 순이 아주머니는 시애틀로 동생을 방문하러 갔다가 그곳에 꽂쳐서 시애틀로 이사를 갔고, 괴짜 닥터 후안도 자기 말로는 자신의 탁월한 수술실력이 소문나서 큰 병원에서 초빙을 받았다며 떠났습니다. 후안은 수술닥터였는데 이 마을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수술 할 일이 생기면 이웃 큰 동네 병원의 수술팀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수술이 있는 날에는 아침에 지나가다 들려서, "나 배 째러 간다." 하고 손으로 배를 쭉 긋는 시늉을 하고 가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후안한테 괴짜라고 하냐면요, 그는 거의 40이 되도록 혼자 살면서 자기는 사냥총하고 결혼 했다며 병원근무가 없는 날은 사냥터에서 사냥총을 끼고 살았습니다. 하긴 그 라이플총이 멋지긴 하더라고요.
저는 후안이 꼬시기도 했지만 사냥에 슬슬 관심이 생기기 시작 했습니다. 이 동네 근방에서는 샷건(작은 총알 여러개가 퍼져나가는 총)으로 주로 더브(산 비둘기의 일종)나 꿩 사냥을 합니다. 그런데 이 곳의 진짜 사냥꾼들은 새 사냥은 애들 놀이라며 취미로라도 사냥을 하려면 최소한 맷돼지사냥은 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며 얘기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후안에게 맷돼지사냥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후안의 장황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이야기를, 상식적인 차원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간결하게 정리를 하면,
보통 맷돼지사냥은 2, 3일 일정으로 떠난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먼저 발자국등을 보고 맷돼지가 다니는 길을 찾아서 땅콩을 뿌려놓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4,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땅을 파서 나뭇가지나 바위등으로 위장을 하고 그곳에 들어가 밤새도록 맷돼지가 나타나길 기다립니다. (잠은 낮에 차에서 잔다고... 아, 저는 잠 자는 문제에 예민해서요) 어떤 때는 이틀동안 맷돼지 구경도 못 하고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주로 떼를 지어서 나타나지만 한 방에 한 마리로 끝난답니다. 나머진 총소리에 다 도망가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경우에는, 너는 왼쪽놈, 나는 오른쪽놈, 그렇게 미리 약속을 정해 놓는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총 두 방 맞은 맷돼지 한마리 가지고 둘이 싸울수도 있으니까요. 옆에다는 권총을 총알을 장전해서 놓아 둔답니다. 가끔 맛이 간 멧돼지가 달려들 수도 있고, 등 뒤에서 코요테나 방울뱀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에 그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저는 후안의 이야기를 반쯤 들었을때 부터 다른 취미생활은 어떤것이 있을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후안이 가까운 곳으로 더브사냥을 가자며 저를 끌고 갔습니다. 조그만 호수(좀 큰 웅덩이 수준)를 끼고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는 곳에 와서 후안은 샷건 한 자루를 내려놓더니 '해브 펀' 하고는 자기는 다른곳에 자리 잡겠다고 사라졌습니다. 여기에 오면서 동네 들판에 있는 사격 연습하는 곳에서 날아가는 접시를 몇 개 쏴 부수고 왔기 때문에 저는 자신만만하게 준비를 했습니다. 마음의 준비까지 마치고 하늘의 뭉게구름 쇼를 감상하며 새가 날아오길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오른쪽에서 호수 쪽으로 물을 마시러 가는 더브 두 마리가 시야에 들어왔고 저는 적당히 앞쪽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총알이 발사됐고 한 마리가 총에 맞았는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마리가 도망가지 않고 그 주위을 빙빙돌며 계속해서 꾸르르 꾸르르 울더라고요. 어? 이게 뭐지? 저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뭐라고 형언할 수 없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며 멍청히 서 있었습니다.
사냥은 살아있는 생물을 죽이는 놀이라는것을 왜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그것이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냥놀이였습니다.
휴우, 후안때문에 사냥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샛길로 빠져서 한참을 왔군요. 이야기가 좀 길어지긴 했지만 마저 하겠습니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떠나고 나자 우리는 대책이 필요 했습니다. 어차피 이곳에서 살고 있으니 이곳 동네 미국사람들과 사귀어야 하는데, 그때는 우리가 아직 영어도 서툴고 마음도 그렇게 열리질 않아서 미국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지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한인교회 함 가볼까?" 아내의 말을 듣고보니 한국사람들을 만나서 좀 사귀어 보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에 순이 아주머니에게서 좀 멀리가면 한인교회가 하나 있다는 얘길 들은적이 있어서 시애틀에 전화해서 교회주소와 예배시간을 알아 놓았습니다. 순이 아주머니는 가끔 그 교회에 나갔었나 보더라고요. 교회에 대해서 물어보니 성인이 한 30여명 나오는 교회라는 얘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별로 믿음은 없었지만 이민생활에서의 한인교회는 신앙생활만이 아닌 사교모임의 장소이기도 하기때문에 교회에 가는것이 꼭 부담스럽지만은 않았지요.
드디어 일요일 아침,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한인교회가 있는 마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허허벌판을 가다가도 갑자기 나타나는 끝 없이 펼쳐진 목화밭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시골 고속도로로 한 시간을 넘게 달려서 그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 어떻게 한국사람들이 아이들까지 합쳐서도 아니고 어른들만 30여명씩 이나 모이는 한인교회가 있을수 있는지 의아해 하며 교회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앞에 있던 젊은 여자분이 우리를 보고 놀란듯 물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예? 아, 처음 방문했습니다." 우리는 인사를 했고, 놀란 표정을 얼른 감추는 그 여자분을 보며 의아해 했지만 워낙에 새로 방문하는 사람이 없어서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보는 내내 뭔지 모르게 어색했고 분위기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나오면서 모든 성도분들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는데, 아, 그제서야 우리는 왜 자꾸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는지 비로소 알게 되면서 놀라고 말았습니다. 30여명 되는 성도분들이 전부 다 2,30대 정도 나이의 여자분들 이었거든요.(나중에 보니 40대 여자분들도 몇분 계셨지만) 조금 당황해 하는 우리에게 한 여자분이 얘기해 주더라고요.
제가 이 교회를 방문한 첫 번째 한국남자라고요.
어쨌든 모든 여성분들의 열정적인(?) 환대를 받은 저는, 아..아니 아내와 저는 식사를 준비 해 놓은 곳으로 가서 목사님 그리고 성도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목사님과 면담을 했고 목사님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꽤 큰 군부대가 있답니다. 이 교회는 한국에서 미국군인들과 결혼해서 이곳으로 온 여자분들이 외로움을 신앙생활로 달래기 위해 함께 모여서 만든 교회인데 이곳에 있는분들 중 여러 여자분들이 애들 데리고 혼자 산답니다. 이곳에 와서 미국남편에게 버림받고 애들 때문에 한국에도 못 돌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많은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여자들만의 교회, 처음엔 이상하고 놀랐는데 알고보니 슬프더라고요.
아내와 저는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다시 방문해 달라는 열열한 구애(?)속에서 목사님에게 거의 강제로 집 전화번호와 주소를 강탈 당하고 그 교회를 나왔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 오면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멀기도 하지만 좀 그렇지?"
아내는 저를 옆 눈으로 쳐다보며 싱긋이 웃었습니다.
출처
제가 올리고 있는 미국시골생활 이야기들은 실제 제가 경험했던 사실들이며 등장인물들도 모두 실제로 존재합니다. 이 이야기들을 소설 처럼 꾸며서 더 재미있게 써볼까도 생각 했는데 제 능력으로는 도저히 안 되어 사실을 묘사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기억이 한계가 있어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별 볼일 없는 글,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