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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식당 - 구원
게시물ID : humorstory_4426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시하
추천 : 0
조회수 : 72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12 22: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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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umorstory&no=442658&s_no=442658&kind=search&page=1&keyfield=subject&keyword=%EB%8B%B9%EC%8B%A0%EC%9D%84  1편입니다.
 
단편같은 단편모음집입니다... 예전에 적었던 글들을 조금 다듬어 보았습니다. 안구테러 미리 사과드립니다 ㅠ
 
 
 
 
 
 
 
 
“구원해 줄 수 있나요?”
 
 
당시 나는 도깨비들에게 설법을 전파하고 옆 마을로 가기 위한 나루터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툭 내뱉어진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날카로운 끌로 바위를 긁는 듯한 목소리에 절로 경계심이 들었지만 그것의 눈동자는 연옥의 주민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깊고 순수했다. 어미를 잃고 숲속을 헤매다 가까스로 옹달샘을 찾아낸 지치고 피로한 새끼사슴처럼 가련해 보이는 그것의 몸짓을 보며 당시의 난 제자처럼 그저 데리고 다니며 깨달음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정말... 당신이... 우리를...”
 
 
아마도 내가 외치고 다닌 구원에 대한 설법 때문이리라. 그것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도깨비처럼은 보이지 않았고 연옥에 쌓이는 어두운 기운에 의해 뒤틀려 생겨난 무언가로 보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것들은 추악함이 가득해야 하지만,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산길을 따라 무리하게 나를 따라왔는지 그것의 자그마한 발에는 적지 않은 생채기가 가득해 절로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도와주마. 스스로 구원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그것과 나는 인연이 되었다. 우리는 아주 긴 시간동안 여행을 했다. 여행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우리는 고난을 통해 성장해나갔다. 스스로의 구원을 찾기 위한 여행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우리는 깎아지른 절벽을 굽굽이 돌아 피가 물처럼 흐르는 강을 건너 분노가 타오르는 사막을 이를 악물고 건너갔다. 얼음이 녹아 강물이 합쳐 바다가 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떨어지는 낙엽이 어깨를 타고 내리는 것을 얼마나 경험했을까. 우리는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끝없이 유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처가 되고자 갈고 닦았던 수십 년의 성찰도, 구원자가 되려고 지옥과 연옥을 넘나들며 떠돌았던 수백 년의 고행도 마음 속 깊숙한 곳 어딘가 비워진 구멍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싯다르타가 아니었고, 예수가 될 수 없었다. 그저 나는 길을 따라 걷는 이 일뿐. 길을 만드는 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욕망... 이에요. 우리는 욕망을 떨치지 못한 거예요. 당신도, 나도. 아니 어쩌면 나 때문에...”
 
 
그것은 나의 채우지 못한 마음 속 구멍을 욕망이라 불렀다. 그 원초적이고 심지어 천박해 보이기 까지 하는 단어가 그것의 입을 통해 대기에 떨리는 순간 나는 느꼈다. 그것의 말대로 욕망을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어린 소녀의 두근거리는 도홧빛 방심처럼 두근거림에 숨이 막혀왔다. 그리고 나는 깨달아버렸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게 그것이, 아니 그녀가 크게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어째서, 어째서 나는 경계하지 못했을까. 나는 그것을,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연옥을 천 년 가까이 헤매면서도 채울 수 없었던 공허한 구멍에 따뜻한 온기가 쉴 새 없이 들어차는 감각이 온 몸을 타고 흘렀다. 그렇게 가슴 속 공허는 메꾸었지만 나는 더 이상 부처도 구원자도 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깨달음을 버렸다.
 
 
구원을 얻지 못한 우리는 결국 연옥을 떠나 여러 차원계를 떠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정착할 수 없었다. 천계에서는 반푼이 구도자인 날 경멸했고 마계는 끝없는 타락의 목소리를 흘려 괴롭히려 했다. 그렇게 얼마나 떠돌았을까. 우리는 차원의 틈새를 떠돌아다니며 타락한 구도자와 본질을 망각한 악마로 불리고 있었다.
 
“인간 세상에 가보고 싶어요.”
 
나 역시 그리웠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동심과, 느지막이 늘어진 능선을 따라 물건을 가득 싣고 산을 타는 장돌뱅이들의 강인한 정신과, 대지의 축복을 기대하며 땡볕에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농부들의 뚝심이 그리웠다. 푸른 빛 한가득한 대지와, 여인의 눈동자처럼 새카만 밤하늘에 명멸하는 은하수가 사무치게 그리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곳의 주민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녀는 그 차원에 인정 받을 수 없는 부정한 존재이니까.
 
오랜 시간 우리는 고민했고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차원의 틈을 이용해 인간을 만나는 것. 우리는 인간 세상을 직접 만날 수 없으나 대신 그들을 통해 세상을 느낄 수 있으리라. 과연 그 방법은 좋았다. 우리는 누구의 간섭도 없이 인간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들의 마음을 통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위 정신체의 부정적인 생각을 먹고 사는 그녀에게 좋은 영양소이기도 했다.
 
 
 
“후회하지 않아요?”
 
 
 
그녀는 종종 내게 이런 말을 던지곤 한다. 천 년에 가까운 고행, 스스로 깨닫기 위해 쌓았던 영혼의 갈무리가 아쉽지 않냐고. 지옥과 연옥을 떠돌며 설파하던 그 때가 그립지 않냐고. 아직 틀을 깨지 못한 내게 후회라는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오히려 나는 지금이 행복하다. 그 어떤 고행으로도 채울 수 없는 부분을 그녀를 통해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언젠가 그녀도 깨닫게 되겠지.
 
 
 
-
 
 
딸랑-
 
쾅!
 
 
“마스터. 손님 왔어요. 차원이 조금 비틀어진게 아닐까 싶은데. 이쪽에서 열어주지 그래요?”
 
딸랑-
 
“어? 아 이거 또 말썽이야. 지구로 연결되면 자주 이러네. 하하.”
 
쾅!!
 
“일단 손님이나 받아요. 문 부서지겠네.”
 
“큼. 그럴까?”
 
일단 목소리를 좀 가다듬고, 이 번주 첫 손님인 만큼 기운을 넣어서! 꽃도 한송이 건네줘야지.
 
가게 안쪽에서 입을 막고 웃음을 억지로 참는 그녀의 기척이 난다.
 
 
벌컥-!
 
약간은 맹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파자마 차림의 여자손님이 내 얼굴과 문을 번갈아보며 의심스런 표정을 짓는다. 이럴 땐... 활짝 미소를 지어줘야겠지.
 
“흠흠, 문 부서집니다. 들어오실거죠? 손님.”
 
 
 
 
 
 
 
 
더하는 말.
 
연옥 [ purgatory , 煉獄 ] 가톨릭 교리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있는 동안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른다고 믿는 장소. 본문에서는 일반적 이성으로 정리되지 않는 요마들과 정령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설정했습니다.
출처 본인의 뇌내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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