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념일도 아니고, 뜬금없지만, 자료를 찾다가 생각난 우리의 영웅이 있어 소개합니다.
민족영웅이라 할 수 있는 손기정 선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고 있는 또 한명의 영웅 남승룡선수에 대해서 글을 올립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도착점에 다다른 남승룡선수>
남승룡선수는 1912년 11월 23일 전남순천 태생으로
서울에서 성장하여, 일본에서 유학을 거친 마라톤 엘리트입니다.
일본 메이지대학 유학 시절에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일본귀족의 후원을 받기도 했고
대학시절 출전한 마라톤 대회에서는 달리는 도중, 자동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하고도
1위를 할 정도로 탁월한 선수였습니다.
(의미는 없지만, 굳이 손기정선수와 놓고 보면 베를린올림픽에서만 손기정선수가 나았다 뿐이지,
평균적으로는 남승룡선수가 더 뛰어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탁월한 기량을 보유)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선수 선발전에서도 남승룡선수는 1위를 기록했고,
2위로 들어온 손기정 선수와 더불어 독일 올림픽 출전권을 따게 됩니다.
이때 일본체육회에서는, 3명에게만 주어지는 출전자격에서
'조센징'이, 그것도 2 명이 1, 2등을 차지해버리니,
'출전을 시켜야 하네, 마네'로, 꼼수까지 써가며 막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두 선수 모두 출전하게 됩니다.
(올림픽 출전 공식 이름은 일본식으로 난 쇼류(Nan Shoryu)로 기록돼 있음)
그리고 베를린에서 2시간 31분 43초의 기록으로 3위에 입상하게 됩니다.
손기정 선수는 2시간 29분 19초(마라톤 사상 최초로 2시간 30분대 벽을 깬 신기록)
<시상대에 올라선 남승룡선수(동메달) 손기정 선수(금메달)>
하지만, 시상대에선 알려진대로 기쁨보다는, 나라 잃은 슬픈 국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남승룡 선수는 이후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것보다,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부러웠다"
라고 회고하였습니다.
손기정 선수도 이날 밤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서,
'슬프다' 라는 단 한마디만 적어 망국의 한을 표현합니다.
시상대에서는 슬퍼했지만, 두 선수는 조국의 동포에게 긍지와 희망을 안겨줍니다.
당연히 손기정 선수가 이름을 더 알리게 되었지만,
남승룡선수의 업적도 덜 빛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올림픽 마라톤 역사에서 한 국가에서 2명이 메달을 획득한 건
딱 2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귀한 기록입니다.(1번인 것같기도 하고 좀 애매한 구석이 있음)
그리고 해방이후 1947년, 남승룡선수는 보스톤마라톤대회에 대한민국의 선수로 출전하여
36세라는 고령임에도 10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합니다.
귀국이후 백범 김구선생과 기념 촬영 모습
왼쪽부터 손기정, 서윤복, 김구, 남승룡
서윤복 선수가 2시간 25분 39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1위한 우승자(동양인 최초)
남승룡 선수는 코치 겸 선수로 출전, 손기정 선수는 감독
이후 남승룡 선수는 외부활동은 자제하면서 전남대 교수로 재직하였고 후배 양성에 임하였고,
2001년 2월 20일에 별세. 1970년에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고향인 순천에서는 남승룡 선수를 기리며, 기념 마라톤대회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