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 |
|
“판도라와 헬조선”
그리스 로마 신화중 한 이야기는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서 말하고있다.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가 지상으로 내려가게 될때 신들은 판도라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그 중에선 온갖 만악이 담긴 상자 또한 있었다. 판도라가 상자를 열자, 질병, 슬픔 등 흔히 우리가 악하다 라고 규정하는 모든 것들이 세상에 쏟아 나왔고 판도라가 상자를 닫았을 때 그 안에는 희망만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희망은 어째서 악으로 가득찬 그 상자안에 있었던 것일까?
희망이란 말은 그 자체로도 사람을 변화하게 하는 마법(魔法)같은 힘을 가지고있다. 때로는 도저히 답이 없어보이는 상황에도 사람을 과감하게 행동하게 만들고, 어쩔땐 이미 모든걸 포기한듯 보이는 사람을 다시 일어서게 만든다. 많은 이야기들이 희망을 노래하면서 인간의 위대함을 역설할 정도이다. 희망은 언뜻보면 판도라의 상자안에 있기보단 신들이 판도라에게 직접 주었어야할 만큼 위대한 예술같이도 보이기도 한다.
신화로 다시 돌아가서, 상자안에 희망이란 것이 다른 악들과 같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매우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직관적으로, 희망이란 개념은 증오, 전쟁, 가난같은 존재들이랑은 같은 의미에서 상자에 가두어졌던 것은 아니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왜 신들의 입장에서 ‘악’으로 분류되었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그리스 신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판도라는 사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것에 대한 벌이라는 정설에서 말이다. 제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주자는 프로메테우스의 제안을 거부한 이유는 불이 인간에게 너무 위험해서이기 때문이다. 불은 인간에게 빛과 따듯함을 가져다 주지만 신들에 입장에서 우매한 인간들이 사용하면 자칫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생각해보면 희망은 이런의미에서 불과 비슷해 보인다. 희망은 달콤하며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도와주지만 희망만 믿고 무작정 부디쳐 나가다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냉혹한 현실은 분명히 보여준다. 신들 입장에선 어쩌면 희망은 불과같이 인간이 다루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개념이기에 다른 악과는 확실히 다른 이유지만, 판도라의 상자 깊숙히 가두어 놓았지 않았을까 싶다.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해석을 단순 긍정적인 교훈을 주기위한 신화를 과대평가했다고 비판하지만 현 대한민국의 국면을 보았을 때마다 필자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가 떠오른다. 현재 우리나라의 부정적인 면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오오력’ 과 ‘헬조선’ 등이 뉴스에도 실리는 와중에 우리 사회는 정녕 희망이란 개념을 옳게 사용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빛을 보아야 그림자를 알다싶이 희망을 가져라, 노력해서 안될 것은 없다라며 청년들을 경쟁시키지만 달콤하게 속삭여진 말과 다른 쓴 현실을 마주하게 될 대다수의 청년들은 결국 더욱더 좌절에 빠지길 마련이다. 평생 빛 하나만 보며 가진걸 포기하면서 까지 빛을 쫒지만 결국 자신은 그림자속에서 벗어나지 못할것같다는 의구심이 청년들을 잡아먹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회는 희망이란 불을 청년들을 이끄는대신 그들을 불태우며 자신들을 위한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희망은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절대로 가난, 죽음등과 같이 악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사회가 노력, 희망등의 단어를 풍자하고 부정적으로 보게된 것은 어째면 수천년전의 고대인과 신들의 우려대로 현 사회가 희망이란 개념을 오용하여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을 진정한 악인 ‘절망’ 과 ‘죽음’으로 몰아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판도라의 상자라는 신화를 보았을 때 다시 순수했던 소년의 마음으로,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에는 희망이 남아있을 거라는 행복한 방향으로 이 이야기를 해석할 수 있으면 좋겠다.
출처 | 갑자기 떠올라 한시간동안 써봤습니다 급히 쓰고 아직 나이가 어려 많은 글에 많은 부족함이 있을겁니다.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