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박효종 위원장)가 인터넷상 명예훼손 글에 대해 제3자 신청 또는 직권으로 삭제할 수 있는 규정 개정안을 끝내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은 지난 7월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 입안예고 보고사항으로 올라온 후 야당 추천 위원들의 반대로 입안예고가 한 차례 미뤄졌다. 이후 정치권과 언론·시민단체, 수백 명의 법률가까지 정치적 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규정 개정에 반대했지만, 여권 추천 위원 다수로 구성된 심의위는 지난 9월 입안예고를 밀어붙였다.
오는 10일 열릴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엔 통신심의규정 개정 안건과 함께 ‘명예훼손 관련 통신심의제도 개선에 관한 건’이 상정된 상태다. 통신심의규정 개정안의 골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 침해와 관련된 정보는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해야 심의를 개시한다” 조항을 삭제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요청이나 심의위 직권으로도 인터넷 게시글을 시정조치할 수 있도록 바꾸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 개정이 결국 대통령과 고위공직자 등 공인의 비판 글에 대해 제3자인 지지자들이나 단체의 고발이 남발돼 이들에 대한 비판 여론을 신속하게 삭제, 차단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것이라는 게 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였다. 이 때문에 야당 추천 위원들도 규정 개정을 꼭 해야 한다면 ‘공인에 대한 예외조항’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이 역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심의위는 야당 측과 여론의 반발을 고려해 3기 위원회에선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경우 심의 대상에서 예외로 하겠다는 합의 성격의 통신심의제도 개선 안건을 의결할 방침이다. 전체회의 의결사항은 명문화된 규정은 아니지만 규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차기 위원회에 이 의결사항을 강제할 수 없다는 점은 있어도, 관례적으로 전기 전체회의 의결을 존중해 왔다는 게 심의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설령 심의위원들 간 합의로 명백한 공인에 대해선 명예훼손 심의를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모호한 공인의 범위와 유죄 판결을 받은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글은 삭제할 수 있다는 방침 등은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손지원 고려대 인터넷투명성보고팀 연구원(변호사)은 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공인의 범위가 굉장히 추상적이어서 법적으로 특정할 수 없지만 언론에 공개돼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나 공적 관심 사안과 관련한 주변인, 가족도 심의 예외 적용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명예훼손 심의를 허용하는 경우에도 심의위가 직권으로 삭제하는 것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손 변호사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명예훼손 표현에 대해서도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은 표현일지라도 단지 허위사실로 유죄 판단을 받은 게 아닌 명예훼손죄가 성립된 경우에만 한정해야 한다”며 “특정 표현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포괄적 심의신청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한 산케이신문 기사가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정윤회’ 또는 ‘7시간’이 포함된 모든 게시글이 심의 대상이 되거나 직권으로 삭제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야당 추천 심의위원은 “공인의 범위 등 보완할 부분들은 10일 전체회의 의결 이후 계속해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