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와 그 동맹국 영국,프랑스에게 주데텐란트를 양도할 것을 요구합니다.
오스트리아 병합(이 경우는 국민투표로 이뤄졌으니 일단은 적법하지만)으로 유럽 전역에서 게르만족 민족주의가 들끓었고
게르만인의 비율이 높았던 주데텐란트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체코슬로바키아는 결사반대했지만, 1차대전에서 겪은 인명손실의 공포가 영국,프랑스의 판단능력을 마비시켰고
결국 주데텐란트는 뮌헨협정의 결과 나치독일의 손에 들어갑니다.(그리고 2차대전 개전 후 체코슬로바키아는 초고속으로 밟힙니다.)
그리고 1939년, 히틀러는 폴란드에게 단치히를 내놓으라고 요구합니다. 프로이센의 '고토'이고 독일인이 많이 살기 때문이었답니다.
이게 웃긴 소리인게, 분명히 단치히가 프로이센에 속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폴란드의 영토(라기보다는 사실 자치구였지만 어쨌든 폴란드에 복속된 땅입니다. 자치구로 남은것은 독일인이 많이 살았기 때문입니다.)였던 기간이 훨~씬 깁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애초에 프로이센이 차지하던 영토의 상당부분이 원래 폴란드의 땅이였는데 말이죠.
당연히 폴란드는 거절했고 나치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합니다. 이것이 세계2차대전의 개막이었습니다. 추산 5000만~7000만명의 사망자를 낳은 인류 최대의 광기의 개막은 다름아닌 민족주의에 근거한 '고토회복'의 기치였습니다.
아, 원래는 범게르만주의도 나름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겁니다(뭐 나치도 지들이 잘하고 있다고 믿었겠지만). 30년전쟁 이후로 갈라진 게르만족들이 모여서 통일국가를 만들어 잘 살아보자는게 요지였습니다. 그 잘 살아보자는게 다른 나라 땅을 빼앗아서 잘 살아보자는게 문제였을 뿐.
시오니즘. 원래 시오니즘은 사회주의적 신념에 기반한 순수한 사상이었습니다. 유대인을 억압하는 더러운 유럽을 떠나 우리들의 선조들이 살던 땅으로 가서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자. 이것이 본래의 시오니즘이었습니다. 원래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과 대립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것도 웃긴 소리인게, 아랍인과 유대인은 조상이 똑같은 셈족입니다. 오히려 시오니즘을 주창한 유럽계 유대인들은 천년 이상 유럽인들과 살다 보니 아랍계의 혈통은 거의 남지 않고 완전한 코카서스 인종으로 동화되어버렸습니다. 애초에 민족의 개념은 문화의 영향이 큽니다. 통념과는 다르게 로마의 유대인 추방은 예루살렘에만 한정된 것이었고 많은 유대인들이 그 이후에도 팔레스타인에서 잘만 살았습니다. 디아스포라는 애초에 허구이고 해외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그냥 자발적으로 나간겁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슬람이 발호하던 시기에 쫓겨나거나 아랍인으로 동화됩니다. 정작 유럽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계 유대인들을 차별했다는게 개그라면 개그.)
허나 어디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됩니까. 영국이 아랍인과 유대인에게 각각 민족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이중사기를 친 것도 있고, 굴러들어온 돌들이 돈을 앞세워서 땅을 팍팍 사들이는 꼴을 원주민들이 곱게 봐주지도 않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겹쳐서 아랍인과 유대인의 사이는 극도로 험악해졌고(시오니즘 이전에는 아랍인이건 유대인이건 팔레스타인에서 잘 살았는데) 그 결과가 현재의 중동입니다. 눈뜨고 봐주기 힘든 인권탄압의 참상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지상의 지옥이자 세계의 화약고가 바로 그곳입죠. 의도야 어쨌든 이런 상황을 초래한것도 민족주의입니다.
보시다시피 민족주의는 조금만 엇나가도 파시즘으로 둔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과는 사정이 다르네 뭐네 하는데 옛날에는 게르만족도 유대인도 다 국제사회의 약자 신세였습니다.(로스차일드? 그런건 극소수입니다. 당장 드레퓌스사건이 언제 터졌는지나 보세요.) 약자와 강자는 순식간에 뒤바뀌고 여러번 뒤바뀌는게 역사의 교훈입니다. 그 민족주의에 근거해서 우리민족이 사는 땅은 우리의 민족국가가 가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발전하면 바로 전쟁크리 터지게 되어있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같은 민족이 하나의 나라를 꾸려야 할 필연성조차도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서는 수없이 많은 다민족국가가 있었으며, 현재에도 많은 다민족국가가 있습니다만 잘들 살고 있습니다. 같은민족끼리는 안싸우고 잘 살것만 같습니까? 분명히 민족간의 갈등으로 많은 내전이 벌어집니다만 국공내전이나 킬링필드에서 보듯이 같은 민족이라도 이해관계가 갈리면 싸우고 갈라지고 합니다.
이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서 우리 민족과 만주,요동을 봅시다.
분명 역사시대의 시작 즈음에 그 지역을 차지하던 건 고조선이 맞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게, 우리의 조상 중에 고조선이 있는건 맞지만(한반도 중남부를 점유하던 진국의 후손은 죄다 증발했는지는 제쳐두더라도) 고조선의 후손 전체가 우리 민족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후에 만주에 등장하는 여진,말갈 등은 뭐가 됩니까?(선비,거란은 내몽골 출신이니 일단은 제외하더라도) 설마하니 땅에서 튀어나온 것도 아닐테고, 이들도 고조선의 후손일진데 설마 이들도 우리민족이라고 주장할 셈입니까? (호오, 이런 소릴 하는 환빠를 꽤 많이 봤습니다만. 청나라도 금나라도 다 한민족 역사군요?)
고구려와 발해의 시대에 말갈은 고구려,발해인과 같은 나라를 이루고 살았습니다만, 분명 '언어가 다르다'라고 삼국지 동이전에 나와있습니다.
즉, 고조선과 고구려와 발해는 한민족 단일민족국가가 아니었다는 사실. 이들이 우리민족이므로 만주를 되찾아야 한다는 논리는 말이 안됩니다.
많이 양보해서 고조선,고구려,발해가 한민족 단일민족국가였다고 칩시다. 그래봤자 발해가 망한게 926년이니까 1000년도 넘었습니다. 대체 1000년 전에 점유하던 땅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미치광이가 어딨답니까?(아, 유대인들이 그랬군요.)
발해가 망한 이후와 이전에 만주에는 많은 민족들이 거쳐갔습니다. 몽골/튀르크계(선비,거란)도 있었고 여진족도 있었고 한족도 있었습니다.
이 많은 민족들을 제치고 한민족이 만주의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멀쩡히 현재 자리를 잡고 있는 민족들을 무시하는것을 전제로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니까 조선족을 들먹이는 인간들도 있던데, 조선족은 만주 전체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옌벤 조선족 자치구만 해도 조선족 비율은 36.7%인데 한족은 60.4%나 됩니다. 더 범위를 넓혀서 길림성 전체로 놓고 보면 한족이 91%, 조선족은 고작 4%입니다. 둥베이(길림,랴오닝,헤이룽장) 전역에서 한족이 90% 가까이 될만큼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런데도 조선족이 만주 영유권의 근거가 됩니까? 애초에 중국은 '다민족국가'로서 정체성이 확립된 나라이고, 대다수의 조선족은 자신이 한민족인것 만큼이나 중국인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누구 맘대로 한국인을 만들 생각입니까?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만주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을 무시하고 무작정 1000년 전의 지도를 근거로 만주를 내놓으라는건 극도로 유치한 생떼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고토입니다만 그들한테도 고토입니다.
고토회복이 '미끼'라고 주장하신 분에게 말씀드리겠는데, 님이 던졌다는 미끼는 다름아닌 폴로늄입니다. 미끼를 물려고 몰려든게 아니라 위험하니까 치우라고 달려든겁니다. 이 한심한 인간아. 고기 잡자고 물을 오염시킬 셈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