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준비하다 학점이 후달려서 때려친 1인입니다.
요즘 한창 뜨거운 사시 존치 논란의 몇 가지 쟁점들에 대해서 제 생각을 적어봅니다.
글을 보시기에 앞서 사시 존치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은 찬성임을 밝혀둡니다.
이는 로스쿨을 사시를 준비하기 위한 일종의 학원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시 합격 인원을 기존보다 늘려야하며,
대신 로스쿨 재학 중인 학생들이 사시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스쿨 간 친구들이 보면 때려죽일 생각이군요(...) 아무튼, 시작하겠습니다
1. 로스쿨 금수저 vs 사시 개천의 용?
사시 존치 논란에서 많이 나오는 프레임입니다.
로스쿨 다니는 금수저들이 제 밥그릇 챙기려고 난리 피우는 게 같잖다.
사시는 개천의 용이다. 옛날에 사시로 인생역전 한 사람이 얼마나 많냐.
따라서 사시가 로스쿨보다 낫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분명히 사시가 개천의 용을 배출하곤 했죠.
과거엔 사시합격-검사/판사/변호사 진출 = 상류층 편입 이었으니까요.
근데 요즘은 로스쿨 준비하는 사람=사시 준비하는 사람 입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똑같은 사람인데 로스쿨에 있으면 금수저, 사시 보면 흙수저 이건 말이 안 되죠.
물론 소수의 예시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에 적용해도 똑같습니다.
즉, 흙수저가 로스쿨을 다닐 수도 있다는 거고, 금수저가 사시를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 프레임은 사시 존치 논란에서 분란만을 일으킬 뿐 전혀 유용하지 않습니다.
2. 로스쿨 출신들은 실력이 부족하니까 사시 출신들과 경쟁하지 못 한다.
역시 흔히 보이는 프레임입니다.
로스쿨 출신들은 인성도 실력도 개판이다. 실력이 부족하니까 사시를 없애려고 난리를 피우는 것 아니냐.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인 무한 경쟁을 왜 부정하려고 하냐.
실력이 되면 로스쿨도 하고 사시도 해서 당당하게 경쟁해라.
일부 동의합니다. 아직까지 로스쿨 출신들이 사시 출신들에 비해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스쿨 출신들이 사시 출신들에 비해서 실력을 발휘할 기회도 없었음을 아셔야 됩니다.
2009년에 로스쿨이 시작되었고, 첫 기수들이 2012년에 사회로 발을 디뎠으며,
고작해야 3년 정도의 경력을 가진 '애송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 3년차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회사가 없는 것처럼 그들 또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법률적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에 비해서는 법률전문가라 할 수 있지만,같은 법률전문가들 중에서는 초짜일 뿐입니다.
물론 법정 싸움에서 경력이 일천하다고 봐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 볼일없는 경력이 불만이라면 로스쿨 출신 변호사 대신에 사시 출신 변호사를 쓰시면 됩니다.
하지만 이제 경력 3년차를 지나는 사람들을 경력 30~40년차의, 업적을 이룬 사람들과 비교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같은 경력이라도 사시 출신이 로스쿨 출신에 비해서 뛰어나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당연합니다. 지금 사시는 로스쿨에 비해서 아웃풋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걸러지는 많큼 더 수준 높을 수 밖에 없죠.
하지만 만약 로스쿨 수준으로 사시의 아웃풋을 조정한다면 큰 차이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3. 로스쿨에서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집단적으로 행동하며 밥그릇을 챙기고 있다.
맞습니다. 분명히 로스쿨 재학생들은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집단적으로 행동하고 있고,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로스쿨 재학생들은 대다수가 자퇴서를 냈으며, 지금도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의 사이트에 사시 존치 반대를 외치는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근데 이건 딱히 잘못된 행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자기 미래가 위협받고 있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투자를 했으면 돌려받고 싶은게 사람 심리인데, 전혀 생각지도 못 한 부분에서 위협이 생기면, 분노하는 게 당연하죠.
로스쿨을 다니는 학생들도 사시를 준비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학점을 관리하고, 로스쿨을 입학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영어성적을 높이고, 리트시험을 준비하고, 로스쿨 면접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다시 로스쿨을 다니며 학점을 관리하면서, 인턴을 나가고 변시를 준비하죠.
대학원이라는 명칭때문인지 사시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이미지가 너무 크게 차이가 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많이 준비하고, 많은 대안들을 포기했으며, 지금도 포기하고 있습니다.
단, 여론을 조작하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며, 희생의 대가로 얻은 권리를 독점하고자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사시 존치를 찬성하는 입장에 대해 의도적으로 논지를 흐리거나, 여러명이 달려들어 반대 작업을 하여 글을 내려버리는 행위 등은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법을 공부한다는 학생들이 보인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치졸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건 로스쿨 학생들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죠.
그런데 마치 내가 이만큼 희생했으니까 나만 가질꺼야! 라는 주장은 떼쓰기나 다름없죠.
제가 사시 존치에 찬성하는 이유도 이겁니다.
로스쿨에서 배우는 과정은 사시를 준비하는 과정과 많은 점에서 유사합니다.
로스쿨 재학생들이 사시를 본다면, 이득이 있으면 있었지 손해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로스쿨 재학생들만 변호사/판사/검사가 되어야 한다?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4. 로스쿨은 비리의 온상, 깨끗한 사시에 비해서 흠결이 너무나 많다.
일부 동의합니다. 아무리 깨끗해 질려고 해도 로스쿨 입학시험은 면접이라는 비리 개입의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류에 인적 정보를 기재하지 않는 블라인드 면접을 많은 학교들이 채택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 알지 않습니까?
하려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다는거. 얼굴을 가리고 복면면접을 보지 않는 이상 비리 개입의 여지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로스쿨의 궁극적인 목적이 로스쿨 입학이 아닌, 변호사 시험 합격을 통한 법조계 진출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입학의 측면에서 볼 때, 로스쿨은 대학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지만, 강력한 졸업 시험이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학은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그 간판을 이용할 수 있지만, 로스쿨은 아닙니다.
막말로 많은 로스쿨생들이 졸업 때 변호사 시험을 합격하지 못 하면 부평초 인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매년 졸업생이 1500여명에 달하는 데, 굳이 여러번 시험 본 사람을 쓸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궁극의 목표인 변호사 시험에는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로스쿨 학생들의 자발적인 청구로 변호사 시험의 시험성적 공개가 이루어 졌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로스쿨에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있음은 분명하나, 이에 대한 자정의 노력 역시 존재하며,
로스쿨 진학의 궁극적 목표인 변호사 시험에 대해서는 비리 개입의 여지가 적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로스쿨은 사시에 비해서 흠결이 있지만, 그 흠결이 유의미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5. 마치며+로스쿨 형해화에 대해
사실 학점이 안 좋아서+별다른 활동도 하지 않아서 원하는 로스쿨에 못 간 저로써는 로스쿨에 딱히 좋은 감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로스쿨 제도 자체가 악의적인 이미지를 뒤집어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시에 비해서 문제점이 있을지언정, 그 문제점은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로스쿨 재학생들도 권리를 독점하고자 하는 시도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시 존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로스쿨 재학생들이 사시를 볼 수 없기 때문이어야 하지,
로스쿨 재학생들만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시 존치 반대론자들(이라 쓰고 로스쿨 재학생들)의 주장이 로스쿨의 형해화를 걱정하고 있는데,
그게 굳이 문제가 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미쳐가는 나라에서 없어지는 학과가 한두 개며, 엎어지는 정책이 한두 개입니까?
로스쿨 형해화를 걱정하는 것이 혹시 로스쿨로 만들어지는 인맥의 손실을 걱정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긴 글 시간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