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고시를 왜 없애려 하느냐는 글을 보았습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저희가 사시를 없애려 든 게 아니고, 사법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이미 2007년도에 사시-연수원 제도 폐지가 결정되었습니다. 그 논의의 시작은 아예 문민정부 때입니다. 다만 그 때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2016년도까지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주었고 단계별 인원 축소의 구체적 인원수까지 같이 발표하였습니다. 그걸 기성세대 변호사들이 20대 예비 법조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몇 달 전부터 부활 논의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의 배경은 뭐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혹은 "나는 사시가 없어진대서 로스쿨에 왔다" 같은 억울한 학생들의 목소리도(저희는 현행법 상 로스쿨 입학과 동시에 사시 응시 자격이 박탈됩니다) 그래봤자 니네 사정이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만약 사시 부활이 정말로 ‘어렵고 가난하지만 능력있는 학생들이 법조인이 되는 길’을 보장해주는 제도라면 물러설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도 사실 흔히 말하는 법조계 근처에 오기 전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첫사랑사수궐기대회> 같은 영화에서 차태현이 하듯이 머리띠 졸라매고 책 씹어먹으며 공부하면 사법고시 합격하는 그런 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사시는 "가난하고 머리 좋은 학생이 3년만 하면 붙을 수 있는 시험"이 아닙니다. 사시는 고졸도 합격할 수 있다고 하는데 199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1만 명 중 고졸 합격자 3 명입니다. 사법고시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붙지 못하고 시험에 붙어야만 한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돈 없어도 못 붙습니다. 수험가에서는 보통 3년 1억 잡는다는데 저는 사실 고시생활을 해보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빨리 졸업하고, 빨리 돈 벌어야 했거든요. 저한테는 한 달에 얼마가 드는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습니다. 어차피 단 한 달도 소속 하나 없이 실패의 리스크를 온전히 혼자 지며, 나 전업으로 공부할 테니 그 동안 나를 집에서 서포트 해달라고 할 수가 없었거든요. 나중에서야 남들보다 늦게 로스쿨 들어왔고요. 그리고 저희 동기 중에 그런 친구들 많습니다.
사시-연수원 체제가 병행되는 이상 현재 법조계의 병폐는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판사 부인이 이혼소송 내고 싶어도 그 기수 연수원 변호사가 다 거부해서 변호사를 못 찾았다는 이야기 아시나요? 영화 <변호인> 보셨을 것 같습니다. 고졸출신 변호사이던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른 변호사들이 보이던 태도 기억나시나요? 영화 <소수의견> 보셨지요. 영화적 과장이 대부분이라지만 기존 법조계의 제 식구 감싸기, 서열 문화만큼은 충분히 존재하는 사실입니다. 아래, 서울대 내부 커뮤니티에 기재된 <사시존치가 서울대생한테 유리한 이유> 글의 첫 문단입니다. (전문은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tock_new1&no=1271780) 1. 1000명 시절, 사법시험에는 1년에 350명 이상의 서울대생이 합격하여 '성골' 법조인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스쿨 도입 이후에는 제도적으로 서울대로스쿨에 100명밖에 진학할 수 없습니다.
'성골' 보이세요? 정말로 사시 부활시켜서 저 성골법조인 350명을 매년 배출시키고,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하는 데 찬성하신다면 저도 더 이상 말 안하겠습니다.
어쨌든 경쟁해서 이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왜 병행이 안 되냐고 이류 꼬리표가 그렇게 겁나냐고 물어봅니다. 예. 겁납니다. 이길 수가 없는 게임입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지금까지 약 4천 명입니다. 평균 연차요? 2년차가 안 됩니다. 나이? 20대겠네요. 사시 출신 현직 법조인은 저희 뺀 다입니다. 2만명의 대한민국 현직 판사, 검사, 변호사는 말할 것도 없고 국회의원, 장차관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대개 사시가 존치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몇 명 되지 않는 연수원배출인원을 방패 삼아 그 프리미엄을 더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몇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희망스토리 열심히 홍보할 겁니다.
사시가 부활하면 로스쿨은 망합니다. 어떻게 아냐고요? 바로 옆나라 일본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고등고시를 결국 끝까지 없애지 못했고 결국 로스쿨은 54개교 중 50개가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제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희가 자퇴서 내기 전까지 저희에게 쏟아지던 온갖 음해가 정말 어느날 짠하고 등장했다고 생각합니까? 음서제요? 로스쿨 준비하는 사람들 카페 가보세요. 여기 대학원입니다. 학부 학점, 리트 점수 등을 기준으로 소위 '커트라인'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면서 '쟤는 어떻게 들어왔대 잔디 깔아줬나?' 싶은 학우는 못 봤습니다. 금수저요? 로스쿨 제도가 사시와 비교하여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사회적 약자에게 제도적으로, 현실적으로, 실제 숫자를 보장하며, 법조인이 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꼭 특별전형으로 뽑는 학생이 아니어도 전국 로스쿨 재학생 중 그런데 왜 갑자기 로스쿨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이 쏟아지고, 보통 사람들 관심도 없을 것 같은 로스쿨 기사가 언론에게 돌아가며 보도되었을까요?
아래, 건국이래 모든 변호사 의무가입하도록 되어있는 대한변협 내부 문건입니다.
… 얼마나 조직적인지 감이 오세요? 야당 전략 여당 전략을 따로 나누고 언론용 홍보 책자도 따로 만듭니다. 야당은 친노 대 비노 구도 활용, 새누리당은 의원 접촉하고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기자회견 합니다.
한쪽에서 이렇게 조직적으로 음해하는데, 돈과 권력과 머릿수 사회적 지위 모두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조직이 전업으로 악성루머를 퍼트리고 있는데 저희가 무슨 수로 이깁니까?
저희, 사시-연수원 체제 병행하면 자퇴가 맞습니다. 저희보고 사시 보라는 글도 보았습니다. 저희는 로스쿨 들어가면서 법으로 사시 응시 자격 박탈 당했습니다. 이게 바로 저희가 병행 못한다고, 제발 폐지되던 제도의 부활을 막아달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로스쿨에 대한 비판 중 상당수는 수긍할 수 있습니다. 공부만 잘하는 학생들이 무슨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겠냐, 로스쿨도 어쨌든 돈이 들긴 하는 거 아니냐, 너네가 사시 시절보다야 다양해졌다지만 여전히 스카이 대학 출신 많더라, 남들 10년씩 공부하던 거 3년 안에 하면 당연히 더 모르고 시장에 나오는 거 아니냐, 예. 맞습니다. 그리고 고칠 점이 있으면 다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고,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면 투명해지면 좋겠고,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면 올리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도저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 사법고시가 희망의 사다리였는데 로스쿨은 그렇지 않다는 비난입니다. 사시 준비를 꿈도 꿀 수 없었고, 로스쿨이 있어서 법조인의 희망을 갖게 된 학생들이 제 주변에만 해도 너무나 많은데 그 사실을 무시해버리는 게 너무 억울합니다.
붙어도 로스쿨은 돈 없으면 못 가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모든 학생들에게 전혀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저 사실 돈 부담 받습니다. 학비가 안 들어도 사람이 공부만 하고 먹기만 하는데 돈이 안 들 수가 없거든요. 한 학기에 한번 저축해놓은 돈 엑셀로 계산해보며 우울해하고 얼마나 더 버틸까도 고민해봅니다. 그래도 사시 준비와 다른 건, 이게 3년에 끝난다는 것, 은행과 한국장학재단에서 생활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저는 로스쿨 붙고 학비 걱정하는 학생 있으면 제발. 제발. 제발 언론에 휘둘리지 말고 학교 장학처 찾아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저희 학교 오는 학생 중 그런 고민 하는 학생이 있다면 개인적으로도 상담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저 역시 몰랐고, 그래서 합격하고도 아직 돈 덜 모았는데… 학비랑 생활비 다 하면 안 되는데… 그냥 내년에 또 지원할까… 이러면서 망설였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건 로스쿨제도에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고 해도 그 대안이 사법고시-사법연수원 체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 학교가 비싸다는 거잖아요. 다만 한 가지 많은 국민 여러분께서 잊고 계신것은 연수원생들은 정부로부터 한 달에 15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으며 2년간 다니는 거구요. 로스쿨 학비가 비싼 이유는 저희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스쿨은 많은 장학제도를 갖추고 있고 등록금 자체도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시학원서 장학금 주고, 고시 식당에서 학생들 복지를 위해 싼값으로 밥 주고, 독서실에서 어려운 학생들은 무료로 책상 내주고 그러나요? 그러라고 압박할 수 있나요? 개인들이 하는 사업을? 학교는 개선할 수 있잖아요. 학교는 어려운 학생에게 지원을 해줄 수가 있는데, 니가 어떻게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하든지 나는 모르겠고 시험은 붙어보라고 말하는 사시-연수원 체제가 대안이라니요.
기성 변호사들 다음으로 사시 존치를 원하는 사람들이 신림동 상인들입니다. 여기서 사시존치 대회 하면 주최가 원룸 협회에요. 사시 시절 전국에서 신림동으로 모여들던 수험생들 덕에 호황을 누리던 이른 바 ‘고시 산업’이 이제 각학교 로스쿨에서 교육을 하다 보니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고시가 돈이 안 들면, 돈을 안 써도 되는 구조면, 왜 이 분들이 그렇게 격렬하게 사시 부활을 시키자고 집회를 다니겠습니까?
사람이 편견을 바꾸기는 어렵고, 사실 제가 이렇게 말한들 조작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습니다. 제 친구들은 저를 알기 때문에 로스쿨에 우호적이지만, 주변에 오래 사시 준비를 했다가 포기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로스쿨이 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나 긴 글 읽어주신 것, 한 번이라도 제 목소리를 들어주신 것,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