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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게시물ID : dream_106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호양
추천 : 0
조회수 : 25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2/05 13: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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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남은 있다. 그러니 죽음을 너무 무서워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전생과 환생 사이의 현생과는 다른 불멸의 生은 신들만의 영역. 비루한 인간일 뿐인 너는 범접할 수 없다. 전생과 현생과 환생 중 어떤 것이 진짜 너의 생일지 끝까지 알 수 없다. 그 三生의 얽힌 실타래 같은 복잡함에 그대가 미치지 않도록 망각이란 선물을 준 것. 말이 아닌 온몸을 통해 나보다 세번째로 큰 존재가 내게 말했다. 

다음 생, 바로 내 아비가 될 자를 내 눈을 통해 보고 있었다. 이 生에서 죽자마자 난 남자와 결혼 할 여자의 자궁에 잉태될 것이다. 남자는 작고 쭉 째진 눈에 강단있어 보이는 네모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첫인상은 무척 엄하고 고루해보였다. 난 계속해서 남자를 지켜봤다. 남자는 생각보다 환한 웃음을 지을 줄 알았다. 딸을 원하고 있었다. 남자의 딸이 어떻게 자랄 지 파노라마 처럼 내 머릿속에 펼쳐졌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보란듯이 일부러 보여주는 것처럼. 두번째로 나보다 큰 존재가 내 곁에서 속삭였다. 저렇게 좋은 부모 아래에서 행복하게 자랄테이니 현생이 잊혀짐을 억울해하지는 말라고. 하지만 잊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제발 기억을 지우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내가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꼭 기억해서 늦게라도 나를 잃은 아픔을 지울 수 있게, 찾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목소리는 침묵했고 나는 방법을 계속 찾아 다녔다. 

걸어서는 안되는 전화가 있다. 걸게 되면 죽음이 앞당겨지는 대가를 치러야 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죽음의 코앞에서 착신이 온다고. 그 공포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도 있다고. 하지만 전화를 걸었다. 알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잊지 않을 수 있냐고 물었다. '다음 생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만나야 해요. 그게 내 삼생의 이유입니다.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내가 기억할테니 지워지지 않는 법을 알려주세요.' 텔레마케터 같은 목소리의 여자가 딱딱하게 답했다.  '아주 옛날식 화장실를 찾아 더러워서 아무도 쓰지 않는 세면대 아래를 보면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듯한 해진 종이가 보일 겁니다. 그 명단을 작성하세요.'  
혼자서 어떻게 그 화장실을 찾았는지 모른다. 화장실 안은 버려진 창녀들로 가득했고 그녀들은 긴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다. 화장실 안은 몽롱한 연기로 가득했고 여자들은 반쯤 뜬 듯한 눈으로 나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명단에는 스물네명의 이름들이 이미 올라와 있었다. 사랑이든 복수든 각자 나름의 이유로 이곳까지 왔을 테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이름과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이유와 현생에서 처음 개통한 휴대폰 번호를 기입했다. 화장실에서 비틀거리고 나오자 처음 보는 차와 사람이 나를 맞아주었다. 이 차를 꼭 타야 된다고 했다. 아, 이것이 저승으로 가는 차로구나. 아직 마지막 인사도 못했는데. 비장한 각오로 차를 탔지만 차는 나를 한적하고 평화로운 어느 공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거기에는 여동생과 당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햇살은 봄빛으로 반짝였고 바람은 잔잔했고 다들 웃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같이 웃음이 났다. 

그때 언제 들었는 지 모를 내 손에 들린 휴대폰에서   갑자기 벨이 울렸다.  '준비를 하세요.'  대답도 하기 전에 큰 고통이 가슴을 관통해서 온몸에 퍼졌다. 눈이 감기는 게 느껴졌다. 가물거리는 정신 넘어로 울먹이며 '언니. 왜그래. 정신차려.'라고 비명지르는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긴 호스 때문에 여의치 않았다. 띠- 길게 심장박동이 멎는 소리가 들렸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직 약속을 못했다. 다시 태어나면 잊지 않고 당신을 찾을테니 나를 당신의 삶에서 지우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을 못했다. 나는 이미 그 명단에 이름이 올려져 있는데 내가 다시 돌아갔을 때 내가 아닌 누군가가 당신의 기쁨이 되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하나.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이 억겁의 생에서 혼자만의 기억으로 당신의 주변을 서성거려야만 하는 건가.


 물 속에 오래 있다가 수면으로 올라온 것처럼 거친 숨을 내쉬며 꿈에서 깼다. 나는 이미 울고 있었다.
출처 오래전 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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