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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영화관 '씨네코드 선재'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왔습니다
게시물ID : movie_5084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마약밀매상
추천 : 5
조회수 : 655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2/02 19:3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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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쯤 디판 시사회가 있어서 대한극장에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평소보다 좀 일찍 도착해서 사람들 왕래가 적은 구석쪽 벤치에 앉아 시간을 때우고 있었죠. 10분 정도 멍하게 딴생각에 빠져있었더니 그제서야 슬슬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시사회가 아니면 굳이 집에서 먼 상영관을 찾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영화관은 굉장히 새로운 인상이었습니다. 그 새로운 느낌이라는 것이 신선하다는 좋은 의미 외에 낯설면서도 마음 한켠이 애잔해지는 아주 복잡한 광경이라서 기억에 남네요.

군데군데 불이 꺼져버린 매점자리, 고장나서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 한적한 홀의 구석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히히덕 거리는 아르바이트 생들. 이런 모습들이 낡아버린 영화관 시설들과 묘한 시너지를 만들면서 마치 불꽃이 꺼져가는 촛불을 보는 듯한, 생명력이 다해가는 한 생물을 보는 듯한 다소 감상적인 생각에 젖게 만들었거든요. 사라지기 전에 와서 다행이라는 묘한 안도감과 함께 말이죠. 

얼마전 여러 매체를 통해 예술 영화관으로 운영되었던 씨네 코드 선재가 11월 30일부로 폐관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 예술 영화 매니아도 아니고 1세대 영화관들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첫 예술 영화관이 경영난 때문에 운영을 중단하게 된다는 사실은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동호인으로서 진한 아쉬움과 함께 묘한 책임의식까지 느껴져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1세대 예술 영화관의 폐관 당일, 한국 영화사 구석탱이에 한줄 정도나마 기록될 역사의 현장에 꼭 참여하고픈 생각이 들어서 충동적으로 영화를 예매하게 되었습니다. 마이크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이 마침 보기 좋은 시간대에 있어서 별 생각 없이 보러 갔습니다. 이번에는 '영화'가 목적이 아니라 '영화관'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았죠. 무엇인가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에 그런 무력하면서도 참담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면 족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참 묘한 영화더군요. 누구나 부러워 할 법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있는 톰과 제리 부부가 나옵니다. 다른 주인공 메리는 그들에게 갖가지 방식으로 진상을 부립니다. 메리는 그날 내가 기대하고 있었던 감정과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절망감을 맛볼 수 있게 해준 캐릭터였습니다. 타인의 행복은 결코 나에게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타인의 행복에 기대어 나의 슬픔을 치료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런 메리의 모습이 행복에 겨운 프렌차이즈 영화관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예술 영화관의 현실처럼 느껴져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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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때까지 기다렸다가 씨네 코드 선재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안 사실인데 예상보다 관객들이 많았습니다. 여성 관객분들도 많이 오셨구요. 비록 씨네 코드 선재는 이렇게 문을 닫게 되었지만 예술 영화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상당히 있으신거 같아서 작은 가능성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계절을 그린 영화는 겨울로 끝을 맺었지만 현실에서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 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중소 예술 영화관에 좀 더 관심 가져 보려구요.


긴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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