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철은 지영을 생각한다.
처음 본 순간 알았다. 언젠가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자석 주변에 쇳가루들이 잔뜩 붙어버리는 것처럼, 그녀에 대한 감정들이 금세 마음 안에 빽빽하게 가득 찼다.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서랍을 열어도 그녀가 보였고, 창문을 열어도 그녀가 보였다. 아무리 뒤져도 그 사람뿐이었다.
그녀는 무엇 때문인지 지뢰밭을 걷는 사람 같았다. 너무도 조심스러웠다.
가지지 못한 것에 목을 매는 어린아이처럼, 그녀가 내버려둘수록 나는 더욱 끓어올랐다. 나에게는 끓는점이 없었다. 멈추고 싶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남 후에는 후회와 원망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더욱 그녀의 곁에 있고 싶어질 뿐이었다.
그녀는 조그만 틈이 생길까봐 기를 쓰고 꽁꽁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그녀의 눈빛에서 느꼈다. 외로움을. 나는 그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언제나 그녀가 했던 말은 '…….'였다.
그녀는 자존심이 너무 강했고 겁도 많았다. 그것이 그녀의 불행이었다. 또한 우리의 불행이었다.
그러나 나의 서두르고 서툰 마음이 그녀를 괴롭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나니 유리조각이 박힌 박하사탕을 받아먹은 기분이었다. 그 박하사탕은 지독하게 달았다. 그 사탕은 온몸으로 녹아들어 때때로 여기저기를 쿡 쑤시기도 한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지금도 아주 가끔 보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지영은 희철을 생각한다
처음부터 그가 좋았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것이 있었다. 우리가 닮았다는 것을.
그는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 낡고 상투적인 말에 그가 싫증이 날까 겁이 났다. 우리는 이렇게나 닮았으니 말하지 않아도 분명 알거라고 기대했다.
그는 우리를 보지 않고 나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만을 보았다. 그가 조금만 기다려 주었으면 나비의 양 날개 하나씩이 되어 아마 평생 함께 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몇 번이고 그때로 돌아가 그의 뜻대로 그를 보아주고, 알아주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본다.
그를 오래 보고 싶었다. 그의 바람대로 했다면 그의 마음의 더운 기는 금세 식었을 것이다. 한 발자국 늦게 그를 본다면 한 발자국 더 함께 있을 수 있다. 그래, 결국 나의 욕심이었다. 내 욕심 때문에 괴로운 것도 나...
그를 오래 보고 싶었다. 그런 나의 생각과 행동 때문에 우리는 이별조차 하지 않아도 될 낯선 사람으로 남아버리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끝도 없다.
우리에게는 끝이 없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같잖은 욕심으로 사람을 잃어버린 나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