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똥똥 씨는 소리 내서 웃는 일이 거의 없었다.
소리를 낸다 하더라고 '쿠~', 아니면 '푸푸푸푸' 이런 정도였는데 근 한 달 동안 엄마랑 놀면서 나름 말이랍시고 혼자 뭐라 뭐라 쫑알쫑알 깐따삐아어와 중국어가 혼합된 말을 아주 열심히 하곤 한다.
그냥 혼잣말로 하면 모르겠는데 자주 내게 그렇게 말을 건네는데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 제대로 된 대답인지는 몰라도 상황에 맞춰 대답을 해준다. 그게 자기 마음에 들면 웃고, 아니면 고개를 훽 돌린 채 무언가를 하며 혼자 쫑알거리곤 한다.
그나마 요즘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츄, 치즈, 까까, 아빠곰, 꽥꽥, 멍멍 소리 정도이다. 물론 이 발음도 굉장히 괴상해서 잘 알아들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자기가 발음을 괴상하게 해놓고 엄마가 알아듣지 못하면 심통을 부리는 똥똥 씨는 참 이기적인 차시녀다.
자다가 눈을 마주치거나 아침에 일어나 눈을 마주치면 이쁘게 웃어주고 뽀뽀를 해주는 똥똥 씨가 참 고맙고 사랑스럽다.
요즘은 마른 쭈쭈 홀릭이라 밤에도 두세 시간, 낮에는 수시로 쭈쭈를 달라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똥똥 씨.
분리불안이 다시 시작된 재접근기에는 쭈쭈 집착도 심해지는 것인지... 아프다.
요즘은 장난을 칠 때나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다가 엄마가 다른 짓을 하면서 놀리면 아기는 그게 재미있는지 온 얼굴을 다 구겨가며, 얼굴에 볼우물도 몇 개씩 패여가며 소리내서 웃는다. 그게 참 이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워 몇 번이나 아기에게 맞춰 놀아주게 되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이젠 다시 어린이집을 다녀야 하는 똥똥 씨. 바뀐 환경에서 잘 적응하며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인데 처음에는 힘들어도 잘 적응해주리라 믿는다.
작년 아기 때 받았던 크리스마스 캐롤북에서도 징글벨을 좋아하더니 지금도 징글벨이 신나는가 보다.
엄마가 팔을 앞뒤로 흔들며 율동을 해주면 마치 응원단장이 된 듯한 팔 휘두르기 신공을 선보이며 신이 나서 엉덩이춤도 추고 마구 흔들다 넘어지곤 하는데 그래도 좋다고 방방 뛰려고 난리다. 자세는 방방 뛰는 자세인데 발바닥은 절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곰 세마리와 텔레비젼 동요에 맞춰 율동하는 것도 제법하고, 올챙이와 개구리송은 한 때 좀 따라하다 안 해서 다 까먹은 줄 알았더니 요즘에 다시 불러주면서 했더니 잘 따라한다. 특히 꼬물꼬물~ 헤엄치다~ 구절을 할 때 몸은 어찌라 이리저리 잘 꼬물거리는지 웃기고 귀엽다.
한동안 밥을 잘 먹더니 요즘 들어 다시 밥을 잘 안 먹고 있는 똥똥 씨. 탄수화물은 적정량만 먹으면 별 걱정이 없는데 단백질과 칼슘, 철분이 늘 문제다. 고기를 안 먹어서 참 애가 탄다. 소고기국에 소고기를 다 갈아버린 뒤 국물을 주면 조금 먹게 되고, 함박스테이크를 해주면 소스만 낼롬 먹고 고기는 뱉어버린다. 나쁜 가시나.
소아분노발작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똥똥 씨는 지난 달에 무척이나 심했다 지금은 다시 뒤로 살살 넘어지는 것으로 바뀌어서 다행이다. 길게 가지도 않고 1분 내외로 그치게 되니 참 다행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나아지고 교정되리라.
뒤로 넘어가려 하지 않았는데 미끄러지거나 잘못 짚어 넘어질 경우, 놀다가 뒤로 넘어질 경우 등등에는 무조건 달려가서 안아주고 달래주지만 자기가 일부러 뒤로 넘어갈 경우에는 무시하고 '일어나'라고 조용히 말한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린다.
전에는 바깥에서도 뒤로 넘어가더니 이제는 율동을 할 때처럼 몸을 들썩들썩 할 뿐 뒤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심할 경우 주저앉아 다리를 동동거리기는 하지만 요즘은 추워서 그런가, 아니면 바깥을 나갈 일이 많이 없어서 그런가 그마저도 거의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늘도 뒤로 넘어가나 싶은 순간에 주저앉아 발을 동동거리던 똥똥 씨가 어찌나 고맙던지.
문제가 있는 아기의 경우든 아니든 주양육자의 반응과 상태가 아이에게도 '감염' 혹은 '전염'이 되기 때문에 늘 주양육자가 일관성 있는 태도를 지녀야 하고, 일관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기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라 하는 것이리라. 아기들의 두뇌발달이나 사고가 우리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사고를 할 수 있다고 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본능적인 사고의 몫도 상당하리라 생각한다.
아기를 믿어주고 아기를 사랑하는 일. 그것을 아기가 느꼈을 때 단순히 주양육자가 자기가 하는 짓이 싫어서인지 아니면 자기를 걱정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나쁜 짓이라서인지 등등을 느낌적으로 사고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주양육자의 태도나 정서, 마음, 상태가 아기에게 전염 혹은 감염이 되기에 주양육자는 늘 아기를 사랑으로 대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주양육자 스스로가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 맞는 말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기와 늘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기가 거울처럼 보고 배우고, 습자지처럼 흡수하는 것은 주양육자의 그런 것들일 테니 말이다.
내가 행복해야지. 내가 즐거워야지. 그래야 아기랑 노는 것도 즐겁고, 내가 즐겁게 놀아주면 아기도 덩달아 즐겁고, 내가 행복하게 웃어야 아기도 엄마의 웃음을 닮을 테니까.
요즘 들어 더 확실한 변화는 전에는 아기와 손 잡고 걷는 게 꿈일 정도로 어디를 갈 때나 무엇을 할 때도 자기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아닌 이상은 손을 훽 뿌리치고 자기 가고픈 곳으로 가거나 하고픈 것을 하기만 하던 아기였다. 차시녀가 얼음공주 코스프레를 했었지. 흠.
근래 들어서는 엄마가 '똥똥아, 손' 하면서 어디를 나갈 때 손을 달라고 하면 엄마 손을 잡고 잘 걷는다는 사실이다. 감격스럽다. 이것이 분리불안의 긍정적 역할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제부터는 너무 집안에만 있으면서 대근육 운동을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기 손을 잡고 '우다다다'를 하곤 한다. 아기 손을 잡고 좁은 집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면 아기 키와 팔 길이에 맞춰 나는 벤치프레스 자세로 뛰어다니고, 아기는 짧은 다리로 내 보폭을 따라 뛰기 위해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곤 한다. 두세 바퀴 돌면 아기도 신이 나서 마구 웃으면서 뛰다 주저앉고 나도 허벅지에 쥐가 날 것만 같아 잠시 쉬었다 또 뒤곤 한다. 정말이지 한 달 전만 해도 계단을 내려올 때만 손을 잡아달라던 아기였는데 정말 이쁘고 이쁘다.
아직 초콜렛이나 사탕을 주지는 않고 영양제 츄만 준다고 핮는데 사실 그 영양제 츄나 사탕이나 당분 농도는 별 다를 게 없다. 차라리 치즈를 몇 장 더 주는 게 훨씬 낫다. 치즈가 훨씬 비싸더라도 영양적 측면에서나 장기적 식습관에서나 훨씬 긍정적이기에 기능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치즈가 더 싸다고 보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식습관은 한 번 길들이면 쉽게 바뀌지 않고, 바뀌기 전에 이미 여러 번 치레를 하거나 아픈 곳이 생겨 그 이상의 돈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게 빤하기 때문이다.
채소는 잘 먹고, 익은 무도 참 잘 먹는 똥똥 씨에게 내일은 호박볶음을 해줘야겠다. 오랫만에 멸치볶음도 해주고 말이다.
호두를 줘도 딱딱하고 속껍질의 쓴맛 때문에 잘 씹지 못하고 뱉어내던 똥똥 씨여서 절구에 호두를 다진 뒤 물엿과 꿀을 섞은 뒤 냉동실에 넣고 나름 호두강정이라 하고 하루 한 알씩 줬더니 처음에는 먹다가 뱉고, 삼일쯤 지나자 하나씩 다 먹고, 그 뒤부터는 더 달라고 하던 똥똥 씨가 이제는 일반적인 깐 호두도 달라 해서 잘 먹고 있다.
처음에는 살짝 달달하게 아기의 입안에서 적응할 시간을 주면서 서서히 당분을 줄여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듯하다. 아직 딱딱하고 쓴 것과 매운 것은 먹지 못하고 싫어 하는 아기에게 서서히 적응할 시간을 주면서 식습관도 자리잡을 수 있게 해줘야겠다.
오늘은 어묵탕을 해먹으면서 어묵국물을 빌비로 매운 떡볶이도 했는데 자꾸 옆에서 '아~' '아~'하다 막상 주면 도망가는 똥똥 씨 입에 일부러 빨갛게 보이지 않는 파를 줬더니 웃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우는 것도 아닌 찌그러진 얼굴로 '아아아~아포~~~'하면서 입으로만 울던 똥똥 씨도 참 웃겼다.
몇 번 매운 맛을 경험한 터라 붉은 색이 돌면 일단 거부한다. 고기는 익히면 갈색인데... 갈색이 웜 계열이고 붉은 계통이라 싫어 하니? 혹시 그런 것이니?
생래 첫 첫눈을 맞이하던 날의 똥똥 씨는 무서워서 피하고 안기려 하기보다 신기하게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만져봤고, 기저귀를 차지 않고 옷도 안 입으려 하다가도 자기가 추우면 와서 안기거나 자기가 싼 응가 기저귀를 보여주면 '히이~익' 소리를 내며 응가에 골몰에 있는 사이게 기저귀와 옷도 잘 갈아 입고, 안 된다고 하면 잠시 떼를 쓰고 마른 울음을 하다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놀고, 먹이는 데에 급급하다 내가 화가 나거나 내가 지쳐 이대로면 아기에게 화를 낼 게 빤해 일정 시간이 지나거나 더 이상 먹지 않고 놀고 어지럽히기만 하는 시간이 일정 정도 지나면 치워버리기를 시전하니 처음에는 미칠 듯이 성을 내다 이제는 제법 그 간격이 줄어들고, 엄마가 개수대나 조리대 앞에서 무언가를 하면 그게 궁금해 에듀박스를 발판 삼아 이리저리 들고 움직이며 간섭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기어코 해보고, 해봐라 해서 놔두면 몇 번이나 지치지도 않는 에너자이저가 되어 하면 짜증이 폭풍처럼 밀려올 것을 감지해 멀찌감치 떨어트려 놓으면 바둥거리다 안 되면 울기 시전하고, 울기 시전하면 엄마는 자리를 옮겨 '우와, 이게 뭔가' 이런 말을 하며 쓰레기 봉투를 치우면 아기는 울음은 뚝 그치고 쫒아오고, 아기가 할 수 있게 기저귀 뭉치 하나 남겨 놨다 '여기 넣어보세요'하면 신 나서 툭 던져놓고, 전자파가 안 좋은 전자렌지에 음식을 데울 때-전자파가 안 좋은 것이지 음식의 영양소를 제일 잘 살리는 것은 전자렌지, 마이크로웨이브파라고 한다(음식 재료들은 이미 죽어 있거나 죽을 것이니 해가 영양적 측면에서는 해가 없지만 살아 있는 생물에게는 전도율이라던가 뭐가 된다든가 여튼 무언가가 왜곡된다는 말인가?- 근처에 잠시 갔다 '앗, 뜨거, 뜨거~!!'하면 아기는 그게 진짜인지 궁금해 전자렌지 근처로 가려고 하는데, 그럴 때는 막기보다 '아, 뜨거워, 뜨거, 아뜨, 아뜨'하면서 아기 손을 전자렌지 쪽으로 잡아끌면 자기가 알아서 뒤로 빼면서 안기고 그러는데 왜 엄마 쭈쭈를 찾을 때는 엄마 머리를 잡아당기니, 그러면 엄마 머리가 뒤로 젖혀지는 것을 알아서 그러니? 엄마 머리가 뒤로 젖혀지면 네 눈과 마주치고, 네 눈과 마주쳤는데 네가 울어버리면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쭈쭈를 줘야 한다는 것을 알아 더 그러니?
흥, 이젠 엄마도 그냥 있지는 않을 거야.
엄마 머리를 잡아당기면 네 머리를 잡아당길 거야.
엄마를 꼬집으면 네 손을 꼬집을 거야.
엄마를 힘들게 하면 너를 힘들게 할 거야.
라곤 차마 못하고
네가 엄마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면 엄만 이불 뒤집어 쓸 거야.
네가 많이 우는 것도 알지만 적어도 75% 정도는 떼를 쓰기 위한 울음인 것도 알거든.
그게 무슨 말이냐면 정작 눈물은 안 나는데 네가 하고픈 대로 하기 위한 수단이란느 것이지.
어느 정도는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의 차이를 알아야 하는데 그 차이를 포기라고 하면 포기가 될 테고, 이해라고 하면 이해가 될 것인데 단어가 달리 있는 이유는 그저 말 바꾸기만은 아니듯이 네가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엄마가 얘기를 더 많이 하도록 할게.
엄마도 사람이고 엄마도 아프고 엄마도 화가 나고 엄마도 힘들 때가 있고 엄마도 마음대로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엄마가 그렇게 하면~ 블라블라~ 하면 너도 사람인지라 떼를 멈추고 짐짓 위하는 척도 하긴 하지. 물론 그런 말도 소용없이 네가 울 때는 엄마가 네 요구를 들어줘야지. 왜냐고? 짐짓 알아듣고 나름 자기 욕구도 자제하면서까지-물론 최종적으로는 자기 목적을 위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짐짓 위하는 척을 했던 네가 어떤 말과 행동, 행위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면 당연히 너를 돌봐줘야 해. 엄마도 엄마 나이가 돼서도 가끔 이유없이 눈물이 터져 나올 때가 있는데, 게다가 그걸 해명조차 할 수 없을 때도 있는데 그런 것도 모르는 네가 얼마나 서럽고 원하고 간절하면 그렇겠니.
언젠가 친구와 했던 얘기 중에 제일 기억에 남고, 서로 합일이 돼서 좋았던 것은 감정은 하위 개념이고, 이성은 중위 개념이며, 감성은 최상의 개념이다,라고 했던 것인데-물론 남들은 반박할 여지가 많은 것을 알지만 지금은 엄마의 느낌과 생각을 얘기하는 것이니까 지금은 네가 들을 차례야- 감정은 본능적인 것이고, 이성은 본능적인 것에서 더 잘 살아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감성은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면서 더 고차원적 범주를 생각하는 영역이다'라고 했던 것이야. 참 웃기지?
때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웃기는 것들이 필요할 때도 있고, 웃겼던 것들이 슬퍼질 때도 있기도 하고 그래.
다만 너는 아직 그런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겠지만 승수로 얘기하자면 1승수에서 2승수로 넘어가는 네게 6승수를 얘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엄마는 생각해...
9승수까지 가면 글쎄, 과연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그래도 행복하게-행복의 정의는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인가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을 만큼 행복을 누리기 위해 가끔 힘들고 오래 잔잔하고 가끔 큰 웃음 가지면서 살자. 엄마가 노력할게.
고마워. 네가 너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