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이 '주사 투혼'에 난색 보이자 '보복성 2군 인권침해 규정' 신설
권혁, 수술 원하자 김 감독의 일성 “자비로 하라!”
김 감독의 “기사 보지 못했다.” 이면엔 정보 제공자 색출 지시
구단 내부 증언 "한화 선수들 밖에서 '뭔가'를 맞고 올 수 밖에 없었다."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이 다수의 소속팀 부상 선수들에 재활이나 수술 대신 주사를 맞고 계속 뛸 것을 강요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감독의 일방적 지시를 따르지 않는 선수에겐 각종 보복성 규제가 가해졌음도 드러났다. 한술 더 떠 혹사를 거듭하다 팔꿈치 부상을 당한 권혁에게 보복성 ‘자비수술’을 지시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김 감독이 '한화 선수단에 각종 위계에 의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다'는 항간의 소문이 모두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이뿐이 아니다.
선수 인권침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9월 말부터 충남 서산 2군 훈련장에선 불법 CCTV 감시가 시행됐고, 선수들에게 월 1회 외박만 허용하는 등 '군대보다 더한 사생활 규제'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여기다 계약서에도 없는 각종 벌금 규정으로 선수들을 압박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일련의 '비상식적 억압과 규제'는 김 감독 주도 아래 한화가 극도로 폐쇄적인 보안, 감시체계를 만들어 정보를 통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쳇말로 '공안정국'이 따로 없었다. 보복이 두려워 침묵했던 구단 관계자, 선수들은 이제 한계를 느낀 듯 하나둘 진실을 털어놓고 있다.
엠스플뉴스의 10월 31일자 <[탐사보도] 김성근, 한화 2군 '인권침해' 지시했나>를 통해 2군 선수단에 불법적인 인권침해가 자행됐음이 밝혀지며 야구계는 "어떻게 프로야구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군 선수단 내규 수정, 권혁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증언 나와
한화 2군 인권침해 규정 신설이, 김 감독이 일부 선수들을 괴롭히기 위한 보복성 조치였다는 의견에 대부분의 한화 구성원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화의 한 관계자는 “당연히 그렇게 느낄 만 하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대부분의 선수를 그런 식으로 대한다. 다 알지 않나. ‘시키는 대로 해라, 그렇지 않으면 1군에서 뛸 생각하지 마라.’ 이런 강요가 일상이 된 상태”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도 “서산 동료들에게 9월 말 들어 갑자기 숙소 생활이 ‘힘들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 오면 집에 갈 생각하면 안 된다. 모든 게 감시'라며 ‘다시는 2군에 내려오지 마라'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다른 한 선수도 취재과정에서 “프로야구 선수가 어떤 처지인지 알면 많은 분이 깜짝 놀라실 거다. 가끔 '내가 정말 프로선수가 많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며 "차라리 군 생활이 천국이란 생각이 들 정도"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화 핵심 관계자도 엠스플뉴스의 확인 요청에 “2군 공지사항은 김성근 감독의 요구로 작성된 게 맞다”며 “‘주 1회 외박’이었던 2군 선수단 내규가 ‘월 1회’로 바뀐 건 ‘무통 주사를 맞고 1군에서 계속 던지길 바랐던’ 김성근 감독의 지시를 권혁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한마디로 ‘보복성 조치’였다는 것이다.
김성근 감독 “무통주사 맞고 1군에서 던져라.”
한화 불펜투수 권혁은 2015시즌을 앞두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더 많은 등판 기회’를 원했던 권혁은 그의 바람대로 두 시즌 연속 많은 경기에 등판했다. 하지만, 그가 원한 건 상식선에서의 더 많은 등판이었지 혹사가 아니었다.
실제로 2015년 개막전부터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2016년 8월 23일까지 권혁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144경기에 등판, 리그 불펜 투수 가운데 최다인 207.1이닝을 던졌다. 이 기간 권혁의 투구이닝은 리그 선발투수까지 모두 포함해 전체 21위에 이름을 올릴 만큼 많았다. 결국 8월 들어 권혁은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고, 8월 24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당시 엠스플뉴스는 권혁이 선수들에게 “올 시즌 더는 던지기 힘들 것 같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권혁의 수술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한화 내부 관계자는 “권혁이 수술을 결심하고, 구단에 자신의 결심을 알린 게 9월 초였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수술 날짜가 잡히지 않았다. 되레 차일피일 미뤄졌다”며 “수술을 앞둔 권혁을 상대로 ‘큰 부상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만 계속 나와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큰 부상이 아니다’라는 구단과 감독의 긍정적 전망과 달리 권혁은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문제는 권혁의 수술 날짜였다. 권혁은 10월 20일 서울 네온정형외과에서 왼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을 받았다. 재활 기간은 4개월가량. 그렇다면 어째서 권혁은 수술을 결심한 9월 초보다 거의 두 달 늦은 10월 말에 수술대에 오른 것일까.
그즈음 한화 구단 안팎에선 “김성근 감독이 권혁이 계속 1군에서 뛰길 바란다”는 소리가 들렸다. “1군 복귀 대신 수술을 택한 권혁에게 불만이 많다”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실제로 ‘엠스플뉴스’의 취재 결과 김 감독은 권혁에게 무통주사(대포주사)를 맞으면서 1군에서 던질 것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혁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왜냐? 이미 수술을 결심할 만큼 팔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다 팔꿈치 수술 전력이 있는 권혁으로선 ‘주사 투혼’을 거듭했다간 자칫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여전히 권혁이 2군에서 몸을 추스른 뒤 다시 1군에 올라와 던지기를 원했다. 그때마다 권혁은 "주사까지 맞으면서 던질 몸이 아니다"라고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내부 관계자는 "‘주사 투혼’을 요구한 감독과 이미 ‘혹사 투혼’을 경험했던 선수 사이에 계속 이견이 생기면서 수술도 차일피일 미뤄졌던 것"이라며 "만약 권혁이 수술을 결심한 9월 초 수술이 진행됐다면 권혁은 두달 정도 빨리 재활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 관계자는 "선수는 구단의 자산이다. 선수의 수술 역시 선수 의사와 구단의 판단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그러나 한화에선 이 모든 결정을 언제부터인가 감독이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 택한 권혁에게 돌아온 김 감독의 지시 “자비로 수술하라.”
수술이 결정됐지만, 난항은 계속 됐다. 이번엔 '자비 수술'이 권혁의 발목을 잡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화 관계자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권혁이 ‘한국에서 수술을 하고 싶다’는 뜻을 감독님께 전달했다. ‘팔꿈치 뼛조각 수술은 그전에도 경험해봤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재활하는 것보단 국내에서 수술과 재활을 함께하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감독님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한화 선수들이 매번 가는 일본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을 하길 바라셨던 거 같다. 결국 이게 문제가 됐는지 감독께서 구단에 ‘권혁 수술을 자비로 진행할 것’을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시즌 중 부상을 당한 경우 구단에서 수술비를 전액 지원한다. 이는 계약서에 명기된 당연한 조치다. 팀을 위해 뛰다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권혁은 2년 간 한화 투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등판을 하면서 팀을 위해 헌신했던 투수였다. 그런 권혁에게 ‘자비로 수술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건 이해하기 힘든 처사였다.
김 감독이 구단에 ‘권혁 자비 수술’을 지시하자, 구단은 잠시 망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내부 관계자는 “감독의 지시를 듣고 내부에서 반대가 많았다. ‘말이 되느냐’며 발끈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이에 반대하지 못했다. 감독이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며 “감독이 선수 수술비까지 간섭하는 게 지금 한화의 현실이다. ‘전권’이란 미명 아래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자비 수술’을 감독이 지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지시를 따르는 게 과연 프로구단의 역할인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수술할 거면 본인 부담으로 하라’는 김 감독의 지시는 권혁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화 관계자는 “권혁도 이 지시를 들었다. ‘진짜냐’고 물으며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감독 지시가 변함없자 권혁 스스로 ‘자비 수술’을 결심한 눈치였다”고 회상했다.
‘권혁 자비 수술’은 한화 몇몇 사람만이 알고 있었으나, 조금씩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단 내부에서 다른 움직임이 포착됐다. 한화 관계자는 “이 사실이 알려질 경우 구단 이미지에 치명타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애초부터 구단 내부에서 김 감독 지시에 반대한 사람이 많았기에 감독이 요구한 ‘권혁 자비 수술’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았다. 그때마다 감독이 펄펄 뛰긴 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결국 권혁 수술비를 구단이 부담하기로 하면서 사태를 일단락지었다.”
한화는 권혁에게 “감독님이 화가 나서 그러신 거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마라. 마음에 두지마라”는 말로 권혁을 진정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권혁의 수술은 구단의 지원 아래 이뤄졌다. 하지만, 한화 선수 일부는 여전히 권혁 수술이 자비로 진행됐다고 알고 있다. 한화의 한 선수는 “(권)혁이 형이 자비로 수술했다고 들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전쟁터에서 싸우다 다친 병사도 자비 수술을 하느냐’는 푸념이 나왔다”며 “팀을 위해 공헌한 대가가 ‘자비 수술’이라면 어느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죽을 힘을 다해 뛰겠느냐”고 반문했다.
엑소더스 수준의 공황상태, 불안에 떠는 선수단
충남 서산의 한화 2군 훈련장. 선수들은 이곳을 흔히 '북한'과 비교한다
선수는 귀중한 구단의 자산이다. 가뜩이나 선수층이 얇은 KBO리그에선 ‘얼마나 선수 관리를 잘하느냐’에 따라 한해 성적이 좌우된다. 하지만, 한화는 최근 2년간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역행했다. 2년간 부상자들이 속출했고, 관리는 요원했다.
더 안타까운 건 다수의 수술자도 수술자지만, 적정한 수술 시기를 놓쳐버리거나 재활 중인 선수들이 실전에 투입되며 ‘부상-재활-실전-부상-재활’이 반복됐다는 점이다. “김 감독이 선수의 수술을 막고 계속 출전시킨다”는 소문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일이 아니었다.
엠스플뉴스 탐사보도 취재 과정 중 많은 선수가 보복을 두려워했다. 2군 취재 중엔 ‘이곳이 과연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인가’ 의심될 만큼 많은 이가 이른바 ‘감독 사람들’을 피해 다녔고, 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곳에 가서야 진실을 이야기했다. 부상으로 2군에 있던 한 젊은 선수는 공황장애 증세를 보이기까지 했다.
일전 김 감독은 엠스플뉴스의 김민우 부상 보도와 관련해 “기사를 읽지 않았다. 도대체 혹사의 기준이 뭔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표면적으론 ‘기사를 본 적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미 구단 관계자들을 불러모아 “정보제공자를 반드시 색출하라. 가만두지 않겠다”며 사찰 수준의 색출 작업을 지시한 터였다.
+취재 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엠스플뉴스의 10월 31일자 기사 <[탐사보도] 김성근, 한화 2군 '인권침해' 지시했나>가 나간 뒤 협회 차원에서 선수들의 인권침해 사례가 더 있는지 조사에 들어갔다. 정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도 조만간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엠스플뉴스의 10월 31일자 기사 <[탐사보도] 김성근, 한화 2군 '인권침해' 지시했나>가 나간 뒤 협회 차원에서 선수들의 인권침해 사례가 더 있는지 조사에 들어갔다. 정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도 조만간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엠스플뉴스의 탐사보도 3편 '한화의 불편한 진실, 이병훈이 옳았다'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