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로 시체를 운반했다'고 기록한 군 비밀문건이 나왔다.
5·18 때 희생된 행방불명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정확한 경위를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8일 육군본부가 1981년 6월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이라는 3급 비밀 문건을 보면, 해당 문건엔 5·18 때 공군 수송기 운항 현황(구간·수송 품목 등)이 적혀 있다.
1980년 5월25일 공군 수송기는 광주~서울(11구 환자 후송), 김해~광주(의약품·수리부속), 서울~광주(특수장비·통조림)를 오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 중 '김해~광주'를 운항한 수송기 기록 옆 비고란에 '시체(屍體)'라고 쓰여 있다.
5·18 당시 공군이 작성한 '5·18 광주소요사태 상황전파자료'엔 공군 C-123수송기는 당일 김해를 출발해 광주비행장에 왔다가 다시 김해로 돌아갔다.
공군 수송기가 김해에서 의약품·수리부속을 싣고 광주에 내린 뒤 시신을 김해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공군 수송기가 수송한 시신은 군 사망자가 아닐 가능성이 나온다. 광주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3·7·11공수, 20사단이었다.
당시 주둔지는 3공수와 20사단은 수도권, 7공수는 전북, 11공수는 강원도 화천이었다. 숨진 군인을 김해로 옮길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군은 또 임무 중 사망한 군인을 '시신' '시체' 등으로 적지 않고 죽은 사람을 높여 부르는 '영현(英顯)'으로 표기한다.
5·18 당시 계엄군 간 오인 사격 등으로 숨진 군인 23명은 모두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5월25일, 5월28일) 성남비행장으로 옮겨졌다.
군 당국이 시신 운반 사실을 감추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공군이 작성한 '5·18 상황전파자료'의 1980년 5월25일 수송기 운항 기록은 육군본부 '소요진압과 그 교훈' 문건 내용과 같다. 하지만, 운송 품목을 누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군본부도 1982년 2월 편찬한 계엄사 문건에서 1980년 5월25일 '김해~광주' 구간 운항 기록을 지운 것으로 드러났다.
8개월 전 '소요진압과 그 교훈'에 '시체'라는 기록을 남겨놓고 계엄사 문건엔 이를 삭제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송선태 5·18 기념재단 전 상임이사(지난해 국방부 특조위 조사관)는 "사망한 이를 광주 이외 지역으로 옮겼다는 기록으로 미뤄 민간인 사상자를 공군 수송기로 옮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관련 수송기를 몰았던 조종·무장사 등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군이 5·18 당시 대형 포대(마대) 사용처를 밝힌 적이 없는 만큼, 이를 사용한 경위도 함께 조사해야 한다. 공군의 5공에 대한 충성도를 볼 수 있던 검찰 조서와 계엄회의록, 보안·검열을 이유로 파기됐던 공군 비행 기록 등을 고려했을 때 공군 측의 성실한 조사와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1980년 5월25일 광주비행장에는 진압에 앞장섰던 공수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5·18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은 현재까지 76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