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LA에서 7,8년을 직장생활 하면서 결혼하고 자식 낳고 평범하게 그럭저럭 살다가 어느날 문득, 이민까지 왔는데 여기에서는 좀 더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배 부른 생각(?)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사장부터 시작해서 대부분 한국사람들 이었고 제가 대하는 외국사람이라고 해 봤자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고 스페인어만 하는 남미에서 온 사람들이 다 였지요.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에서도 거의 한국말만 쓰고 간혹 줏어들은 엉터리 스페니쉬나 주절대다 집에 오면 가족끼리 한국말 쓰면서 한국 드라마 보고, 한국 마켓에 가서 장 보고, 어쩌다 외식하면 한국 식당에 가고,
여기는, 우리끼리 흔히 얘기 하는대로 서울특별시 나성구 였습니다.
아들 J가 4살 되던 해, 이 즈음 자꾸 이렇게 사는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먼저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여보, 우리 진짜 미국생활 한 번 해 볼까? 우리 J, 이제 곧 킨더가든(초등학교 1학년 이전의 1년 과정)에 들어 갈텐데 여기에서 보내기 싫어."
아내는 J가 초등학교 시절 만큼은 어떤 미국 전원 드라마에서 본 아이들 처럼 자유분방하게 보냈으면 했거든요. 저 또한 꼭 J의 교육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 곳을 떠나 뭔가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직장 생활만 계속 한다고 생각하니, 후에 말년의 생활이 비디오 처럼 훤이 보였거든요.
우리는 나이들어 갈수록 점점 더 이런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거란 생각에 바로 행동에 옮기기로 하고 즉시 그동안 모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사업체와 지역에 대해 정보를 모으기 시작 했습니다.
어느날, 아내가 한국신문에 나온 한 스몰비지니스 매매 광고를 제게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모로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었지만 어떤 곳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한번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방문 결과, 인구 2만명의 아주 작은 시골로 거의 백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동양인 이라고는 작은 병원에 근무하는 괴짜(?) 필리핀 의사 한명과 미국의 아무리 작은 도시에 가도 꼭 하나씩은 있는 중국식당의 주인, 그리고 미국사람과 결혼한 한국 아주머니, 딱 세명이 전부 였습니다. 필리핀 의사도 혼자 살고 있었고 중국식당 주인도 가족은 LA에 살고 있고 혼자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지요. 광고에 나온 가게는 그 한국 아주머니가 종업원 몇명과 같이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동네나 가게 분위기나 다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여러번 통화하고 나서 심호흡 크게 한 번하고 계약서에 싸인을 했습니다.
드디어 LA를 떠나는 날, 유홀 이삿짐트럭을 빌려서 최대한 줄일대로 줄인 살림살이들을 싣고 그 뒤에 차를 매달고 3일에 걸쳐 총 20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하는 여행을 떠났습니다.
마지막 3일째, 한 300마일을 남겨놓고는 인가 하나 없는 들판과 작은 계곡을 하염없이 운전하고 가는데 갑자기 옆에서 아내가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알지요. 그 마음을...
아내는 한국에서 LA로 올때는 가족들과 함께 왔지만 지금은 부모와 형제 다 LA에 두고 다시 이민가는 기분으로 떠나왔거든요. 거기다가 가도가도 끝이 없는 이국 땅의 허허벌판에 시골도 그냥 웬 만한 시골이 아니었으니... 저도 제가 과연 잘 한 결정인지 종 잡을수 없는 마음 이었습니다. 처음 저 혼자 방문 할 때는 항공편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느끼지 못했던 불안 초조 그리고 뭔가 모를 쓸쓸한 감정이, 황량한 벌판을 운전하며 가는 내내 제 가슴속을 서늘하게 휘저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목적지, 일단 동네에 도착하니 아내도 좀 안정이 되는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한국 아주머니가 얻어 놓은 집에 대충 짐을 풀었습니다. 앞 마당과 뒷 마당이 옆 집들과 이어져있는 미국의 전형적인 방 3개 짜리 단독 주택이었는데, 월세가 LA에서 살던 방 하나짜리 아파트의 반 밖에 되지 않아 아내는 신기해 했습니다.
다음날, 아내와 나는 우리를 보고 정겹게 말을 걸어오는 이웃들에게서 안도감 같은것을 느끼며 볼 것도 없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J를 맡길 프리스쿨(유치원)을 정했지요. 그리고 마켓에 들려서 간단한 식료품들을 산 후에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며 앞으로의 이곳 생활에 기대 반 걱정 반, 아니 사실은 기대1 걱정9 이겠지요? 그러면서 하루를 쉬었습니다.
드디어 가게를 인수하고 첫 날, J를, 낸시라고 하는 조그만 프리스쿨의 원장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가게로 가서,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첫 날을 보내고 가게 문을 닫자마자 아내와 함께 J를 데리러 갔습니다. J를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가면서 아내가 J에게 물었지요. "새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았어?"
J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 거기 안 갈거야. 애들이 말을 하나도 못 해~."
"뭐?" 하지만 우리는 금방 알아차리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J에게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거든요.
우리 가족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 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쓰고 올릴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관심 밖의 쓸데없는 얘기가 아닐까 하고요. 여러분들이 관심있게 읽으신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이어서 우리 가족이 그 시골에서 6년동안 살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을 시간이 나는데로 올리겠습니다.
이웃 노부부의 저녁 초대에 갔다가 그 분들의 깜짝 정성에 감동받은 이야기
몸도 약하고 운동에 소질도 없는 J가 동네 리틀리그 농구게임 도중에 모든 부모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이야기 (잘 해서 받은게 절대 아님)
아들 J를 슬슬 귀찮게하는 같은 반의 약간 건들거리는 클린트라는 녀석을 어떻게 요리할까 하고 집에 초대했는데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로 인해 J의 절친이 되어 버린 이야기
너무 외로워서, 별로 믿음도 없지만 그곳에서 차로 1시간 반이상 떨어진 작은 마을에 한국 교회가 있다기에 갔다가 그만 깜짝 놀라 버린 이야기
친구네 집에서 여러 친구들과 슬립오버 하겠다고 간 J를 새벽1시에 그집 부모의 전화를 받고 1시간동안 차를 몰고 들판을 달려가 데려온 이야기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