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레즈비언이고
나도, 같이있던 후배도 레즈비언인데
퀴어 퍼레이드가 끝나고 애프터파티에 갔다가
레즈비언 클럽에서 나와서 국밥 먹으러 갔을 때 네가 한 말이야.
후배가 길었던 머리를 짧게 싹둑 자르고 나온 오늘
후배를 보며 머리 왜 그렇게 잘랐냐고 빨리 기르라고 하며
레즈비언인거 티 나는 애들 너무 싫다고 그렇게 말했어 너는.
머리를 자르고 난 며칠 사이에 후배는 느낀점이 많았던 것 같더라.
레즈비언이건 아니건 사람들 사이에서 머리 길이 하나만으로 자기에 대한 시선이나 기대치가
달라졌다고 후배는 말했어.
그리고 너에게 그런 얘기 함부러 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너는 가만히 국밥을 퍼먹다가
"내 취향이 그렇다는건데, 그게 뭐 어때서 그래" 라고 말했어.
너는 머리 길이가 짧은 애들은 남자같아서 싫다고 했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는 건 눈 앞에서 후배가 증명해주고 있었지 않니.
나와 후배가 취향이 아닌것과 그냥 지나가는 사람 보고 싫다고 하는거랑은 다른 문제라고 했더니
너는 울음을 터뜨렸어.
너는 이쪽 세계와 평범한 세계, 이도 저도 아닌 곳 사이에서 너무 힘들다고.
그냥 너네 동생처럼, 엄마 아빠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이미 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힘들다고.
그런 소위 말하는 "티 나는" 애들을 보면 그런 "평범하지 않은" 너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더 싫다고.
너에게 평범한 삶이 뭐냐고 물으니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그러면 나와 후배는 이쪽과 저쪽 세계 어느쪽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었더니
"너희는 그냥 내 친구라 그런 것 없다"고 대답했지.
후배는 끝까지 화를 냈어.
다른사람들이 그런 편견을 가져서 언니가 그렇게 힘든거면서 언니도 그런 똑같은 짓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 아니냐고.
언니마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친구야. 나는 너를 비난할수도, 너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그런 편견과 틀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나도 알고 있기 때문에
평생 그렇게 살아온 "평범한 삶"의 틀이 좋아하는 사람 하나가 생기면서 다 틀어져버려서
네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두려워하는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해 했어.
하지만 친구야,
단지 너의 "친구"가 아니라는 이유로 너의 친구 이외의 많은 레즈비언들에게, 혹은 그냥 사람들에게
너의 편견의 잣대를 그대로 들이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내가 혹시나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머리가 짧았다면
우리가 9년동안 함께 웃고 울고 지냈을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사람의 작은 편견 때문에
레즈비언인 내가 변태나 정신병자로 바뀌어버릴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나는 굉장히 슬프고 마음이 아팠어.
친구야
술 때문에 쓰린 배 잡고 자고 일어났는데도 슬픈 마음이 가시질 않아 이런 글을 쓴다.
나는 그냥 너의 작은 편견들이 항상 사실은 아니라는 것
네가 아무런 여과 없이 뱉는 말들이 타인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타인이 네가 사랑하는 친구들, 혹은 너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