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는 그야말로 자식바보셨어요.
아버지가 쉬시는 주말이면 산으로,강으로,계곡으로
어디든 데리고 다니신 덕분에 집에서 지내본적이
거의 없었답니다.
87년도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저는
6학년이 될때까지 생일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호텔부페에 가서 단짝친구 한명과 선생님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하곤했습니다. 생일날 만큼은 최고의 날을 만들어주고 싶으시다던 아버지의 배려덕이었지요.
유모레스크가 흘러나오고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채
생일초를 후후불던 작은아이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습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었어요.
쓰레기봉투를 들고 쓰레기를 내러 가실때면
"아빠 따라 갈사람" 이렇게 외치셨어요
우리 삼남매는 서로 내가 간다며 경쟁이 붙기도했어요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는길엔 항상 천원짜리 한장을
몰래 손에 쥐어주셨거든요.
밖에서 놀고있는 삼남매를 찾아
저녁먹자~!! 부르는것도 아빠몫이었구요
아빠가 만들어주시던 핫케잌의 달콤한 향또한
아직까지 코끝에 맴도는듯 하네요.
그렇게 무수히 많은. .선물같은 추억을 남겨주시고
6학년이 되던해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새벽 6시.모두들 잠든 그 새벽.
어쩐일로 새삼스레 삼남매를 모두 깨우시고는
"아빠 일하러 갔다올께.우리 강아지들 사랑해"
이게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셨어요.
스킨냄새나는. . 금방 면도를 마친 파르란 그 얼굴에 내얼굴 부비며 뽀뽀라도 한번 해드릴껄. .
하는 후회가 아직도 남지만요. .
그 후 아버지의 모습은 단지 꿈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사를 할때면 꼭 그집으로 찾아 오셨어요.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육아세 지친채 잠들었는데 한동안 안보이시던 아버지가 저희집에 오셨어요. 작은방에서 큰 애를 목욕물 받아놓으시고 씻겨주고 계시더라구요. 그리고 애기아빠한테 양복한벌을 입혀주시고,넥타이를 손수 매주셨어요.
안방에서 온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었어요.
잠에서 깼는데 정말 금방 왔다가신것같은 온기가 느껴지더라구요. .따뜻하고 그리운 그 온기가요. .
꿈인지 알았지만. . 정말 그 꿈이 깨기가 싫었어요. .
꿈에서 깼을때 난 울고있었고. .설움에 북받쳐 엉엉 울었어요. .
아빠가 나 잘사나 보러오셨나보다.
우리 신랑,우리 애기보고싶으셔서 찾아오셨나보다.
생각하고 지내고 있던 중 큰아이가 폐렴에 걸립니다
10월생이었던 큰아이 40일무렵이었어요.
부랴부랴 소아과가 있는 종합병원으로 갔지요.
담당교수님께서 피검사 결과를 보시더니
이 아이는 지금 폐렴이 문제가 아니다.
갑상선호르몬 저하증으로 3년정도 약을 먹어야한다.
선천성검사에서 결과가 왜 안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신생아때는 간혹 수치가 안잡힐때도있다.
갑상선의 문제는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않아
증상이 보일때쯤 데리고오면 이미 치료시기를 놓쳐
뇌나 성장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갑상선쪽의 문제는 빨리 발견해서 약을쓰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는다.
폐렴에 걸려 병원에 온게 이 아이를 살린거다. .
이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아버지 꿈을 꾼 그 날.
아이 접종하는 날이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보건소로 가는 버스시간을 놓쳤고,한시간에 두대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아 꼬박 40분을 밖에서 기다렸고,
그때 찬바람 쐰게 감기에서 폐렴으로
진행이 된거였어요. .
저는 그때서야 아빠가 내꿈에 왜 나타났는지. .
우리 아이 진짜 돌봐주고 계시다는걸 믿고 지낸답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아이고 조상이 돌봤네~~
이런말씀 하시면 피식 웃고말았는데
정말. . 수호신이란게 존재할수도 있다는걸 느꼈어요.
우리에게 못 다 주신 사랑
손주들에게도 더 주시고픈 마음이었겠죠.
아빠 사랑합니다. 보고싶어요.
아버지 영원한 첫사랑이었던 복순씨랑
그곳에서는 헤어지지 마시고 영원히 사랑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