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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서 눈알 씻는 친구 이야기
게시물ID : humorstory_4421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꾸꾸다뜨
추천 : 2
조회수 : 106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1/17 17: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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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2010년 초반. 20세 초반일 때 방학이 되면 나는 절친한 친구 2명과 함께 자취를 했다.

 

성인 남자 3명이 자기에는 심하게 좁은 자취방에서 햄스터 새끼들 마냥 뒤엉켜서 지냈어야 했지만 친구끼리 한다는 것에 항상 재미있었다.

 

 

 

그 자갈돌만한 집의 주인은 셋 중에는 제일 깔끔한 축에 속해서 청소도 도맡아서 하고 밥도 하는 엄마 역할 이었다.

 

또 공부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도 병행하는 생활력 강한 아버지의 역할까지 하며 밥만 축내는 식객 2명을 이끌어 나갔다.

 

나는 깔끔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해야 사람이겠구나 하는 판단은 할 줄 알아서

 

친구가 청소를 하면 청소를 마지못해 도와주며 거들었다.

 

 

마지막으로 제일 게으른 친구 한 마리는 사람답게 살 의지가 전혀 없이 밥해주면 먹고 청소해주면 어지럽혔는데

 

우리가 기니피그를 키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당시 우리 셋은 밥 해먹는 일, 설거지 하는 일이 제일 귀찮았는데

 

집주인은 요리를 그럴 듯 하게 할 수 있어서 요리를 담당했었고

 

나는 밥 짓는일 그리고 기니피그는 설거지를 담당했다.

 

기니피그가 설거지를 담당한 이유는 요리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원을 떠나서

 

그놈의 몇 일에 한번 씻는 더러운 손으로 음식에 손을 대게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놈은 설거지 조차도 그릇에 거품을 대충 묻히고 물로 술술 헹궈내는

 

아주 단순한 작업으로 능률을 향상시켰고 아무리 많은 설거지라도 3분 만에 끝낸 후 조선협객전 이라는 10년도 더 된 고전온라인 게임을 하는데 온 정신을 쏟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항상 라면을 끓일 냄비를 꺼낼 때마다 화석이 되어있는 면발을 발굴하는데 시간을 써야 했고 그럴 때마다 놈에게 채찍질을 해야 했다.

 

 

 

 

이렇게 동물농장에서 근근히 연명하고 있던 중, 기니피그가 야외수영장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돈벌이를 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내던 곳과 그 수영장은 버스를 환승해서 1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렇게 멀리 있는 아르바이트를 그 게으른 녀석이 부지런히 하게 된 이유는 시급이었다.

 

편의점, PC방 등에서는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시급을 줬는데

 

그 곳은 최저시급에 딱 맞게 책정되어 있었다.

 

 

우리는 흥부보다 더 가난해서 라면을 끓이면 첫끼에는 면만 먹고 국물은 나두었다가 다음 끼니에 밥에 말아먹고,

 

술이 먹고 싶으면 1인당 소주1병과 막대사탕 1개를 사서

 

소주한잔 마시고 막대사탕 한바퀴만 돌려 빨아먹으면서 몇 일 동안 안주를 했다.

 

사탕을 두바퀴 돌리면 천하의 둘도 없는 쌍놈취급을 하며 온 정성을 다해 욕과 폭행을 일삼았는데

 

그런 우리의 노력에도 기니피그는 항상 사탕을 혼자 씹어먹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두 놈 모두 돈 벌러 밖으로 나가버리니 집에 혼자 있기도 심심하고 뭔가 위기감이 느껴져

 

나도 친구에게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고 수영장 아르바이트를 같이 다니게 되었다.

 

 

 

 

 

수영장 아르바이트로 주로 했던 일은

 

수영모자 안 쓴 사람 호루라기로 크게 불어서 지적한 다음 개 쪽 주기

 

다리도 안 닿는 깊은 물에서 놀고 싶다고 떼쓰는 아이들 회유해서 유아풀장에 집어넣기

 

영업 시작 및 종료 때 그간 물에 빠진 불순물 제거

 

수영장 물 교체 및 약품 뿌려서 수질관리하기 등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느낀 점은 수영장은 정말 더럽다는 것이다.

 

특히 야외수영장은 먼지며 낙엽 등 불순물이 물에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고

 

한국곤충백과사전에 나오는 모든 곤충들이 익사한 모습을 볼 수 있을 만큼 벌레들이 많이 빠져 죽는다.

 

한번은 수영장에 똥이 있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가보니 정말 주먹만한 똥들이 물 위며 아래며 둥둥 떠다녔다.

 

직원은 아무렇지 않게 똥을 수거하고 제보자에게 쉬쉬 한 후 다시 자기 할 일을 하였다.

 

 

 

 

 

이렇게 삼라만상이 담겨있는 수영장 물은 목욕탕 물 마냥 일시에 교체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새 물을 채워 헌 물을 쏟아 내고 그 위로는 소독 약품을 뿌려 그 수질을 유지한다.

 

종료시간이 되면 하는 일은 소독약품을 뿌리는 일이었고

 

굵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일찍 영업을 종료하게 된 그날도 어김없이 소독약품을 뿌려야 했다.

 

 

 

 

기니피그가 가위바위보로 다른 알바생들을 모두 이기고 우리 수영장에서 가장 좁은 풀장에 약품을 뿌리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 풀장은 사람 10여명정도 수용할 크기정도였기 때문에 가위바위보를 이기는 사람은 그 풀장에서 1분만에 약품을 뿌리고 쉴 수가 있었다.

 

그렇게 모두 자기 지역에 소독약을 치는데 기니피그가 꽥꽥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풀장에 약품을 쏟아 붓던 중 바람을 타고 약품이 눈에 한바가지 들어간 것이었다.

 

녀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으악 내눈!! 으악! 으악!”

 

하면서 시끄럽게 굴더니 자신이 약품을 쏟아 부었던 그 풀장에 들어가 눈을 씻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에 한껏 묻어있는 약품과 물에 아직 녹아지지 않은 약품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표류하는 선원이 갈증을 못 이겨 마시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바닷물을 마시고 죽어가는 모습처럼 한참 약품이 둥둥 떠다니는 물을 눈에 집어넣던 녀석이

 

이번엔 더 크게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아 시발!! 시발!!”

 

 

그 병맛 같은 모습에 모두가 한참을 웃었는데

 

혼자 웃지 못하고 있는 기니피그가 풀장에서 뛰쳐나와서는 세면대를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먼 거리인데도 엄청난 속도로 절반이상을 뛰어오더니 갑자기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한참 배를 잡고 웃다가 그래도 그 순간에는 갑자기 왜 저러지 하고 걱정이 되어 가까이 가봤는데

 

그 놈이 빗물로 만들어진 물웅덩이에 쭈구리고 앉아 찰박찰박 거리며 구정물로 눈을 씻고 있었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데굴데굴 구르고 엉엉 울면서 병신 같다며 많이 웃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때 왜 그렇게 친구의 아픔을 철없이 웃으면서 좋아했을까.

 

카메라로 찍었으면 지금도 계속 웃을 수 있었을텐데.. 하고 좀 더 성숙한 생각으로 후회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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