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비서실장 강제적 보고서 줄이기 업무지시
하루종일 대면보고, 두툼한 보고서는 관저에 들고 가 '고시생활'
문 대통령, 지나친 보고서 탐독 자제 권유에 "그래도 공부는 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꼭 대면보고 해야하나요?"에 대한 반성
靑 "꼭 고시공부하는 사람 같았다. 무서울 정도였다"
임종석 "내가 가장 잘한 일은 대통령 강제 병가 보낸 것"
노영민 실장은 대통령 업무스타일 직접 바꾸는 '실세 야전형' 분류
노영민 신임 비서실장이 첫 공개 업무지시로 '대통령 대면 보고 최소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또 대통령이 검토해야할 보고서 총량도 획기적으로 줄일 것을 비서실과 정책실 등에 지시했다. 과연 문 대통령의 평소 업무량이 얼마만큼이기에 노 비서실장이 직접 '보고서 줄이기'에 나섰을까?
◇ 비서관들 곁으로 내려온 문 대통령, 참모진들은 항상 '긴장'
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 본관에서 비서관과 행정관들이 근무하는 여민관 3층으로 옮겼다. 국가 재난상황은 물론 정치·사회·경제 현안에 대통령이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였고, 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취임 첫 해 기자들에게 "대통령이 업무를 보면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수시로 수석비서관이나 해당 부서 비서관을 호출해 이런저런 것들을 상세히 물어보는 등 대통령과 참모진들 사이의 간극이 크게 줄었다"고 말한 바 있다. 대신 여민관 1, 2층에서 대통령을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하는 참모진들은 언제 호출될 지 몰라 항시 긴장하며 업무를 봤다는 후문이다.
문 대통령이 참모진 공간으로 집무실을 옮긴 첫 번째 이유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평일에도 본관 집무실에조차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만 머물고, 비상사태 발생 시 참모진이 자전거를 타고 이를 전하러 관저로 이동하는 등 웃지못할 헤프닝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대통령과 참모진의 물리적 공간이 가까워진 게 단지 비상상황 초기대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취임 첫 해와 둘째 해를 거치면서 적폐청산과 권력기관 개혁, 소득주도성장 경제운용, 남북관계·북미관계 개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정부주도의 개헌논의, 고용문제 등 전방위적 사안에 대해 문 대통령은 해당 부서에 관련 보고서를 적극 요청했다.
이에 해당 부서는 문 대통령이 주요 내용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두툼한 보고서를 꾸준히 올렸고, 문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또 필요한 업무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수석보좌관 회의는 물론 아침 회의 때도 문 대통령은 해당 사안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 참모진들이 긴장했다"며 "특히 경제 관련 회의에서는 전임 경제수석이나 일자리수석도 쩔쩔맸다"고 귀띔했다.
◇ 집무실에서는 대면보고에 각종 회의, 관저에서는 '고시생활'
문 대통령이 굵직한 이슈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던 데는 참모진으로부터 올라오는 다량의 보고서를 집무실은 물론 관저에서도 밤늦게까지 읽었기에 가능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문 대통령 '공개일정'을 보면 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다녀온 직후인 지난달 11일에 비서실과 정책실, 안보실로부터 일일 현안보고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국무회의, 현안 관련 내각 보고, 비서실·정책실 업무현안보고를 하루종일 받았다.
평소 대통령 외부일정을 최대한 줄인 금요일인 지난 18일에도 문 대통령은 오전 9시11분부터 오후 4시를 넘겨서까지 하루종일 비서실과 안보실, 정책실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았다.
청와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업무비공개가 '세월호 초기대응' 실패를 불러일으켰다며 초반부터 대통령 공개 일정을 일주일 단위로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비서실, 정책실, 안보실로 표기하지만, 실제로 문 대통령은 정무·민정·시민사회·일자리·경제·사회수석실 등의 산하 비서관으로부터 일일이 현안 대면보고는 물론 보고서까지 넘겨받았다.
문 대통령이 최근 오전 티타임 회의에서 참모진들의 지나친 보고서 탐독 자제 권유에 "그래도 공부는 됩니다"라고 말한 것은 문 대통령 특유의 꼼꼼함을 반영한다는 게 청와대 내부의 분위기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노 실장의 '대통령 대면 보고 최소화' 지시에 대해 "아마도 공개적이고 강제적인 방법으로 보고서를 줄이기 위해 업무지시를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여민관 집무실에서 다 읽지 못한 보고서는 파일별로 분류해 관저로 가져갔다. TV뉴스를 시청하며 김정숙 여사와 저녁식사를 마치면, 관저에 있는 업무공간으로 들어가 낮에 다 읽지 못한 보고서를 꺼내 읽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꼭 고시공부하는 사람 같았다. 하나의 보고서를 다 읽고 나면 다시 파일을 덮어 가방에 넣고, 다른 보고서가 담긴 파일을 꺼내 읽었다"며 "무서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 노영민 '실세' 비서실장 실감, 임종석 前실장과 대조 눈길
지난달 27일 청와대를 방문해 문 대통령과 함께 오찬을 하던 문희상 국회의장이 "혼밥하슈?"라고 즉흥적인 질문을 던지고, 문 대통령이 "허허허" 웃었던 것은 문 대통령의 평소 업무 스타일을 방증한다.
참여정부 시절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손발을 맞췄던 문 의장은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국민들에게 혼자 밥먹는 것처럼 비춰져선 안 된다. 야당을 포함해 각계각층과 함께 같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노영민 실장이 비서실과 정책실 참모들과 상의하지 않은 채 곧바로 '대면보고·보고서 제출 최소화' 업무지침을 내린 것은 장관급인 비서실장 자신을 포함해 정책실장, 안보실장 등이 전결권을 행사해 문 대통령의 충분한 휴식과 외부 인사들과의 소통 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취지다.
"꼭 대면보고가 필요한가요?"라고 물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졌다면, "보고서가 공부가 된다"는 문 대통령의 경우는 자칫 '만기친람(萬機親覽)으로 외부에 비치는 것은 물론 혹여 국무위원과 여야 정치인 등 외부인들과의 불통(不通)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노 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대면보고와 보고서 읽기를 줄여야한다고 강하게 건의하고 수락을 받아낸 것은 노 실장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운지도 보여준다.
임종석 초대 비서실장이 인수위 없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초기 안착에 크게 기여했다면, 집권 중반기를 들어서는 현 시점에 대통령이 할 일과 '손을 좀 놔야할 일'을 명확히 구분해 이를 건의한 노 실장은 관리형 '비서실장'으로 분류된다.
임 전 실장이 퇴임 직후 "임기 중 내가 가장 잘 한 것은 독감에 걸린 문 대통령을 강제로 병가가도록 한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초대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 업무스타일 전반을 좌지우지 못했다면, 노 실장은 문 대통령의 업무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바꾸면서까지 참모직을 수행하는 '야전형'으로도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