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쓴 글인데 이렇게 긴글을 레포트 이후로 쓴적이 없어서 (일기빼고) 여기에다가도 저장하고 싶습니다. 시위 갔다온게 무슨 자랑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저같은 쫄보한테는 무지 자랑입니다. 저장만 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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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일-식사-일-잠' 반복하던 무료한 일상 중 우연히 (어쩌면 이 사회엔 필수적으로) 강렬한 11월 14일을 보냈다.
오유에서 얻은 짤방이 주는 용기로 말미암아 1114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하기로 한다.
어 맹뿌를 뽑은 것에 대한 속죄로 2011년부터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자주는 아니고 길고양이 밥주듯, 나 자체가 쫄보이기도 하거니와 솔찍히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그리 깊은 것도 아니기에... 물론 혹시 친구들이 물으면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대긴한다.
늦 잠도 잤고, 밥도 든든하게 먹었고, 마스크도 챙기고(이때까진 최루액맞을줄 몰랐다), 따뜻하게 옷을 여러겹 껴입었고....이젠 안 나설 이유가 없었다. 역시나 늦었다. 사전 대회는 이미 끝이 났고 행진에나 참여해볼겸, 시청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전 선이 저 멀리서 보였다. 민주노총 형님들이 쾌활한 몸짓으로 율동을 하고있다. 자의든 타의든 투쟁으로 가득한 생활이 그리 달달하진 않을텐데, 즐거워하는 얼굴표정에서 찰리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이 때 확성기 소리로 "저 앞에 우리 동지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분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대열을 이탈해주지 말아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삼 '동지'라는 단어가 귀에 거슬려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단어 하나에도 색안경을 가지고 반응하는 신경과 귀가 야속했다. 국정화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면 더 야속한 신체가 늘어나리라.
물대포가 보였다. 가슴이 철렁한다. 함께한 친구가 아니었다면 더이상의 발걸음은 고사한채, 돌아가지도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채 우둑커니 서있었겠다. 바람에 고춧기름 냄새가 나려온다.
조 금 더 앞으로 오긴했다. 200m 남짓이었지만 1시간 걸렸다. 날도 져간다. 물대포 사정거리는 아직 멀었다. 바람에 매퀘한 수증기가 날린다. 자동차매연의 100배, 엽기떡볶이 1000배되는 수증기다. 숨을 쉬기가 힘들어 연신 기침을 해댔다. 물대포를 정면에 마주하였다가 이내 뒤돌아서기를 반복한다. 물을 정면으로 맞는 사람들도 보이지만, 난 쫄보라 일단 여기서 상황을 보기로 한다.
대 열을 따라 (라고 쓰고 물대포를 피해라고 읽는다) 청계광장 쪽으로 돌았다. 이젠 의경이 보인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보았다. 나만한 쫄보, 격분한 노인, 딸아이 손을 꼭 잡은 아주머니, 뻔대기같은 주전부리를 파는 상인, 교복 입은 고등학생,전동휠체어에 몸을 기댄 장애인, 스포츠웨어와 비옷에 마스크까지한 선봉대, 정장을 입은 청년이 있었다. 물대포를 보며 의미있음직한 쓴웃음을 함께 짓는 노부부가 있는가 하면 , 물대포를 등지며 자기 감정에 충실한 인상을 띄고 잰걸음을 더 재촉하는 젊은 커플도 있었다. 시위대의 불편한 방문을 꺼려하며 홀에 있던 의자들로 자신만의 펑커를 쌓은 음식점이 있는가 하면, 자기 눈이 매운데도 공짜로 화장실쓰는 것이 겸연쩍어 눈 못 마주치는 시민을 못 본척 컵 닦는 것에 몰두하는 알바를 둔 커피집도 있었다. 의경 쪽으로 물병을 집어 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병을 건내주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엔 콘크리트 노년층도, 북괴의 지령을 받은 고정간첩도,정치꾼도, 시위꾼도, 물론 독재자도 없다. 프레임 가득한 단어로 조성된 집단은 없었다. 단지 집단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잡하고도 비상식적이며 삶이 버거운 단기(短期) 애국자들만이 가득하였다. 바리케이트 넘어도 그러했다고 확신한다. 단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서툴었을 뿐. 소란이 끝나고 여유가 찾아오면, 우리 모두에게 과거의 행동에 걸맞는 회한이 뭍어있겠지.
사 진을 찍으려는 데 바로 앞에서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가 스치었다. 곧바로 시민들이 혼비백산 하였다. 눈물 콧물 다 뽑으면서 마스크를 부여잡고 천식 환자마냥 가는 숨을 쉬어가며 근근이 버티어 내는데, 얇고 뻣뻣한 교복으로 매운 물 세례를 맞받아친 여고생들이 보였다. 그들도 혼비백산 하기는 매한가지 였으나 부끄러움은 나 뿐이었다. 나는 마스크라도 가졌지 않는가. 고통스러운 와중에 이런 생각을 잘도 한 것 같다. 아직은 남을 챙길 여력이라도 남은 것이 다행인지, 단 하나의 부끄러움이라도 저항하려 몸부림치지 못하고 그저 멍때리고 있는 내가 무력한지, 어느 것이 맞는지 잘 몰랐다. 여긴 그런 곳이었다. 생각대로 행동치 못하고, 감정대로 저항치 못하고, 그저 익숙치 않아 어눌한 몸짓들을 마냥 목도하고 인내하는.
시 위대 중에는 최루액을 맞고 연신 기침을 해가면서도 기꺼이 제일 앞에서 경찰과의 몸싸움을 버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최루액으로 꺼져가는 촛불을 연신 켜는 신학대학생들이 보인다. 이 학생들은 연신 '폭력경찰 물러가라' '역사퇴보 그만둬라'를 외치며 고무하였다.
시 위하는 모두가 각자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무게를 짊어지었다.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투지에 불타 행동하는 사람들은 물론 모두 대단하다. 그 사람은 환경에 떠밀려서든 감정에 북받쳐서든 선뜻 그 무게를 견뎌내었다. 하지만 촛불을 난생 처음 켜는 학생들도 만만찮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모두들 극기(克己)로 두려움을 이겨내었다. 우리는 각자의 싸움을 함께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하지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우리는 누구를 자처하여 기꺼이 대중 속에 자신의 기력을 나누었다.
쌀 뜨물 같은 농도의 투명치 않은 물이 콸콸 흐른다. 살수한 물은 18만2천100ℓ, 최루액은 441ℓ, 캡사이신은 651ℓ이라 한다. 매운 짬뽕에 캡사이신 많아야 2숟갈(8㎖). 최루탄은 고사하고 캡사이신만 짬뽕 8만그릇분량 바닥에 흘렸다. 아니 얼굴에 뿌렸다. (최루액을 먹어봤어야 비유를 하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서있던 곳은 청계광장 꼬깔탑(뒤틀린듯 보이기도 하는 형상)이 있는 곳,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나란히 서있는 교차로이다. 뉴스에 시위 나오냐고 물었더니 아무데도 안 나온단다. 다음날 엄마가 주말에 프랑스 난리 났더라고 하길래 어이가 없어 웃었다. 찰리 채플린 오늘 여러모로 들어맞는다.
이 미 수차례 물대포를 맞은 청년들이 이번엔 밧줄을 쥐고 불법적으로 주차된 경찰버스를 끌어 당겼다. 장정이 20명은 달라붙었는데 여간해선 움직이지 않았다.(몇대는 움직인것 처럼 보입니다만) 조끼 입은걸로 봐선 노조 분들이신 것 같은데, 2번이고 3번이고 당기셨다. 손이 최루액 섞은 물에 불어 퉁퉁한 것으로 보인다. 눈에서 뜨거운 것이 흘렀다.
헌법재판소 위헌 ‘경찰 차벽’ - http://www.lawissu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59
물 대포를 쏘면 물렀다가 다시 다가서기를 2시간 10시가 다되어서까지 전선이 고착화되었다. 이후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귀가 하였다. 귀가 도중 마주친 100여명의 젊은이들(나이와 상관없이 젊은)이 추가로 합류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한번 부끄러워졌다. 386세대가 419혁명에 대한 부채의식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인증샷. 영화'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며 물대포를 배경으로 친구와 셀카. 인증하지 말까 하다가 나중에 자식 보여줘야되니깐.
출처 | 내 블로그 사진도 거의 내꺼(용기를 준 베오베 게시자님 ㅜㅜ 못찾겠어요)(JTBC도 일부미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