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사무관 건은 이제 효력이 다 됐나 봅니다. 6대 일간지 메인페이지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특히 이제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를 더 크게 확대시킬 여지는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4일) 아침 자유한국당 홍문표 의원은 ‘기재위보다 더한 것’이라도 열어야 한다고 공세를 이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조그만 잘못도 바로잡자는 것’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큰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죠. 만약 건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지난해 이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출석한 기재위에서 아주 심도 있게 다뤄졌을 겁니다.
현재까지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어떠한 이유에서든 궁지에 몰린 한 청년이 불합리한 행동을 벌인 것으로 이번 사안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신재민 영상에서 확인해야 할 체크포인트 몇 가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신재민 부모님의 사과문과 동문들의 호소문을 보며 조금 더 그림이 명확해졌습니다.
먼저 부모님 사과문을 보죠.
1-1) 선의를 강조하다
일단 부모님 사과문의 핵심은 자식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던 ‘극단적 선택’에 있습니다. 일련의 사태에 대한 사과는 아닙니다. 두 번째 문단에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 나선 일’이라며 신 씨 행동의 정당성은 놓지 않고 있는 것이죠. 때문에 ‘필요한 모든 조사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공익신고자들이 밟아왔던 과정들을 말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부모로서는 자식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겠죠.
그 다음 등장한 신재민 씨 선후배 호소문은 보다 명확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 씨가 반드시 공익제보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2-1) 선의가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호소문 도입부에는 ‘재민이 그런 애 아니에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 ‘선한의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신 씨와 야학동아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의 봉사가 좋은 영향을 끼치기만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요. 그들의 인생 선배들은 경과가 아니라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졌다는 내용도 덧붙여졌습니다. 그들의 이런 인식은 현 정부에서도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최소한 지난 정부처럼 정보유출자에 대해 중한 처벌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겁니다. 일종의 여론전 성격도 나타납니다. 선의로 한 행동인데 이것을 처벌한다면 문재인 정부 철학과 다른 것 아니냐는 항변이죠.
2-2) 신 씨의 고발은 ‘논쟁적 사안’?
호소문에서 강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관료조직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한 구성원이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는 문제’라거나 ‘정부의 주주권 행사 과정’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신 씨가 제기한 문제를 공론에 붙여서 교훈을 얻자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 전문가와 언론을 통해 그의 주장은 탄핵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신 씨의 주장을 면밀히 파헤치다보면 그래도 조금의 논쟁점은 나타날 것이고 그런 논쟁이 아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원리적 접근입니다. 뭐 그래봐야 ‘이면지를 그렇게 함부로 쓰면 안 되지’라거나 ‘물을 많이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간다’ 정도 수준의 논쟁이지만 말입니다. 만약 이런 식으로라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신 씨의 그 ‘선한 의도’는 관철된 것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2-3) 정부와 일개 전직 사무관의 싸움?
신씨의 동문들은 정부에 간곡히 부탁한다며 강조한 것이 있습니다. ‘정부와 일개 전직 사무관은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싸우려 하지 말고 그의 ‘선의’에 귀 기울여 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동안 공익신고자들은 조직에 맞선 개인으로서 지난한 싸움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 씨는 정부기관 산하 단체도 아니고 기획재정부와 청와대를 대상으로 소위 ‘폭로’를 했던 것이죠. 신 씨가 정말 결기를 가지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했다면 신 씨 동문들의 이런 주장은 신 씨를 바보로 만드는 주장입니다. 이와 동시에 공익을 위해 개인으로서 조직과 싸움을 이어왔던 공익제보자들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만약 신 씨 본인이 주장한대로 ‘공익신고’의 가치를 내세우려면 신 씨의 주장에 힘을 실어줘야겠죠. 신 씨의 동문들은 신 씨를 한낱 ‘어린이’로 치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신재민 씨 부모님 사과문과 동문들의 호소문은 선의와 과정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내놓은 메시지를 종합해보면 결국은 ‘결과론적으로 신재민은 공익신고자’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 씨가 제도적으로 공익신고자의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절실함만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공무상 비밀누설죄를 면하려고 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럴만한 특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따름입니다.
일각에서는 자유한국당과의 모종의 커넥션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만, 현재까지는 그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정말 자한당 모 의원과 관계가 있었다면 자한당에서 신 씨를 밀착 관리했을 겁니다. 이렇게 방치되지 않았을 겁니다. 신 씨의 깜냥을 떠나 그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지 관리가 이렇게 엉성할 리 없습니다. 그저 자한당이 신 씨를 정치적으로 이용했을 따름이라고 보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는 합리적입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이런 허접한 사안에 정치권과 언론이 달라붙으면 양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그 파급력을 확인했습니다. 그나마 정부가 비교적 메시지 관리를 잘했고, 몇몇 양식있는 지식인들이 나섰으며, 소수의 합리적 언론이 이를 뒷받침했기에 더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느 때보다 시사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회구성원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현재 상황이라면 이제 신 씨를 관심의 목록에서 지워도 될, 아니 지워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궁지에 몰리고, ‘공익신고’라는 방식을 통해 세상에 떠밀려 나온 청년도 평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관련기사)
한겨레 – 신재민 선후배 호소문과 부모님 사과문(전문)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7695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