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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행되고 있는 창씨개명
게시물ID : history_1123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오마이코
추천 : 12
조회수 : 938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3/08/19 23:28:37


 

또 한 번의 창씨개명- 1914년 이 땅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일제 강점기, 1939년 행해진 사람 성씨를 바꾼 창씨개명의 훨씬 이전 1914년에 행해진 이 나라 땅 이름에 대한 창씨개명이 있었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되자 바로 조선지지자료 조사에 들어가 이 땅에다가 마구 금긋기를 시작했다.

1914년 일제가 조선지지자료를 발표하자마자 대혼란이 일었다.

알지도 못하는 낯선 구획에 낯선 지명에 어디가 어딘지 익숙해지기 위하여 그토록 지배기간이 길었나 보다.

 

데이빗데이가 쓴 ‘정복의 역사’란 책에서는 정복의 순서는

1. 법률적 소유권의 주장(깃발꽂기나 선언서 낭독...)

2. 지도 제작

3. 지명 붙이기

4. 실효적 지배

순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이 책의 내용은 어쩌면 일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과정을 완전히 복기하는 수준이다.

 

1914년에 일제는 을지로5가- 황금정 5정목, 충정로- 죽청정, 원효로- 원정.....

이런 식으로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거리 이름을 제 멋대로 바꾸어 버렸다.

이때 우리 지명의 53.8%가 없어지거나 통폐합되었다.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은 전부 왜식 한자로 치환되어서 그들의 정신에 동화되는 첫걸음을 내딛었던 것이었다.

 

지금은 그런 거리 이름이 없어지지 않았는가고?

그렇다.

해마다 광복절이 되면 왜색타파라 하여 우리 땅 이름을 찾자고 떠든다.

돈 안 드는 거리 이름은 쉽게 되찾았다.

 

그러나 당장 종로통에만 창씨개명된 지명이 관수동, 동숭동, 공평동, 권농동, 예지동, 낙원동, 원남동, 원서동, 계동....

이 익숙한 이름들은 아직도 대한민국 지명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젠 바꾸기도 힘들다.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고 각종 공문서며 수많은 사람들의 호적과 주민등록 변경에 그들이 겪어야할 대혼란 때문에 손도 못댄다.

 

우리는 박정희를 다까끼마사오로 김대중을 도요타다이쥬로로 김영삼을 가네무라 코유로 불리웠던 그 시절이 가장 치욕인 것처럼 떠들지만 일본의 조선정복의 제일보였던 이 땅의 이름에 대한 창씨개명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귀 기울여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지금도 내 사는 땅바닥에 버젓이 그 이름으로 존재하며 나 모르게 나를 갉아 먹고 있는 지명.

버려야할 이름을 버리지 못하는 가슴앓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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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기사 하나를 접했다.

충청북도 강내면을 미호면으로 바꾸자 한단다.

이유는 왜색 때문이란다.

‘옳소. 왜색은 배격해야지...’ 하려고 했는데 어쩐지 강내라는 지명보다는 훨씬 더 왜색의 냄새가 나는 것이 ‘미호’라는 지명이었다.

미(美)자도 호(湖)자도 일본 아이들 엄청 좋아하는 글자다.

일본아이들 이름을 찾아보면 무수히 나온다.

 

그래서 전문 분야도 아닌 지명유래에 대해 들쑤시기 시작했다.

‘강내’라는 지명은 청주를 중심으로 북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미호천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지명이었다.

대개 고려때는 ‘북강내’, 조선때는 ‘서강내’ 쯤으로 불리다가 1914년 ‘강내’로 축약시켜 버린 지명이었다.

왜인들이 한 짓 치고는 양반이었다.

‘강내’라는 이름을 지지하는 측에선 줄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천년을 이어온 이름이라 했다.

 

미호면이라 칭하자는 측에서는 미호천이 이 동네의 중심이니 미호면으로 바꾸자 한단다.

미호천도 191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 처음 등장했다.

문제는 그 이전 어디서도 미호와 연결지을 만한 지명이 없다는 거다.

완전히 일본인들의 창작 지명이었다.

 

원래의 지명은 ‘미꾸지’였다.

우리말로 ‘밑곶’이다. - 하류쪽(밑)으로 툭 튀어나온 땅(곶)이란 뜻.(지도 보면 금방 안다.)

강화도에도 미꾸지라는 지명이 있다.

이런 지명이 대한민국에 아직 많이 살아 있다

강화도의 53곳 돈대 이름 중에 ‘곶’이 들어간 이름이 7군데나 된다.

당장 꾸지나 곶이란 지명을 찾아보니 100여 곳이 넘는다.

분명히 우리 이름이다.

 

조선조말 대동여지도에서는 미곶강(美串江)이 등장한다.

‘밑곶’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그 이후 1914년 일본인들이 미곶(美串)을 미호(美湖)로 바꾼 이치를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한자음 지명은 분명한 원칙이 있다.

우리말과 같은 음의 한자를 따서 만들던지(음차), 뜻을 따서 만들던지(훈차)...

꼭 그렇게 했다.

누군가 일부러 지명을 짓지 않는 한 이 원칙을 따랐다.

지금도 꽃화(花)자 쓰는 지명의 옛이름은 대부분 ‘곶’의 훈차이다.

곶이나 꽃의 발음이 같았기 때문에 곶을 나타내는 한자지명으로 花를 쓴 까닭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호(湖)라니...

근거가 없다.

문득 일본인들 혓 바닥 짧은게 생각났다.

일본 사람들 한국말 못하는 첫째 원인이 받침 때문이다.

우리나라 뽕짝이 일본에 가서 히트 못 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일본인들 한국노래 하라면 받침빼고 부른다.

김 빠진 소리 듣는다....

 

지지자료 조사차나왔던 일본 친구는 당연히 미곶이 발음이 안될 터...

더구나 곶(串)이란 한자는 우리나라에서만 곶이라 읽는 글자이기 때문에 발음이 될 턱이 없다.

그가 창작했을 것이다.

곶(串)을 받침없는 호(湖)로....

191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 처음 등장한 ‘미호(美湖)’는 지명의 창씨개명이었다.

 

자!

어느 것이 왜색인가?

이름이 아름답다고 미호면으로 바꾸자고 하는 측은 오히려 강내면을 왜색으로 몰고 간다.

 

나는 그 곳에 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 알리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명변경으로 그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치욕의 창씨개명 지명을 뒤집어 씌워놓고 더구나 한번 바꾸면 예산과 혼란 때문에 함부로 되돌릴 엄두도 못내는 행정지명이 아닌가.

대못 박자는 얘기다.

무서운 얘기다.

이런 발상이 너무나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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