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없어서 더운 방인데 문을 열어둘 수 없는 상황. 작은 창문이 하나 있을 뿐, 창도 바깥으로 바로 나지 않아서 바람이 들어오질 않는다. 조금만 더 시원했으면. 정말 소박한 소원이구나. 하고 생각해보니, 두시간쯤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 바로 밑에서 있다가 온게 생각났다. 춥다고 온도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맘대로 조절도 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혼이났다. 평소에는 쓰레기통에 잘 버렸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잘못 넣어서 옆에 떨어졌나보다. 그렇게 더럽게 만들면 어찌하냐고 혼이 났다. 그 굳어진 표정... 과연 그게 혼날일인가 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우울해졌다. 말을 하는데 왜 화부터 내기 시작하는걸까? 화를 내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데...
그런 생각에 앉아있는데 땀이 주욱 나는게 너무 덥다. 그리고 조금만 시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바라는건 사소한건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찰나에, 아까까지 쐬고 있던 에어컨 바람이 생각났다.
집에 들어오기 전, 내가 낮동안 지내는 곳은 맘대로 에어컨을 틀 수 있는 곳이다. 방안을 한겨울로 만들어도 누가 절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 좋은 환경에서 있으면서 지금 좀 더 시원했으면 하는 내 바람이 사소하다고 말하는건 너무 사치가 아닌가..
분명 주어진 환경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감사한 것들이 많다. 사지 멀쩡하고, 특별한 지병이 없고, 편안히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환경에 개인 컴퓨터도 있고, 잘 걸어다니고, 잘 보고, 잘 먹고, 잘 말하고, 잘 듣고, 공부도 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근데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내 바람은 아주 작은 것들일 뿐인데, 조금만 시원했으면, 내 주위 사람이 말을 시작하면서 무작정 화부터 내지 않았으면, 머리가 조금만 더 좋았으면, 몸이 조금만 더 건강했으면......' 그 조금만 조금만이 여러가지가 되고 무수히 많아지면서 수도 없이 불어난다.
그건 사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 뭔가 자신에게 숙연해진다.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그것을 잘 받아들여서 행복해지면 좋을텐데.. 나는 자꾸, 내일은 더 좋을꺼야, 다음달은 더 좋아질꺼야, 내년은 더 좋아지겠지.. 라고 좋은 날을 미루면서 현실의 행복을 모르고 지내는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