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7일 새벽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및 역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수사의 경과 등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검찰이 임 전 차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 수사를 시작한 지 4개월여만에 첫 구속 사례다. 임 전 차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있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지난 15일부터 임 전 차장을 4차례 불러 조사했다. 이어 지난 23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작성·행사 등 혐의로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기에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임 전 차장의 범죄 사실은 법관 사찰, 재판 개입, 비자금 조성 등 전반에 걸쳐 30여개에 이른다. 특히 일제 강제징용,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대선개입 등 다수 사건에서 ‘박근혜 청와대’의 뜻에 따라 재판에 관여한 혐의가 있다. 또 대법원이 2015년 일선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를 모아 수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할 때 그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날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선 6시간 가까이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은 재판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흔든 중대한 사안이고, 임 전 차장이 혐의를 부인하거나 아랫사람들에게 미루고 있어 증거 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전 차장이 판사들과 주고받은 e메일, 임 전 차장의 이동식저장장치(USB)에서 나온 행정처 내부 문건 등 주요 증거를 슬라이드로 띄워 혐의에 대해 설명했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단은 임 전 차장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더라도 형사법상 범죄가 되진 않는다며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재판 거래에 대해선 “청와대에는 손발이 없어서 도와줬다”고, 재판 개입에 대해선 “결국 판단은 판사가 알아서 했다” “행정처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차장은 최후진술에서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수사 원칙을 강조하며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남용한 사건”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검찰이 임 전 차장의 신병을 확보함으로써 의혹의 정점인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등 윗선의 지시 여부에 대한 수사는 탄력을 받게 됐다. 법원의 구속 결정은 실형을 선고받을 정도의 범죄가 상당수 소명됐을 때 내려지기 때문에 검찰은 향후 이어질 재판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섰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이 그동안 전·현직 판사에 대한 압수수색·구속 영장을 대부분 기각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에 그와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정치권에서 가시화된 특별재판부 구성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