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독성을 위해 반어체를 사용합니다. 양해 부탁합니다.
또한 여기서 쓰인 '본류'란 기원을 뜻하는 것이 아닌 '상대적 다수의 민심'을 뜻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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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문파, 진성문파, 열혈문파, 문꿀오소리 등 하다 못해 '극문'이라는 스탠스에도 스스로 흡족해 하는 사람들이 나올 만큼
자신들의 차별성을 멋드러지게 표현하고자 고민하던 순간이 있었다.
자신들이 '극'에 위치함을 흡족해 하는 이 순박한 순혈주의를 보며 참여정부때의 어지러움이 생각나
뫼비우스처럼 반복되는 이 곤란을 바라보는 나는 심란했다.
자고로 '극'이란 상대적 위치로 본류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뜻한다.
'극'의 집권은 필연적으로 독재를 부른다.
다수적 동의에 의해 집권여부와 집권력의 크기가 결정되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극'을 자처하는 것을 흡족해하는 이 현상이 과연 지지세력이 가져야 할 선택일까?
'극'의 위치로 생각되는 자들이 스스로의 주장을 유지하면서
'극'이지만 '극'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뿐 없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후보를 지지하여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극'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지지율의 본류에서 벗어난 후보를 지지해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전해철, 남경필, 김진표이다.
나는 전해철까지는 이해되었다.
하지만 남경필은 '극'의 정당성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거기에는 문재인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문재인을 공격하는 여성인권단체와 자한당과 손잡는 것마저 주저하지 않는 다.
또, 김진표는 무엇인가?
그들은 송영길을 지지해야 했다. 근데 왜 김진표?
그들의 스피커를 받아준, 그것도 단 한번의 이재명발언이 김진표를 선택하게 했다.
그러한 선택은 이해찬은 반노반문, 김진표는 친노친문이라는 급조된 분칠을 수행하게 된다.
왜냐면 '극'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아낸 채로 본류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도 나는 괜찮다.
'극'도 하나의 주장이다. 민주사회에서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할 권리는 있고
타인은 그것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본류인 척 해야되는 '극'은
반론을 젠틀하게 받아낼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의 정체성은 언제나 '본류'이여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게시판을 차단한다. 반대편 주장은 삭제해 버린다.
그리고 찢몰이를 하게 된다.
나는 이재명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 이런 행동을 한 사람들을 이동형의 주장한 바로 그 부류라는 것에 동의한다.
나는 단언하건데
그들이 '본류'가 될 가능성을 높히기 위해서는 절대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었다.
반대세력을 찢몰이로 물어낸 후에 장악한 커뮤니티에서
대세임을 주장하는 그들의 가소로움은 선거마다 박살이 났다.
그때에도 늦지 않았었다. 상대방을 압살할 수 있는 '본류'가 아닌 상대를 설득해야만 하는 '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말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박살난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당'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어느 까페에서 많이 주장하는 '난 문재인만 지지한다'라는 워딩과
권순욱의 민주당 절교선언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까지도 그 어디에도 사실상 문재인은 없다.
오유는 혐짤과 조롱, 찢몰이를 이어가는 것으로 추정되는 회원들을 정리했다.
이것을 비민주적이라는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존중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커뮤니티에서만 마련된 본류의 입장에서
압살을 수행하거나 방관했던 자신들이 민주적 정의가 있다는 뜻인가?
독재세력을 물러나게 만든 시민혁명을 비민주적이라 칭할 것인가?
(물론 지금 상황은 타국에 의한 광복과도 같은 상황이지만...)
지금의 오유는 김어준 지지뿐만이 아니라 비판도 가능하다.
이재명 싫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혀도 된다.
단지, 상대방에 대한 존중.. 그것을 지킨다면 말이다.
그런데 놀던 물이 아니라서 떠난다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들은 '극'이다. '본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극'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온갖 압살놀이가 자행되었던 물이 그리워 떠난다면
당신에겐 '문재인'은 없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위로받고 응원받고 싶은 '당신'만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