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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고치던 노파
게시물ID : sisa_62086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전람회
추천 : 12
조회수 : 972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5/11/01 21: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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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지난 달 내리 있던 일이다. 내가 실습 간 지 얼마 안 돼서 교과서를 벗하며 살 때다. 서울 왔다 가는 길에, 터미널로 가기 위해 일단 광화문에서 버스를 한번 내려야 했다. 광화문 뒤편 푸른 지붕 아래 앉아서 교과서를 고쳐 쓰는 노파가 있었다. 교과서를 하나 사 가지고 가려고 역사 교과서 하나만 달라고 부탁을 했다. 노파가 꺼내는 것이 교학사 교과서 같았다.


“교과서가 이런 것밖에는 없습니까?” 

했더니,


“교과서 하나 가지고 불만이 그리 많소? 맘에 안 들거든 북한에 가서 사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파였다. 검인정 기준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수많은 오류나 수정해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고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고치려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그대로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도저히 교과서가 아닌 것 같은데, 자꾸만 더 손 보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고치지 말고 다른 책을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타야 할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고치지 않아도 좋으니 금성출판사 교과서나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좌편향을 다 없애야 올바른 교과서가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공부하는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고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종북주의자는 북한 가서 사시우. 난 외교 하러 가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좌편향 된다니까. 교과서란 올바르게 만들어야지. 좌편향 되면 쓰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엔 고치던 것을 숫제 TV조선 위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중동행 비행기 표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교과서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이미 아까부터 교과서는 아니었던 종이쪼가리다.


차를 놓치고 다음 차로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정치를 해 가지고 정치가 될 턱이 없다. 사람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아버지만 되게 부른다. 인권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파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파는 태연히 허리를 펴고 재래시장을 바라보고 섰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각하다워 보였다. 부드러운 눈매와 국모 육영수 여사를 닮은 모습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파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그가 재래시장을 바라보자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교과서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건 국정화 교과서라고 야단이다. 검인정 교과서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국정화 교과서가 더 좋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 보니, 교과서 전체를 보면 좌편향 되어 있다는 기운이 오고,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지금 한번 바로잡고 가야 한단다. 한국식 민주주의에 요렇게 꼭 알맞은 교과서는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집에 있는 TV를 고물상에 팔아넘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옛날 교과서는 그랬다. 제주 4.3 항쟁은 폭동, 군사 독재는 구국의 결단, 광주 민중항쟁은 북한의 소행이었다. 학생들의 눈으로 보아서는 그것이 사실인지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교과서를 믿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게 애국이었다.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어느 교사가 옳지도 않은 역사를 가르칠 리도 없고, 또 잘못된 역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학생도 없다. 옛날 독재 정권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역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가스통 할아버지들을 만들어냈다.


이 교과서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파에 대해서 죄를 지을 것 같은 불쾌감을 느꼈다. 나는 그 노파를 찾아가서 시바스리갈이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파를 찾았다. 그러나 그 노파는 우리를 만나지 아니했다. 나는 광화문 앞에 멍하니 서있었다. 내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러다 문득 광화문 서쪽 너머에 궁정동 쪽을 바라보았다. 아, 그때 그 노파가 재래시장이 아니라 저 궁정동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교과서를 고치다가 유연히 그 헌정 대상의 영혼이 계실 저 곳을 보고 있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구절을 되뇌었다. 문득 40년 전 교과서 고치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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