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수십년간 인생글이라 글이 좀 깁니다. 장문을 읽으실 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시게 차단 기념으로 오유에 마지막으로 글을 적습니다.
시사에 관심이 생긴 것은 대학교 시절 부텁니다. "말"지와 사시경향 한겨레21 등을 주로 구독했죠. 독자 소감 같은 기고글도 내서 자그맣게 글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책도 선물로 받고요.
그때는 그냥 국회위원들이 어떻네 대통령이 왜 저런 판단을 하느냐 이런 약간은 피상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고, 정치인 누구가 좋다, 존경한다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다 노무현이라는 분을 알게됬죠. 그때도 주류 언론에서는 비주류셨던 분이신지라 저는 그분이 누군지 전혀 몰랐고, 단지 호기심이 갔던 것이, 노사모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거죠. '정치인이 얼마나 좋으면 팬클럽이 생길까?'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지금에서 무슨사모가 사모펀드 마냥 아무것도 아니고 심하면 저질스러운 느낌 나는 곳도 있지만,
노사모는 제가 기억하기로 우리나라 최초 정치인 팬까페라고 기억합니다. 원래 없던 것인데 인간 노무현에게 감동 받아서 생긴 것이죠. 노사모라는 존재 때문에 '저 사람은 누구인가...'가 어린 제게 큰 궁금증이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적이니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고, 전두환 청문회 일화가 기억나는데 아버지께서 칭찬 하셨던 것으로 기억나더군요. 청문회에 등장한 수괴들을 진정성 있게 호통 치셨다고 말이죠.
그래서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다가 개인적으로 좀 운명적인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됩니다.
그... 노짱이라 부르겠습니다. 노짱이 시장 어디선가 혼자 연설하는 모습의 동영상입니다. 아... 듣는 사람 한명 없는 넓은 광장에 서서 혼자서 꿋꿋하게 목소리 크게 크게 연설을 하는데,
광장 외곽으로 겨우 지역 상인들이나 흘깃거리면서 연설 하는 모습을 보는둥 마는둥 제들끼리 잡담을 하고 있고, 노짱은 그 넓은 광장에 아무런 사람이 듣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정말 꿋꿋하게 연설을 합디다 그려.
눈물이 되게 많이 났습니다. 연구실 문 걸어 잠그고 휴지로 코를 풀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울었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그분의 진정성에 깊은 감명을 받고 운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그뒤로 정말 저를 많이 울리셨죠. 아무튼 그때를 계기로, 야, 이사람은 진짜구나. 그뒤로 노짱 사생팬이 됩니다. 알고보니 이분이 초대 파파미셨더군요. 3당합당에도 혼자 반대합니다 손드시고.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사모도 가입하고, 열린우리당 사이버당원도 가입하고, 넷상에서 노짱 까는 애들하고 키배도 뜨고, 오프서 부모님 형제 친척 친구 죄다 끌어 댕겨 오고.
경선이 드라마틱 했었던지라, 노란저금통 모금에 아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릴거요 하는 맨트에 이 양반은 남자야 남자 하고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주변분들은 죄다 뼛속까지 갱상도라 설득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의 영향권이 미치는 분들은 많이 설득들이 됐죠. 참. 자주 가던 치킨집이 있었는데,
평소는 제가 단골이니 대화가 잘됐었는데, 슬쩍 노짱 이야기를 하니 정색을 하십디다. '그 사람 국회위원 되고 나서, 지역구 한번도 안왔는데 무슨.'
제 주변분들 중에 말을 꺼냈는데 딱잘라 거절하신 유일한 분이셨고, 국회위원이 열심히 입법활동 좋게 해도 얼굴 못비치면 욕먹는구나 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다는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그게 보통의 민심이라는 거겠죠.
망할 불사조가 지핀 색깔론도 넘고, 찌라시는 손떼라고 호통도 치시고, 그래서 경선 되고 나서도 정모모의 하루 전 후보 단일화 뒤통수 후려치기와 찌라시 물량 공세 등 갖은 고초를 이겨내고 결국 대통령이 되셨죠.
그때 개인적으로 기억하던 일화가 선거 전날 단일화 뒤통수를 찌라시가 대서 특필을 해서 전국에 뿌렸는데 한 노사모 회원님이 살던 아파트 1층부터 높은층까지 몇동 전체를 뛰어 다니면서 그 찌라시들을 수거했다는 일화가 기억 납니다.
큰 신의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것을 비판해야 될 언론들이 '이놈 깨진놈이야' 하고 선거 당일까지도 대선 판세에 영향일 미치려고 했던 사실에 분개하셔서 나름 반항 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노짱이 대통령이 되고, 그 뒤로 저는 '비판적 지지'를 합니다. 할 것 했으니 감시해야지. 뭐 이런 생각이었죠. 생각은 그랬고, 실제로는 정치에 신경 많이 못쓰고 생업이 바빠서, 기억나는 것은 두가지인데,
파병 했던 일과 부동산 원가 공개 반대 하셨던 것을 굉장히 못마땅해 했습니다. 검사들과 대화 하실때만 해도 검사들 태도가 저게 뭐지? 하고 노짱 편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점점 이분이 왜이러시나, 하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그러다 퇴직하시고 수사 받으실때, 마음 속으로 좀 미웠습니다. 먼 훗날 혹시라도 찾아가서 뵈면 막걸리 한잔 주세요 하면서 물어볼 생각이었죠.
지금은 그때 저의 생각이 너무 미안하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눈물이 납니다.
이제는 영영 못뵈니까.
수사 받으실때, 전국민이 감시자가 되서 그분 비판만 할때, 아무도 편들어 주지 못할때, 뉴스가 났습니다. '서거'. 잘못본줄 알았고, 그래서 현실감이 없어서 슬프지도 못했는데, 그날 구내식당서 밥먹으면서,
옆자리 상무님이 "아이고 불쌍하다 쯔쯔쯔" 하는 소리에 밥숟갈 입에 우겨 넣고 속으로 끄윽끄윽 울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겉으로 못울고요. 그날 집에 들어와서 새벽까지 뜬눈으로 못자다 아침 동틀때 쯤에 또 허리굽혀 대성통곡을 하고 출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냥 그분의 인생이 슬펐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되시고 이제 진실이 뭔지 작게나마 눈을 뜬 것 같았습니다.어제까지 미웠던 그분이 잘못하신 것 없이 미움받으신 것이라는 것을.
고향서 제가 설득하지 못했던 동네 치킨집 사장님도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내가 그분과 무엇이 달랐던가 하는 자책도 함께요.
슬픔에 정신이 없을때, 주변에서 나즈막하고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문재인 이라는 이름이 들립디다. 저는 화가 벌컥났죠. 노짱만한 분이 어딨다고 ! 저분은 도대체 누구냐고. 그냥 딱 봤을 때 노짱 옆에 있던분 샌님 아냐? 이런 느낌이었죠.
문프님 !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비천해서.. ㅠ 이분은 괴수 파파미시더군요. 그리고 1대 파파미가 이분이 친구여서 내가 훌륭하다 하셨던 것을 알게 되고, 띠용하고 덕질이 옮겨 갑니다. 1대는 마음속에, 2대는 현실속에서.
그리고 그뒤 문프의 모습은 탈인간급이네요. 육해공 전방위. 문프의 이력도 놀라웠지만, 대응은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범인은 상상하지도 흉내내지도 못할 그릇. 지금도 짧은 기간에 엄청난 일들을 해내고 계시죠.일년 전 이맘때 쯤만 해도 야 이거 진짜 머리위로 미사일 하나 떨어지는거 아냐?
하던 느낌인데, 이제는 탈핵에 통일을 논하는 시기가 됐네요. 문프님 감사합니다 !
그리고, 털형 이야기를 안할수가 없네요. 처음 나꼼수 들었을 때 느낌은 '와 이러고도 안잡혀가???'였습니다. 그렇다고 새로 생긴 팬은 아닙니다. 저는 딴지가 처음 열렸을 때부터 팬이었고 방문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똥꼬깊수키. 딴지로고가 저 말입니다. 예전에는 딴지 하면 저 말이 항상 따라 댕겼었죠. 처음 들었을 때는 웃기기도 했었고. 한겨레21인가?에서 소개 됐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황색언론? 아냐 어쩌구 저쩌구 하던 제목으로.
좀 자극적인 기사로 소개가 됬었죠. 기억나는 것이 당시로는 좀 획기적이었던 포토샵으로 성적인 개그코드 엮어서 이런 책이 있더라 하고 우스개 글 있었던 것과, 한참 좀 지나 인기를 끌었을 때, 딴지가 우리한테 놀러 오는 니들을 분석해 줄게,
하던 기획에 카이스트 접속 ip가 있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해도 머리 비상한 공대형들은 저런 3류 개그 안좋아하는 줄 알았거든요. 딴지 생활도 십수년했지 싶습니다. 바쁘면 가다 말다 해서 그렇긴 해도, 사람들이 알던 모르던 시간 날적에는 잊지 않고 가서 기사거릴들을 읽었죠. 그러다 나꼼수가 나오니, 당연히 더 열렬히 응원했고, 이 형들은 조금 마음이 안드는 것이 있을 때도 노짱때 떠올리면서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우리편이야. 이게 제 마음이었죠.
오유는 미녀! 직장 동료분 때문에 알게됐습니다. 멋쟁이 캐리어우먼인 그분은 업무도 프로페셔널 했지만 또 시사, 개그에 밝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그리 재치가 있을까 하고 슬쩍 보다 오유를 알게됐죠. 그래서 오유 오징어설은 사실 그냥 썰입니다 찡긋. + 잘생기고요 크크 ;
무튼... 이분은 그냥 동료분입니다. 알게된 것이 그래서 좀 오래였는데, 순수 눈팅러죠. 가입 없고 추천 없던. 그러다 탄핵 정국 덕에 가입을 하고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때 절박했던 것인데, 탄핵이 어그러질뻔도 했었거든요.
광장은 당연히 나갔죠. 주말반납. 광화문역에서 6시쯤에 가고 있으면 에스컬레이터 하행선으로는 어르신들이 주루루 내려오십니다. 혀를 끌끌 차시죠. 전교조가 어떻고 JTBC가 어떻고 크게 크게 말씀들 하시고.
어르신들하고 싸울 일은 못되니, 분노만 살짝 축적해 놓고 광화문 광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었습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 그렇게 몇백만들이 있을 때, 거기 한 점이 되서 있었습니다.
이재명. 이 이름은 오유서 알게됐습니다. 글이 몇개 있었어요. 이분 잘한다고. 전 누구지? 했고, 잘하나 보네 했죠. 그런데 이분은 파파괴시더군요. 얼마를 지켜보다 논문 의혹에 해명을 듣고,
누가 논문 전체를 가져와서 펴 놓으셨더라구요. 지금 기억은 잘 안나지만 해명과 실상이 매우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름모를 대학 운운하는 멘트도 한몫했고.
가족욕에 음주운전에 이런 과거 행적들이 경선 과정의 당시 행보에 더해, 아예 오렌지 농장 주인이 되시고... 제가 더 언급할 가치를 못느끼겠네요. 쓰면서 열이 올라오니.
민주주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촛불혁명은 탄핵으로 1차 완수되었지만, 동학은 저항이 있었다라는 역사의 한줄로만 남았죠. 그래도 둘 다 위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옳은 것을 위해 싸웠던 사건이니까요.
털형이 이지사에 대한 의혹이 쌓이고 쌓이다 SBS에서 방송이 나갈 정도 까지 사태에 이르렀는데도 거기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입니다.
털형이 살이 많아서 그렇지 꼼꼼한 것은 또 몸에 털가락만큼 꼼꼼한 양반이거든요. 이때까지 봐온 털형은 이슈가 된 일이면 작은 사안도 놓치지 않고 한마디씩은 꼭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핵폭탄급 의혹이 떨어졌는데도 침묵한다? 무엇인가 상당히 이상했죠.
제도권에 올라가서 그가 말한 정의가 선택적 정의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얼마를 더 지켜 봤고 최종적으로 셀프 손절했습니다. 문파들은 혜경궁도 누군지 굉장히 궁금해 할 겁니다. 수사 왜 안되는지도. 털형은 왜 언급하지 않는 것일까요? 이슈가 아니라서? 능력이 안되서요? 글쎄요. 파파이스에서 세월호에 대해 그렇게 치밀하게 검증하던 털형 모습을 떠올려 보면 선뜻 이해가 잘 안됩니다.
요즘 도대체 왜그래 털형? 총기가 사라진거 같애? 형은 나 기억 못할테지만, 난 오프서 형도 봤거든. 김돼지 형들하고 같이 말야. 좀 팬이었지. 마지막 애정으로 말할게. 형 정신 똑바로 차려. 형 힘들 때 형 응원해주던 사람들 하나 둘 떠나고 있다고 ! (그리고 담배 끊어 형. 오래 살어)
끝으로 차단대란에 대해서 말씀 드립니다. 제가 게시한 글은 2년간 3건이었습니다.
제 글에는 비아냥도 없고, 조롱도 없고, 나름 늙어가는? 아재라 혐짤은 올릴 줄도 모릅니다. 몇건 적지도 못했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시사에 대한 글을 하나 보태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것이죠. 그외 오유 활동으로 내가 좋은 글에 추천을 누르고, 내가 싫어하는 글에 비공감을 주면 이것은 원래 시스템이 허용한 나의 권한인 것일까요? 아니면 ‘분란조장’의 테러범이 되는 것인가요? 원래 썻던 글이 2건이었고, 관리자 차단 사태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것다 한건 더 붙였습니다. 글을 쓰는 곳에 글을 쓰고, 동의와 반대를 표시한 곳에 동의와 반대를 표시하고. 그리해서 돌아온 훈장이 ‘분란조장’입니다. 차단 후 며칠을 유령처럼 오유에 들어가보니 차단된 사람들은 전부다 혐짤러고 조롱한 사람들이었다 라고 남은 분들이 말씀들 하시던데, 조금 이해가 잘 안가는 것이 1. 여론 게시판에 차단이라는 사태를 엄중히 보지 않는 다는 것과 – 혐짤보다 더 문제죠 이것은; 2. 차단 된 사람들은 전부 비아냥 혐짤 유저인마냥 글들을 적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업자득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저는 누구를 비아냥 한적 없고, 조롱한적 없고, 혐짤은 올릴줄도 모릅니다. 그런데 차단되 있습니다. 과거 제 행적에 메갈리안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정의당보고 메갈당1)2)이라고 하고, 평양 방문서 노쇼를 한 이해찬을 노쇼찬이라고 하는 글에 추천을 누른 것이 비아냥이 되고 조롱이 된다면 모르겠지만요.
제가 쓴 글 세건 중, 이재명 글은 2017년 1월에 썼습니다. 그때만 해도 긴가민가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래서 왜 아닌가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글로 쓰고 올렸죠. 그때 글을 올린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이 사람은 여기서 분란 종식될 사람이 아니다.’ 라는 것. 왠 궁예질이냐 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추정이라는 것이니까 본인은 확신하지만 그것들은 논의하지 않았고, 단지 그 사람이 타인을 위해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라는 의견에 그 사람은 본인만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라는 의견을 내 놓은 것이죠. 애민하는 정치인의 자질은 없는. 일년도 넘은 때 글이지만 오늘의 결과는 그때 글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글이 제가 오후 좀 한가할 시간에 글 써서 올려 놓은 것인데, 2분만에 첫 댓글이
1. 너는 어디 작세냐? 그리고 다시 1분 뒤 댓글이,
2. 개소리 말라, 너는 누구편이냐 였죠.
그때도 작세 타령. 하지만 글 올리자마자 빛의 속도로 댓글을 달았던 그분들이 진짜 일반유저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작세라는 말에 염증을 일으키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작세가 있을 수 있죠. 그러나 그것들 빌미로 진짜 시민들의 여론을 작세라고 호도하면 안되죠. 크게 도움이 못됐겠지만 일반 시민의 한사람으로써 지금 털형네들 못지 않게 물심양면으로 이 땅의 진보를 위해 살아왔었거든요.
말이 길었네요. 본인이 작세가 아님을 밝히기 위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칩니다.
지금 시게 남은 분들에게 알립니다. 혐짤유저만 차단된 것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시게 남으셔서 관리자 차단으로 시게 자정되어 간다고 좋아하시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배우고 행한 민주주의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것 아니었냐고요. 지금 시게 유저들에 대한 대량 차단이 올바르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계시는지? 차단되지 못함이 이제는 부끄럽다는 글들은 눈에 보이시지 않는 것인지. 쓰지도 않던 아이디 몇 개로 인터넷에서 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고 여론이 호도되고, 그래서 이 땅에 민주주의가 오는 것은 아닐테지요. 제 삶 속에서 진보와 민주는 사실 상처뿐인 영광이니까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에는 정말 많은 실천과 에너지가 드는 것이니까요.
차단을 끝으로 이제 오유와는 마지막입니다. 차단이 풀리거나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한 다시 오유에 글쓰고 의견표시 할 방법이 없거든요. 금번 차단 사태는 수십년 간의 삶 속에서 경험한 일들 중 가장 반민주적인 폭거라는 말씀 드리고, 남은 동지분들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하며,
바른 세상 만들고자 나름 수십 년 간을 삶 속에서 애썼는데, 그 결과란 것이 시사 사이트에서 의견도 못쓸 세상을 만나게 되니 웃퍼서 긴 글 올렸습니다.
오유는 어쩔 수 없이 떠나지만, 제가 좋아하는 요기 베라의 명언으로 글을 맺고자 합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모두 안녕히 계세요.
- 오유 유저, 진달래와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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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체글 - 본인.
1) https://realnews.co.kr/archives/3749, 정의당 ‘메갈리아 사태’로 어떻게 무너졌나
2)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297135#cb, 심상정·강상구 "메갈리아 사태, 당 차원 대응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