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씨가 한 이야기는 아주 엉터리다.”
수화기 너머 국어학자는 덤덤하게 말했다. “‘불고기’는 ‘야키니쿠’의 번안어”라는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었다.
이달 초 황씨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공개 비판한 이후 그의 몇몇 과거 발언들이 논란이 됐다. 특히 황씨가 tvN ‘수요미식회’와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역설한 ‘불고기 어원론’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판이 거셌다.
황씨는 ‘불고기’가 한국어의 조어 원칙에서 벗어난 데다가, 일본어 ‘야키니쿠’보다 뒤늦게 등장한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간장 양념 쇠고기 구이’의 이름인 ‘불고기’는 일본어 ‘야키니쿠’의 번안어라고 주장했다. 한국 대표 음식 ‘불고기’의 어원이 일본어에 있다는 그의 주장에 ‘친일파’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황씨는 지난 4일 페이스북에 “불고기의 어원 등 한국 음식 문화와 관련한 말과 글을 수도 없이 뱉었고 또 썼고,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나눈 전문 작가와 연구자들도 수없이 많다”면서 “그들은 공개된 지식시장에서 내가 할 말과 글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적이 없다”고 썼다.
그래서 유수의 국어학자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국어학자들은 입을 모아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안어라는 주장은 그 근거가 부실하거나 틀렸다”는 답을 내놨다. 황씨가 ‘불고기 어원론’을 펼치며 내놓은 근거를 나열한 뒤, 각 근거들에 대한 학자들의 생각을 정리했다.
■“복합어 ‘불+고기’는 한국어의 조어 원칙을 벗어난다.” → “아니다”
황씨는 ‘불고기’의 조어 방식이 한국어의 원칙을 벗어나기 때문에 한국어 언중이 스스로 만든 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수의 국어학자들은 그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했다.
황씨는 지난달 25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한국어에서의 음식명 짓기의 원칙은 ‘재료+조리법’”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떡+볶이, 제육+볶음, 감자+튀김 등… 이는 ‘목적어+동사’로 문장을 만드는 알타이어계의 언어구조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불고기’는 이런 한국어 언어구조에서 벗어난다. 불(조리법)+고기(재료)다. 물론 찜닭이나 볶음밥 등 ‘조리법+재료’으로 조어된 합성어도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이며, 변칙의 예일 뿐”이라고 적었다.
이 주장에 대해 《한국어 어원 사전》(2012)을 쓴 김무림 강릉원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아주 엉터리”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불고기’에서 ‘불’은 조리법 자체가 아니라 ‘조리에 쓰이는 재료’라고 봐야한다. ‘불고기’에 ‘굽다’ 등 동사가 아닌 명사 ‘불’이 쓰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예로 든 것은 ‘물회’다. ‘물’과 ‘회’의 합성어인 이 단어에서 ‘물’ 자체는 ‘물로 씻었다’ 등 조리 방식이 아니라 ‘물을 재료 삼아 조리했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양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매우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 역시 “불고기의 ‘불’은 ‘불을 사용하는 (조리)방식’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흔히 먹는 ‘간장게장’, ‘만두전골’에서 사용된 ‘간장’, ‘만두’는 ‘간장을 사용해 조리하는 방식’ 혹은 ‘만두를 사용해 조리하는 방식’같이 ‘특정 재료를 사용한 조리 방식’을 단어 구성에 사용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면서 “‘불고기’가 ‘간장게장’이나 ‘만두전골’과 다른 조어방식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무림 교수와 김양진 교수 모두 ‘불고기’의 ‘불’은 ‘조리법에 불이 쓰인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이런 조어 방식은 한국어에서 흔하게 발견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논문 <불 관련 어휘의 어원 탐색>(2008)을 쓴 김지형 경희사이버대 한국어문화학과 교수는 “한국어에서 상당히 많은 음식명이 ‘재료+조리법’의 방식으로 조어된 것이 사실이지만, ‘조리법+재료’의 방식이 극히 예외적이라고 보는 것은 많은 음식명을 검토한 후에야 내릴 결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학자들도 찜닭, 볶음밥, 비빔밥 등 ‘조리법+재료’로 조어된 합성어도 실제 우리 말에서 적지 않게 나타난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덧붙였다.
국어학자들은 황씨가 ‘한국어는 알타이어계 언어구조’라고 강조한 것에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김지형 교수는 “알타이어족설은 반알타이어족설이 강력히 대두될 만큼 그 자체로 가설에 그치고 있다. 더구나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는 한국어는 알타이어로 분류되는 언어들(몽골어, 만주어, 터키어 등)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언어로서, 알타이어족에 포함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이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불고기는 일제강점기 시절에야 만들어진 말이다” → “기록은 그렇지만…”
황씨는 “‘불고기’는 분명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말이다. 동아일보 1935년 기사에 ‘불고기’란 단어가 등장한다. 불고기는 아무리 빨라도 1920년대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일본어에서 ‘야키니쿠’라는 음식명이 영어 바비큐의 번안어로 등장한 것은 1870년대”라고 주장한다. ‘불고기’는 정말 조선시대 이전에는 없었던 말일까?
이에 대해서는 원로 국어학자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논문 <‘불고기’ 이야기>(2006)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교수는 이 논문에서 “‘불고기’는 옛 문헌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블火’과 ‘고기肉’는 한글 창제 초기와 그 뒤의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으나 이들의 복합어인 ‘블고기’, ‘불고기’는 중세어, 근대어의 어느 문헌에서도 볼 수가 없다. 19세기 말엽에 간행된 ‘한불사전’과 ‘한영사전’에서도 심지어는 1938년에 간행된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에서도 ‘불고기’라는 표제어는 볼 수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불고기’라는 단어가 사전에 등재된 것은 1950년에 발행된 한글학회의 ‘큰사전’이 처음이다.
그러나 사전에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불고기’라는 말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이 교수는 자신의 경험과 증언·기록들을 근거로 ‘불고기’가 1945년 광복 이전 평양(넓게는 평안도) 지역에서만 쓰이던 방언이라고 주장한다. 광복 이전까지 서울과 그 이남의 지역에는 숯불에 고기를 구워먹는 관습이 없었기에 서울말에는 ‘불고기’가 없었을 뿐이며, 그 이유로 옛 문헌에서도 찾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김양진 교수도 이기문 교수의 주장에 동의해 ‘불고기’가 평안도 방언에서 온 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지형 교수도 “우리가 쓰는 일상어들이 사전에 없는 것은 흔한 일”이라면서 “‘불고기’가 사전에 등재되기 전인 1938년 가수 박향림(1921~1946)이 부른 <오빠는 풍각쟁이야>에도 ‘떡볶이’와 함께 ‘불고기’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31년 2월9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한 연재소설에는 이미 ‘불고기’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정리하자면 불고기에 대한 기록은 황씨의 주장처럼 일제강점기 이후의 것들만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국어학자들은 기록보다 앞서 말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기에 ‘불고기’라는 말이 등장한 정확한 시점은 쉽게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65년 국어학자 김윤경의 인터뷰가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안어라는 결정적인 증거다” → “아니다”
황씨는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안어라는 결정적은 근거로 1965년 12월2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국어학자 김윤경(1894~1969)의 인터뷰를 들고 있다. 해당 기사에서 김윤경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한글은 역시 세계적으로 훌륭한 글이라고 찬양’하면서 “처음에는 생소하고 듣기 어색했지만 ‘벤또’ 대신에 ‘도시락’이, ‘돔부리’ 대신에 ‘덮밥’이, ‘야키니쿠’ 대신에 ‘불고기’라는 말이 성공한 것은 얼마나 좋은 예냐”고 말한다. 해당 지면을 확인한 결과, ‘불고기’ 관련 내용은 이 문장이 전부다. 황씨는 이 한마디를 두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어 한글화 작업을 하였고, 그 작업 안에 불고기가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인터뷰에 대해 국어학자들은 “황씨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양진 교수는 “김윤경 선생이 든 사례 ‘도시락’은 우리 옛말 ‘도슭’의 후대형일 뿐이고 ‘덮밥’은 ‘늦더위’나 ‘접칼’과 같은 방식의 고유어 조어법에 따른 자연스러운 단어다. (일본어를 번안해 만든) 신조어의 사례라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사용해 온 우리말이란 뜻이다. 김윤경 선생은 일본어보다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잘 쓰지 않았던 우리말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고기’의 경우도 신조어라기보다는 우리말의 어딘가에서 사용되고 있던 말을 가져다 쓰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적절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김지형 교수도 “김윤경 선생의 언급은 외국어를 순 우리말로 대체하는 것, 즉 국어 순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지 이 언급 자체가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안어라는 근거는 될 수 없다”고 했다. 김무림 교수 역시 “‘도시락’이 우리 옛말 ‘도슭’에서 온 말이듯, ‘불고기’라는 말도 평안도 같은 데서 원래 사용했을 수 있다. 가정해보자면, 서울 등 중앙에서 일본어 ‘야키니쿠’가 통용될 때 이를 순화하기 위해 평안도에서만 쓰이던 방언 ‘불고기’를 발굴해 중앙에서도 이 말을 쓰자고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불고기’는 ‘야키니쿠’의 번안어이다” → “알 수 없다” “아닐 가능성이 높다”
황씨는 페이스북에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안이라는 사실을 김윤경 선생의 인터뷰에서 확인하고 정신적 충격이 컸다”면서 “더 놀라운 것은 불고기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말한 바가 없다는 사실. 알고도 입을 닥치고 있었다고밖에”라고 썼다. 그러나 국어학자들은 ‘불고기’의 어원이 국어학자들의 오랜 숙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 이기문 서울대 교수는 앞서 소개한 논문 <‘불고기’ 이야기>에서 ‘불고기’의 어원을 평안도 방언에서 찾고 있다. 김양진 교수는 “‘불고기’의 어원이 오랜 숙제인 이유는 동일한 조어법을 가진 ‘물고기[물꼬기]’와 ‘불고기[불고기]’의 발음상의 불일치에 대한 고민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와 같은 고민에서 출발할 때 ‘불고기’는 이기문 교수의 주장처럼 평안도 방언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물고기’의 표준어 발음은 [물꼬기]이지만 ‘불고기’는 [불고기]다. 이 불일치는 ‘불고기’가 평안도 방언에서 온 말이라고 가정한다면 쉽게 풀리는 문제다. 평안도 화자들이 서울말 화자와 달리 어말의 ‘ㄹ’을 ‘르’에 가깝게 발음하기 때문에 ‘물고기’를 [무르고기], [물고기]라고 발음한다. 평안도에서는 ‘불고기’ 역시 [불고기]로 발음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이 서울로 유입될 때 발음([불꼬기]가 아닌 [불고기]로)도 함께 따라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야키니쿠’는 단어 구성상 우리말로 옮기면 ‘불고기’가 아닌 ‘고기구이’가 적합하고 실제로 그러한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면서 ‘불고기’가 ‘야키니쿠’의 번안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황씨의 주장이 옳으려면 적절한 번역어 ‘고기구이’가 있음에도 굳이 ‘불고기’로 번역을 했어야 하는 이유가 타당해야 하고 ‘고기구이’와 ‘불고기’가 유의어로 경쟁하지 않고 별개의 단어로 공존하고 있는 언어 현실이 설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중요한 문제는 불고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이기문 교수가 이야기한 평안도의 ‘불고기’가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불고기’와 같은 음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부터 우리는 고기를 불에 구워 먹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음식의 영향을 받아 지금 먹는 간장 양념의 불고기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때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불고기’라는 명칭이 생겼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다른 학자들의 의견과 같이하며 “황씨의 주장을 언어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신빙성을 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불고기’의 어원에 대한 논의는 국어학계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불고기’라는 단어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발생했고, 정확히 어떤 음식을 지칭하는 것이며, 지금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은 과정에 대한 세심한 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고기’는 ‘야키니쿠’의 번안어”라는 주장에 쏟아진 대중의 비판을 황씨의 말처럼 ‘국뽕’의 소산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불고기 어원론’ 등의 논란이 커지자 황씨는 페이스북 “근익명의 악플러가 나와 관련한 가짜 정보를 만들어 퍼뜨렸다. 내 말과 글이 오류 투성이라는 것이다. 내용을 보니 중졸 정도 지적 수준에 있는 자가 여기저기 떠도는 정보를 짜깁기한 것으로 보였다”고 썼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한 국어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글에 대해 확실하지 않더라도 ‘나름의 신뢰성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반박하는 이들에게 ‘기레기’ ‘중등 수준’ 등 험한 말로 눌러버리는 황씨의 태도는 또다른 폭력으로 보인다.”